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문화] 옆길로 새면 거기, 뭐가 있을까?

장마전선이 소나기를 데리고 왔다. 잠깐이지만 후끈한 지열을 식혀줄 비라서 반갑고 고맙다. 일부러 여러 겹으로 된 하늘하늘한 시폰 스커트를 입고 집을 나섰다. 바람이 스커트 자락을 들추며 종아리를 어루만지고 빗방울이 블라우스 깃을 파고든다. 빗방울이 쉴 새 없이 우산을 두드리는 소리를 듣고 있으니, 우산 안의 세상은 방금 전의 무더운 도시가 아닌 다른 곳인 듯한 기분이 든다. 우산 속 세상으로 이제는 추억이 되어버린 시간, 공간 그리고 얼굴들이 떠오른다. 여전히 궁금하고 애틋한데 이미 스쳐 지나온 인연들이 왈칵 그리워진다. 나 또한 누군가에게 그렇게 잊혀졌고, 누군가를 스쳐 지났고, 언젠가는 영원히 소멸하리라… 고작 몇 분 동안 뜨겁게 쏟아지다가 스러져버릴 소나기가 가벼운 우산을 뒤집을 듯 흔들며 외친다. 그러니 망설이지 말라고, 기다리지 말라고, 바람 나도 좋다고!

소나기의 유혹을 뒤따라 몇 년 전 큰 화제가 됐던 현대카드 광고가 떠오른다. ‘MC 옆길로새’라고 이름 붙인 앵무새가 신나는 힙합 음악에 맞춰 랩을 하는 뮤직비디오 형식의 광고다. 각운이 기막힌 랩의 가사를 살펴 보자.

랩 가사) 친구 따라 강남 갔으면 서커스 앵무새

방앗간이 싫어졌다면 미라클 참새

내 날개는 요새 한계 없이 나네

필(Feel)에 취한 날개는 바람 못지 않네

내 삶의 방식은 에드워드 8세

죽어도 싫은 말 새장에 갇힌 신세

같은 길로 달려 봤자 거기서 거길세

옆길에서 만나 황새 부순 뱁새

내 스타일은 언제나 우세보단 열세

누가 뭐라 해도 후회 절대 절대 안세

뻔한 길로 가지 말고 옆길로 새

겟 와일드 겟 라이브(GET WILD GET LIVE)!

한 번쯤은 옆길로 새, 같이 새

뻔한 인생 옆길로 새, 같이 새

가던 길을 한 번 부수면, 같이 새

디퍼런트(DIFFERENT) 오늘 만세!

아이 메이크 브레이크 메이크(I MAKE BREAK MAKE)

어디로든 한번쯤은 옆길로 새

뻔한 길로 가지 말고 옆길로 새

옆길에서 뒷길까지 피에스타(FIESTA)

이 거리의 옷매무샌 너무나도 뻔해

머리부터 발끝까지 유행이야 올해

난 싫지 허세, 무시하지 대세

눈에 띄는 날개가 남게 되지 후세

내 삶의 목표는 영웅이야 난세

세상 모두 쫓아가도 쫓지 않아 절대

틈새를 노려 무는 한 마리의 늑대

뻔한 길은 싫어 길 만들지 모세

(후렴 반복)

(현대카드_기업PR뮤직비디오_옆길로새편_2013_카피)

남들 모두 가는 길 말고 나만의 길을 만들고, 대세를 쫓지 말고 옆길로 새라는 이야기는 더 이상 젊지 않은 나이인데도, 아니 어쩌면 그런 나이라서 더 귀가 솔깃해진다. 학교를 졸업하고 직업을 가지고 결혼해 아이 낳아 키우는 뻔한 인생을 살다가 어느새 인생 후반부를 준비해야 하는 나이가 되니, 혹시 잘못 살아온 것은 아닐까 하는 마음이 든다. 옆 길로 한 번 새보지도 못하고, 바람 한 번 나 본 적 없이 죽게 된다면 억울할 것도 같다.

바람 난 친구들의 소식이 자주 들린다. 주말마다 등산하며 산과 바람 난 친구, 시민 극단에 들어가 연극과 사랑하는 친구, 드럼을 배워 아마추어 밴드와 연애 걸고, 합창단에 가서 노래하는 재미에 홀리고, 봉사단을 만들어 이웃 돕기에 빠진 친구도 있다. 남 보기엔 옆길로 새는 친구도 있다. 서울 살이를 정리하고 훌쩍 제주도로 가거나, 멀쩡한 직장 관두고 과수원을 하겠다고 나선 친구도 있다. 다들 바쁜데, 대부분 계속 하던 일이 아닌데, 시간도 마음도 여유가 있지는 않을 텐데 첫사랑에 빠진 것처럼 열심이다. 부럽기도 하고, ‘늦기 전에 나도’하는 욕망이 불끈 솟기도 한다. 내가 기꺼이 바람 나고 싶은 대상은 무엇일까? 옆길로 새서 가고 싶은 곳은 어디일까? 뻔하게 사느라 참았던 것, 하고 싶던 것들을 지금부터라도 하나씩 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