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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령의 길 위의 이야기] 작업실

입력
2016.12.20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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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전, 나는 작업실을 구해 친구와 함께 썼다. 조그만 아크릴 이름판도 문에 달았다. 첫 번째 작업실은 광화문에 있었다. 이름이 ‘휜’이었는데, 그 이름을 지어준 시인 친구가 무어라 무어라 ‘휜’이라는 이름의 의미에 대해 설명을 길게 해주었지만 이제는 잊었다. 두 번째 작업실은 양재동이었고 이름은 ‘아직’이었다. ‘아직 쓸 것이 많은 사람들’이라는 의미였지만 친구들은 ‘아직 마감 못한 사람들’일 거라며 킬킬대곤 했다. 그곳에도 이름판이 예쁘게 달려 있었다. 아침 9시 반까지 작업실에 나가 늦은 오후나 저녁까지 원고를 쓰고 나면 방송작가 친구가 먼저 “삼겹살 먹고 싶은데.” 웅얼거리거나 내가 또 “맥주 한 잔 콜?” 친구를 꼬드겼다. 방송작가 친구는 이제 쌍둥이를 낳아 육아에 넋이 나간 상태고 나 역시 비슷한 처지가 되어서 이제 작업실은 꿈도 꾸지 못한다. 그래도 가끔 안부를 전할 때면 우리는 습관처럼 이야기를 한다. “작업실 빨리 구해야지.” “그래야지. 요즘 월세는 얼마나 할까?” 될 법 하지 않은 일이지만 우리가 쓸데없이 부동산 사이트를 뒤지기도 하는 걸 보니, 파스쿠치 라떼 한 잔 사들고 ‘휜’과 ‘아직’을 들락거리던 그 시절이 그리운 모양이다. 작업실에 가려고 아침에 가방을 들다 보면 유달리 묵직한 날이 있었다. 그런 날이면 꼭 가방 안에서 맥주병이 나왔다. 전날 남긴 것을 챙겨온 거다. 어느 날에는 임페리얼 병이 나온 적도 있었고 작업실 문을 열자 먼저 도착한 친구가 난감한 얼굴을 한 날도 있었다. “왜 내 가방 안에 탬버린이 들어있지? 그것도 두 개나.” 지금 그 탬버린은 아마 쌍둥이들의 장난감이 되었을 거다. 아마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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