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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석
인하대 철학과 교수

등록 : 2018.06.05 19:00

[김진석의 우충좌돌] 나쁜 놈을 혐오하면

등록 : 2018.06.05 19:00

증오와 혐오가 일상이 돼가는 사회

모든 관계에 증오의 연쇄반응 일어

극단의 지배, 중간균형자 말문 막아

사실 지금 어느 때보다 인권 의식은 높아졌고 절대적 차별도 줄었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심리적인 갈등은 더 심각해졌다.증오와 혐오가 일상이 된 사회다. 어떻게 이런 일이? 남녀 혐오로 시작해보자. 18세기까지도 인간이라는 말이 사람들을 두루두루 지칭할 수 있었다. 그러나 페미니스트들은 남성들이 ‘인간’을 말하면서 언제나 남성을 염두에 두었다고 비판하기 시작했다. 맞는 말이었고, 그래서 인간은 남성과 여성으로 갈라졌으며 그 정도는 괜찮았고 좋기도 했다. 남녀 평등에서 상당한 성과가 있었다. 그럼 절대적 차별을 계속 줄이면 될까? 그러나 그 차별이 줄어든다고 갈등이 그에 비례하여 줄어들지는 않는다는 데 아이러니가 있다. 큰 차별은 없어지더라도 ‘미세한’ 것은 쉽게 사라지지 않으며, 이상하게도, 바로 그 작은 것이 더 큰 증오를 낳는다.

그래서 이젠 남과 여만 갈라지지 않는다. 일단 전투적인 집단이 양쪽에 있다. ‘일베’와 ‘남성연대’를 비롯한 남성주의자가 한편에 있다면, 다른 한편에 열혈 페미니스트가 있다. 처음 ‘메갈리아’는 남성의 ‘여혐’을 미러링하면서 되돌려주는 수준이었다. 남성이 여자를 혐오하니 여자도 남자를 똑같이 혐오하며 비슷하게 폭력적인 말을 남자에 대해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꼭 똑같이 저질스럽게 해야 하느냐고 물을 수 있지만, 욕설의 미러링은 정당한 면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보다 더 공격적인 여성들이 생겨났다. 적대감은 처음엔 반사되는 정도였는데, 이젠 그 자체로 공격적이다. 그리고 이들 극단주의자 사이에 남성주의자도 아닌 남성, 열혈 페미니스트까지는 아닌 여성이 있다. 아마 ‘침묵하는 다수 또는 상당수’일 것이다.

증오의 연쇄반응은 현재 거의 모든 관계에 적용된다. 정치도 증오의 경연장이다. 수구꼴통이 진보를 혐오하자, 진보도 수구꼴통에 대해 혐오를 반사했다. 수구꼴통들도 서로 혐오할 뿐 아니라, 진보도 마찬가지다. 민주당 지지자 가운데 ‘문빠’가 자기와 다른 사람들을 혐오하자, 결국 이들도 혐오를 반사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정치권력이 원래 그런 것인가? 아니다. 옛날에도 싸움과 전쟁은 있었을 뿐 아니라, 피비린내가 더 났다. 그러나 그들은 서로 싸우더라도 서로 ‘대등한 인간’이라고 여겼고, 적을 존중하기까지 했다.

그들이 우리보다 더 훌륭한 사람이어서 그랬을까? 그건 아니다. 잘나고 잘 태어났다고 믿는 사람들은 ‘우린 비슷하게 존귀하다’는 묘한 우월성을 공유했고, 그것이 갈등이 감정싸움으로 번지는 것을 막아주는 역할을 했다. 싸움은 명예를 지키거나 잃는 선에서 봉합되었다. 서로 명예를 지킨다는 존중심이 긍정적인 역할을 한 셈이다. 그런데 차별이 없어질수록 증오와 원한이 확산되는 경향이 있으며, 감정싸움이 빈번해진다. 차별과 증오의 역설이다. 민주화가 이루어지면서 사람들이 원한에 쉽게 사로잡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권리의 평등을 위한 싸움이 나쁘다는 말은 아니다. 나눌 것이 넉넉할 때는 괜찮지만, 작은 불평등이 감정싸움으로 번지기 쉽다는 것이다. 성장만 추구해도 문제지만 성장이 멈추어도 갈등이 심해진다. 노동시간이 줄면 모두 좋을 것이라고 여겼지만, 소득이 준다며 싫어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사람들이 파편화되는 데 그치지 않고 감정적 혐오를 반사할 때 생기는 더 큰 문제가 있다. ‘뿔뿔이’ 사회에서는 차분한 논의와 논쟁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극단적인 사람들의 말과 행동이 사회적 커뮤니케이션을 장악하고, 기우뚱하게나마 균형을 잡는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다. 한 예로, 여혐과 남혐이 사회를 지배하는 것처럼 보이고, 그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사람들은 말을 해도 아예 보이지 않는다. 이들이 극단적 진영논리에 대한 적대감에 물들지 않기를 바랄 수 있을까?

서양철학사와 대판 싸웠던 니체는 말했다. 악마를 증오하며 싸우면, 악마를 닮는다고. 나도 어떤 ‘안티’ 운동을 할 때는, 나쁜 놈을 좀 닮았었던 것 같다. 그러나 나쁜 놈을 너무 닮으면, 무슨 소용인가?

김진석 인하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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