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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기본소득 대 기본소득들

입력
2018.06.28 1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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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이라면 누구나에게 무조건적으로 현금을 정기적으로 지급하겠다는 ‘기본소득’은 현실감 없는 몽상가들의 주장이라고 여겨졌다. 그러나 그런 기본소득이 한국 사회가 직면한 돌봄, 실업, 질병, 노령 등 사회적 위험에 대응하는 ‘현실적’ 대안 중 하나로 검토되는 시대가 되고 있다. 성장을 해도 일자리가 생기지 않고, 그나마 있는 일자리의 질도 점점 더 나빠지고 있기 때문이다. 40만 명을 넘었던 신규 취업자가 2016년 23만 명으로 반 토막이 났다. 더욱이 열심히 일해도 빈곤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사람들과 일하고 싶어도 일할 수 없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더 근본적으로 우리 시대의 노동의 성격이 변하고 있다.

기본소득이 전통적 복지국가의 대안 중 하나로 검토될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분명히 해둘 것이 있다. 복지국가가 산업자본주의라는 생산체제에 기초해 만들어지고 발전했듯이 기본소득 또한 어떤 생산체제와 상호보완적 관계 속에서 진화하는 것인지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자본이 산업자본주의 시대처럼 노동을 포섭해 생산을 조직화할 필요가 없다면 그 생산체제가 무엇인지 이야기해야 한다.

다른 하나는 그 새로운 생산체제에서 생산을 담당하는 사람들이 누구인지를 분명히 해야 한다. 기본소득이 그들이 직면한 사회적 위험에 대응하는 최적의 대안인지, 그들이 기본소득이라는 새로운 복지체제를 지지할 조직화된 정치적 주체가 될 수 있는지도 이야기해야 한다. 그리고 인내심을 가지고 세계 곳곳에서 이루어지는 다양한 실험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세상이 하루아침에 변화하지 않는다는 평범한 진리를 기억해야 한다. 온라인 플랫폼에서 상품처럼 거래되는 플랫폼 노동이 증가하고 있지만, 당분간 절대다수의 사람들은 여전히 전통적 고용관계에 있을 것이다. 오랫동안 사회보험과 보편적 수당과 같은 복지국가의 유산과 기본소득과 같은 새로운 형태가 공존할 것이다. 물론 기본소득이 가장 적합한 대안이 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역사적으로 사회보장제도는 특정한 자본주의 시대에 가장 핵심적인 상품을 생산하는 생산자가 직면한 사회적 위험에 대응하는 방식으로 구성되어왔기 때문이다.

정체되어 있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복지국가는 끊임없이 변화했다. 성별분업 해체에 대응해 돌봄이 사회화되고, 사무직 노동자가 증가하자 소득비례 소득보장체제를 도입했던 것처럼 복지국가는 늘 변화했다. 이런 역사를 생각하지 않고, 기본소득을 하나의 정형화된 어떤 것으로 상정하는 것은 현실의 역동성을 보지 못한 순진한 생각이다. 세상은 그렇게 변하지 않았다.

기본소득이 복지국가를 일거에 대체할 수 없다는 것이 분명하다면, 기본소득이 복지국가를 대체해가는 과정은 길고도 예측할 수 없는 과정일 것이다. 우리가 세계 도처에서 진행되고 있는 ‘기본소득’ 실험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이다. 다양한 실험들에 대해 열린 마음으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금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제도, 정책, 관례 등은 역사를 조금만 거슬러 올라가면 낯선 것들이었고, 수많은 실패를 거듭했던 결과였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당연한 것은 없었고, 처음부터 성공한 것도 없었다. 또한 처음에 의도했던 그 모습 그대로 만들어진 제도와 정책도 없었다. 왜 그것들은 되고 기본소득은 불가능한가? 기본소득도 사회보험이 그랬던 것처럼 그런 역사적 과정에 있는지도 모른다. 다만 우리가 기다리는 대안으로써 기본소득은 ‘그 기본소득’이 아니라 다양한 형태의 ‘기본소득들’ 일 것이다.

아마도 기본소득들이 복지국가의 새로운 대안이 된다면 기본소득들이 잘 설계된 좋은 제도이기 때문이 아니라 기본소득들을 지지하는 광범위한 정치적 세력이 있고 그들 사이에 튼튼한 연대가 이루어지며, 기본소득들이 그 시대의 생산체제를 가장 잘 재생산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윤홍식 인하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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