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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남북전쟁의 망령

입력
2017.08.18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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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전쟁의 주연이라면 노예해방을 선언한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과 북군(연방군)을 승리로 이끈 율리시스 그랜트 장군이다. 그러나 남군을 이끈 로버트 리 장군의 조연 역할도 빼놓을 수 없다. 게티스버그 전투에서의 치명적인 패배 뒤 리치먼드로 퇴각한 그가 끝까지 항복을 거부했다면 전쟁은 어떻게 됐을까. 그의 깨끗한 패배 승복이 없었다면 링컨 대통령이 전쟁 후유증을 딛고 추구한 통합의 정치도 불가능했을지 모른다. 도시와 도로에 그의 이름이 붙고, 각종 기념물과 동상이 즐비한 것은 ‘합중국’을 가능케 한 그의 아름다운 패배를 상징하는 징표다.

▦ 버지니아주 샬러츠빌의 리 장군 동상 철거를 놓고 백인 극단주의자들과 철거 지지파들이 충돌하면서 미국 전역이 인종 갈등의 몸살을 앓고 있다. 철거 논란이 인종 우월주의 사태로 비화한 것이다. 나치 깃발까지 등장한 극단주의 시위는 이번 주 말 최고조에 달할 것이라고 한다. 한편에서는 리 장군 동상을 비롯한 남부연합 상징물을 제거하는 작업이 속전속결식으로 이뤄지고 있다. 텍사스ㆍ뉴올리언스 주, 볼티모어 시에서는 이미 기념물들이 철거됐고, 버지니아ㆍ켄터키 주에서도 곧 철거가 시작될 것이라고 한다.

▦ 워싱턴포스트는 “노예제도를 옹호하는 기념물들이 건재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철거를 옹호했다. 노예제와 인종 차별을 부추기는 부정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논리다. 그러나 역사를 지워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노예제에 대한 찬반 여부만을 놓고 남군을 평가한다면 미국 건국의 아버지 중 노예제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누가 있느냐는 반론도 있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났다”는 독립선언문을 쓴 토머스 제퍼슨은 물론이고 조지 워싱턴 초대 대통령도 수많은 노예를 거느렸다.

▦ 극단주의 백인단체인 KKK의 대표였던 데이비드 듀크는 “우리는 나라를 되찾기로 했다”“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약속을 이행하라”고 요구했다. 시위대들이 입은 티셔츠에는 트럼프의 슬로건인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문구가 붙었다. 이들의 비뚤어진 우월의식을 촉발한 게 리 장군의 동상일까 아니면 ‘미국 우선주의’라는 명분으로 대립을 조장한 트럼프일까. 이번 사태에서 나치ㆍ파시즘 못지않은 트럼프 정치의 ‘무언의 선동’을 느낀다. 그렇게 보면 책임 소재를 놓고 연일 오락가락하는 트럼프의 발언도 하나 이상할 게 없다.

황유석 논설위원 aquariu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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