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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만 나눠도 자살 생각 많이 줄일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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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만 나눠도 자살 생각 많이 줄일 수 있어"

입력
2016.11.16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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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예방수기 공모전에서 대상을 수상한 익산시정신건강증진센터 자살예방사업팀 한아름(왼쪽)씨가 16일 전북 익산 소재 박한국(가명)씨 집에서 박씨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익산시정신건강증진센터 제공
자살예방수기 공모전에서 대상을 수상한 익산시정신건강증진센터 자살예방사업팀 한아름(왼쪽)씨가 16일 전북 익산 소재 박한국(가명)씨 집에서 박씨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익산시정신건강증진센터 제공

한아름(29)씨가 박한국(60ㆍ가명)씨를 처음 만난 건 2012년 말. 한씨는 전북 익산시 정신건강증진센터 자살예방사업팀 소속이었고, 박씨는 수차례 자살 시도로 응급실에 실려 다닐 만큼 정서가 불안정한 상태였다.

박씨 사연은 이랬다. 유년시절 폭행이 난무했던 보육원에서 도망쳐 떠돌이 생활을 했다. 생계를 위해 원양어선을 탔고, 배를 타지 않을 때는 양말 장사를 했다. 하지만 40대 후반쯤 그에게 폐쇄성 혈전혈관염인 버거씨병이 찾아왔다. 꿋꿋이 버텨오던 삶이 한꺼번에 무너졌다. 버거씨병은 사지 끝부분에 있는 혈관이 망가지는 희귀난치성 질환이다. 심한 통증이 동반되고 악화하면 손이나 발을 잘라내야 한다.

박씨는 일을 하지 못하게 돼 기초생활보장 수급자가 됐고, 병으로 왼쪽 다리까지 절단하면서 삶에 대한 의지를 완전히 잃었다. 우울증이 깊어졌고 소주 없이는 버텨내지 못했다. 주위에 그의 곁을 지켜 줄 이가 아무도 없었다는 점도 상황을 악화시켰다.

그러던 그가 한씨의 전화와 방문으로 조금씩 삶의 의지를 보이기 시작했다. 한씨가 수시로 전화를 하고 일주일에 한 번 지속해서 방문한 지 6개월쯤 됐을 무렵이다. 박씨는 술을 줄이고, 과거 취미였던 바둑을 두기 위해 기원을 다니게 됐다. 술병이 나뒹굴던 방도 깔끔해졌다.

한씨는 박씨에게 필요한 건 거창한 도움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제가 한 것 별 것 없어요. 대화 상대가 되어주고, 장점을 찾아 말해주는 등 지지해주는 것뿐이에요. 자살을 생각하시는 분들은 외부와 단절된 경우가 많은데, 주위에서 작은 관심만 보여도 상황은 한결 좋아집니다.”

물론 박씨가 자살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졌다고 말할 수 없다. 박씨는 아직도 마음의 병을 치료 중이다. 그래도 달라진 건 요즘엔 힘들 때 자살 시도를 하지 않고 도움을 요청한다는 점이다. “통증 때문에 잠에서 깬 새벽시간, 특히 외로움이 크다고 하시더라고요. 이때 직원들이 안 나와 있으니까 24시간 운영하는 정신건강 위기상담전화(1577-0199)로 전화를 하세요. 감사한 일이죠.”

한씨의 경험담은 자살예방 수기 공모전에서 대상작으로 선정됐다. 복지부는 자살 시도자, 자살 유가족 등을 대상으로 자살 예방에 힘써온 사례를 선정(총 14편), 상장과 포상금을 전달할 계획이다.

채지선기자 letmekno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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