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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 당연한 것과 당연하지 않은 것들

입력
2017.07.26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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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연대 회원들이 유명 프랜차이즈를 운영하고 있는 한 회사 앞에서 최저임금법과 근로기준법 준수 등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최흥수 기자
알바연대 회원들이 유명 프랜차이즈를 운영하고 있는 한 회사 앞에서 최저임금법과 근로기준법 준수 등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최흥수 기자

남미 전통음료 마테(mate)차가 발암물질 취급을 받은 적이 있었다. 마테차를 많이 마신 이들에게 식도암 또는 소화기암이 자주 발생한다는 연구가 나오면서다. 그러나 최근 연구를 보면 마테차 자체가 원인이 아니라 마테차를 뜨겁게 마시는 관습이 암 가능성을 높인다는 결론이 받아들여지는 분위기다. 뜨거운 온도 때문에 세포 변화가 생기고 이런 상황이 장기간 누적돼 암 발생 환경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이처럼 인과관계(causation)라 생각했던 것이 알고 보면 아무 인과관계가 없거나 상관관계(correlation) 정도에 불과한 것으로 밝혀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최저임금과 법인세 문제도 사실 그렇다. 최저임금 인상을 반대하는 쪽에선 최저임금 때문에 고용이 줄 것이라 말하고, 재계에선 법인세를 올리면 기업 투자가 준다고 호소한다. 귀에 못이 박히게 들은 얘기라 마치 인과관계가 있는 얘기로 들린다.

먼저 최저임금을 올리면 고용이 준다는 명제. 과연 참일까? 일견 그럴 것도 같다. 고용주 입장에서 비용이 증가하니 사람을 쓰지 않으려 할 수 있다. 하지만 수십 년 전부터 최저임금과 고용의 관계를 연구한 미국의 사례들을 보면, 저 명제를 쉽게 참이라 보긴 어렵다.

1994년 데이비드 카드와 앨런 크루거의 논문 내용은 이렇다. 미국은 주(州)마다 최저임금을 정할 수 있는데 92년 펜실베이니아가 최저임금을 4.25달러로, 바로 옆 뉴저지는 5.05달러로 정했다. 결과는? 오히려 최저임금이 높은 뉴저지에서 고용이 늘고, 펜실베이니아에서는 줄었다.

반대 결론도 있다. 2006년 데이비드 뉴마크 등이 다른 연구자들의 논문을 검토한 결과, 대부분 연구에서 최저임금 인상은 고용에 악영향을 미치는 점이 발견됐다. 별 영향 없다는 설도 있다. 2008년 톰 스탠리 등이 기존 연구결과를 가지고 메타분석한 결과, 고용감소 효과가 거의 없다고 나타났다.

일각에서 자명한 진실이라 주장하는 법인세 인상과 투자의 관계는 어떨까? 학자들 연구 결과는 저마다 달랐다. 지난해 한국개발연구원(KDI)은 “법인세율 인상 시 투자가 유의미하게 감소할 가능성이 있다”고 결론 냈다. 그러나 2005년 조세재정연구원 보고서에서는, 법인세 부담이 기업 투자에 미치는 효과가 통계적으로 무시할 수 있는 미미한 수준으로 평가됐다.

재정학 최고 권위자 이준구 서울대 명예교수는 최근 자신의 홈페이지에 “법인세율을 올리거나 내리는 것 자체가 투자에 영향을 줄 이유가 없다”고 했다.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 속성상 세율이 올라도 기대되는 순수익률이 0만 넘으면 당연히 투자하는 게 합리적 선택이라는 얘기다.

이 짧은 칼럼에 논문 다섯 편과 글 한 편을 장황하게 나열한 이유는 다름이 아니다. 마치 자명한 진실, 명백한 인과관계처럼 주장되는 것들이 사실은 각 상황에 따라 다른 결과를 낳는 ‘조건부 진실’일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어서다.

결국 최저임금 인상이나 법인세율 조정은 ‘해야 하는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의 싸움은 아니다. 기대되는 점과 우려되는 결과를 종합해, 정부가 결정을 내리는 ‘정책적 판단’ 문제로 귀결되는 게 맞다.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최저임금과 고용, 법인세와 투자 사이 인과관계가 있는 것처럼 말한다면, 그건 논증이 아닌 프로파간다다.

덧붙이자면, 정책 판단 영역에 해당하는 최저임금과 증세 문제를 ‘당위’로 바라보는 시각 또한 우려되는 부분이다. “그 정도 급여는 주자”거나 “당연히 그 정도는 내라”고 여론에 호소할 사안은 아니다. 부자가 영예롭지 못한 나라에서 ‘명예증세’라는 형용모순으로 포장하는 것도 프로파간다에 가깝다. 당장의 여론에 기대기보단, 정책을 맡은 쪽에서 향후 계획과 효과, 부작용 수습책을 솔직하게 제시하고 국민을 설득해 가는 수순이 맞다.

이영창 경제부 기자 anti09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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