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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비환 칼럼] 하이브리드 체제를 넘어 민주체제로

입력
2017.10.15 10:54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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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위주의 잔재와 민주주의 문화 혼재

권력남용ㆍ정치권군림ㆍ사법부불신 커

적폐청산 신뢰 잃으면 정치보복 전락

요즘 ‘하이브리드(hybrid)'라는 외래어가 유행하고 있다. 이 용어는 주로 두 가지 이질적인 것들의 장점을 결합한 첨단상품을 가리키는 데 사용된다. 예컨대 하이브리드카는 가솔린자동차와 배터리자동차의 장점을 결합한 자동차를, 하이브리드바이크는 마운틴바이크와 로드바이크의 장점을 결합한 자전거를 지칭한다.

하지만 이 용어가 언제나 긍정적인 의미로만 사용되는 것은 아니다. 신생민주주의들을 비교 연구하는 학자들은 이 용어를 다소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1970년대와 80년대에 민주화됐던 국가들 중 상당수는 민주주의를 공고화하는 데 실패했다. 이들 중 일부는 완전히 권위주의로 회귀했고 일부는 부분적으로 권위주의적인 요소를 유지하고 있는데 후자를 하이브리드 체제로 부른다. 즉, 민주적인 요소와 권위주의적인 요소가 뒤섞여 있는 어중간한 체제가 바로 하이브리드 체제다.

하이브리드 체제에서도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을 뽑는 민주적 선거는 비교적 자유롭게 치러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선출된 대통령과 국회의원들 및 고위 관료들은 국민을 섬김의 대상이 아닌 통치의 대상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유권자들도 선거를 국민을 섬길 일꾼들을 뽑는 행사가 아니라, 국민을 다스릴 통치자에게 정치권력을 송두리 채 위임하는 행사로 보곤 한다. 그래서 신생민주주의 연구의 최고 권위였던 오도넬(G. A. O'Donnell)은 위임민주주의(delegative democracy)라는 개념으로 이런 현상을 일반화했다. 위임민주주의에서는 ‘법의 지배’도 위정자들이 법을 수단으로 국민을 통치하는 행위(rule by law)로 받아들여진다. 이런 체제에서는 관용, 상호존중, 공존공영의 태도 등 민주주의의 원활한 운용에 긴요한 문화적ㆍ의식적 토대도 빈약하다.

우리 대한민국은 과연 어떤 체제일까. 대한민국 헌법을 읽어보고 정치인들의 연설을 들어보면 우리나라는 영락없는 자유민주주의 체제다. 하지만 실상은 그와 거리가 멀다. 우리나라의 역대 대통령들은 거의가 제왕적 대통령으로 군림했다(대한민국 헌법에 제왕적 대통령제 조항은 없다). 전 정권들에서 보았듯 대통령을 포함한 고위 공직자들 상당수는 자신이 초법적인 존재라도 되는 양 위헌ㆍ불법 행위를 서슴지 않았다. 권력기관을 이용한 대담한 대중조작과 선거조작을 무분별하게 행해왔고, 무고한 국민들을 생각이 다르거나 정권에 비판적이라는 이유로 차별하고 억압해왔다.

명색이 한국의 최고 엘리트들이 이끌어가는 사법부에 대한 신뢰도도 참담하기 그지없다. OECD의 보고서에 따르면 2013년 기준 한국의 사법 신뢰지수는 42개 국가들 중 38위로, 우크라이나 칠레 콜롬비아와 함께 꼴찌 그룹에 속한다. 우리나라의 사법적 정의를 ‘유전무죄 무전유죄’로 규정하는 비아냥거림이 유행하는 것과 맥을 같이 하고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이 실질적으로 하이브리드 체제에 머물고 이유는 무엇인가. 상대편을 타도해야 할 적으로 보는 이분법적 세계관과 상명하복의 권위주의 문화, 왜곡된 부의 분배구조, 그리고 사회 전반의 신뢰 결핍을 주된 이유로 들 수 있다. 이것들은 서로 악순환 관계를 형성하며 하이브리드 체제를 강화시킨다.

이 악순환 관계를 끊고 성숙한 민주체제로 나아가기 위한 튼튼한 기반을 닦는 것이 촛불혁명이 문재인 정권에게 맡긴 궁극적 임무다. 이 과업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국민의 절대적인 신뢰가 필요하다. 국민의 신뢰를 잃게 되면 적폐청산은 정치보복으로, 소통은 ‘쇼통’으로, 경제사회 개혁은 새로운 편 가르기로 변질되어 민주적 개혁의 동력을 잃게 되기 때문이다. 특히 문재인 정권은 전 정권들의 실패를 반면교사로 삼아, 헌법과 법률을 엄격히 준수하고 공명정대하게 정책을 집행함으로써 국민의 신뢰를 쌓는 데 온 힘을 쏟아야 한다. 정권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사회적 신뢰로 확산되고, 이것이 새로운 민주문화의 씨앗이 되어 성숙한 민주체제를 뒷받침하기 때문이다.

김비환 성균관대 국가전략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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