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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이한열 부활하다

입력
2017.06.11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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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카파를 거장의 반열에 올린 사진이 ‘어느 인민전선파 병사의 죽음’이다. 스페인 내전 당시 한 병사가 총에 맞고 튕기듯 쓰러지는 이 사진은 너무나 리얼해서 진위논란에 휩싸일 정도였다. 한국에서 촬영된 사진 중에도 이 못지 않게 충격적인 것이 있다. 사진에는 두 젊은이가 등장한다. 의식을 잃은 듯 고개를 떨군 한 청년은 얼굴에서 피가 솟구쳐 떨어지는데 또 다른 청년은 그를 부축한 채 어딘가를 무심히 바라본다. 1987년 6월9일 로이터통신 기자 정태원씨가 촬영한 사진 속의 피 흘리는 청년이 이한열이다.

▦ 이한열이 당시 연세대 정문 앞에서 다른 학생들과 함께 시위하는 사진도 얼마 전 공개됐다. 최루탄에 맞기 전 그러니까 의식을 잃지 않은 마지막 모습이다. 같이 공개된 또 다른 사진에서는 이한열이 무릎을 꿇은 채 두 팔로 버티고 있고 그런 그를 같은 학교 이종창이 부축하고 있다. 다른 학생들이 최루탄을 피해 몸을 뒤로 돌려서인지 두 사람 주변에는 아무도 없다. 그 때문에 사진 속 두 사람은 고립된 듯 외로워 보인다. 이종창은 잠시 후 힘을 내 이한열을 안전한 곳으로 끌고 가서는 정신을 잃고 쓰러진다.

▦ 고문으로 숨진 박종철이 마지막 흔적을 남기지 못한 반면 이한열은 사진으로라도 마지막 순간을 남겼다. 이렇게 두 젊은이의 목숨을 국가권력이 앗아간 것에 대한 분노가 6월 항쟁으로 이어졌다. 문재인 대통령은 6월 항쟁 30년 기념식에서 이한열의 어머니 배은심씨, 박종철의 형 박종부씨와 함께 앉아 ‘광야에서’를 같이 불렀다. 그에 맞춰 서울광장에서 이한열문화제가 열리고 이한열 장례행렬도 재연됐다. 배은심씨는 두 주먹을 불끈 쥔 청년을 그린 경희대 벽화 복원 기념식에서 “한열이가 벽화로 부활한 것 같다”고 말했다.

▦ 그러나 이한열의 어머니는 언론 인터뷰에서 강산이 세 번 변했어도 여전히 괴롭다고 했다. 지난 겨울 촛불집회를 보면서 만약 아들이 최루탄 없는 시절에 살았다면 죽지 않았을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혹시 나중에 아들을 만나면 그 때 왜 그 자리에 서있었느냐고 묻고 싶다고도 했다. 박종철 유가족도 같은 심정일 테고 이태춘, 황보영국처럼 올해 6월 항쟁 기념식을 계기로 널리 알려진 또 다른 희생자 가족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들의 희생 덕에 민주화를 이뤘으니 남은 가족을 위로하는 의무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박광희 논설위원 kh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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