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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영 “약자 이용한 기득권의 생명연장... 섬뜩하게 담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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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영 “약자 이용한 기득권의 생명연장... 섬뜩하게 담았죠”

입력
2017.04.03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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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제작인 단편 ‘할머니…’는

신자유주의 모습을 그려

“단편이 주는 동화적 느낌 좋아

나중엔 동화작가 되고 싶어”

SNS로 구설수에 많이 올라

“위선도 약간 필요하구나 느껴”

3일 서울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공지영 작가가 소설집 '할머니는 죽지 않는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3일 서울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공지영 작가가 소설집 '할머니는 죽지 않는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늙은 것들, 기득권적인 것들, 강한 것들이 어떻게 화석화된 생명을 연장하는가에 대한 얘기에요.”

작가 공지영이 소설집 ‘할머니는 죽지 않는다’로 돌아왔다. 표제작 ‘할머니는 죽지 않는다’를 비롯, ‘월춘장구’ ‘우리는 누구이며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부활 무렵’ ‘맨발로 글목을 돌다’ 등 5개의 단편에 짧은 산문을 묶어뒀다. 공지영이 소설집을 내기는 ‘별들의 들판’(2004) 이후 13년 만이다.

표제작으로 뽑힌 ‘할머니는 죽지 않는다’는 제목처럼 조금 섬찟한 얘기다. 소설 속 화자의 할머니는 강남 빌딩 부자. 주님보다 위에 있다는 ‘건물주님’이다. 그래서 가족들이 하는 일이라곤 강남 요지의 빌딩을 돌아다니면서 수금하는 것이다. “가진 게 돈 밖에 없다”는 말처럼 정말 “돈 밖에” 없다. 할 일은 또 하나 더 있다. 할머니 건강의 위기는 그들에겐 또 다른 기회다. 할머니가 쓰러질 때마다 그 주변에서 치열하게 효도 레이스가 벌어진다.

그런데 기묘하게도 할머니는 되살아난다. 매번 다른 사람들, 아니면 다른 동물들의 생명을 대가로 자신의 수명을 늘려나간다. 이 얘기가 상징하는 바는 명확하다. “1990년대 말, 2000년대 초 신자유주의라는 말이 유행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강한 것들이 더 이상 죽지 않고 약한 것들을 빨아먹고 사는 모습”을 표현해보고 싶었다고 했다. 소설인 만큼 정색하기보다는 뭔가 기괴한 우화처럼 말이다.

이번 책을 묶어내면서 단편의 매력도 재발견했다. 중학생 때 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를 읽고 받은 충격 때문에 단편보다는 장편에 집중하는 작가로서는 의외의 얘기다. “장편을 너무너무 쓰고 싶어서 소설가가 됐기 때문에 데뷔 뒤에도 단편 2개만 쓰고 바로 장편을 쓸 정도였거든요. 그런데 이번 작업에서 단편이 주는 우화적, 동화적 느낌이나 강한 상징성 같은 게 너무 좋았어요.” 그는 지금보다도 더 짧게 압축적으로 쓰고 싶다. 나중엔 동화작가를 하는 게 꿈이다.

소설집은 기괴한 얘기만 있는 건 아니다. ‘할머니는 죽지 않는다’와 대척점에 서 있는 작품은 ‘부활 무렵’이다. 이 작품의 주인공 순례는 다리 다친 부엉이, 양계장에서 폐기처분된 닭, 죽어가는 화초 등 그 모든 것을 살려내는 인물로 설정되어 있다. “을 중의 을이지만 모든 것을 살려내고 치유하는, 최고의 을”로서의 순례다. 짐작하다시피 순례는 신도시의 가난한 가정부다. “상처받은 것들, 약한 것들, 어린 것들에 대한 지지와 연민”이다.

최근 몇 년간 공지영은 ‘소설가’보다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더 유명했다. 트위터 등에 올린 글 때문에 송사에 휘말리기도 했다. 스스로도 “작가가 작품이 아니라 쓸데 없는 구설수 때문에 언론에 오르내렸다”고도 했다. “처음엔 작가이기 전에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이런 얘기도 못하나, 왜 이렇게 난리일까 생각했는데 지난해부터는 약간의 위선도 필요하구나 생각했다”며 웃었다. 그렇다고 위축된 건 아니다. 이날 간담회에서도 이런 저런 정치적 의견을 자유롭게 내놨다. “정치적 의견을 내는 건 시민의 권리이자, 시민의 사명”이라고도 했다.

그 때문에 SNS에 부정적이지는 않았다.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말하나 관찰하기 위해서 예전엔 저잣거리로 나서야 했지만, 지금은 SNS를 유심히 잘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SNS를 통해 다양한 인간들을 깊이 들여다볼 수 있어요. 심지어 전 ‘태극기’ 시위하는 분들도 차단하거나 친구끊기를 절대 하지 않아요. 무슨 논리로 어떤 주장을 펴는지 자세히 들여다보기 위해서예요.” 다양한 시각을 익히는데 도움을 받는 셈이다. 최근엔 한달 반 정도 페이스북을 쉬고 있는데 그 때문에 오히려 불편하다고도 했다.

작가가 등단한 것은 1988년. 그러고 보니 ‘소설가’라는 이름을 달고 산지 30년이다. 30년을 맞아 올해 안에 장편 ‘해리’(가제)를 내놓을 생각이다. 해리는 주인공 이름이자 흔히 ‘다중인격장애’로 알려진 해리성 인격장애를 뜻한다. “악의 문제를 진지하게 다뤄보고 싶었는데, 굳게 마음을 먹었는데 정말 어렵고 힘들었어요. 거기다 지난 연말부터 너무너무 신기한 일들이 계속 이어지지 않았나요. 그 때문에 손을 더 대지 못했어요. 올해 안에는 선보일 수 있도록 할게요.” 지난해까지 자기가 낸 책의 판매부수를 헤아려보니 1,100만부였단다. “제 책을 사 봐주신 고마운 분들에게, 늘 새롭다는 느낌을 드리고 싶어요.”

조태성 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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