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이태규
부장

등록 : 2017.04.21 18:57
수정 : 2017.04.21 20:50

[메아리] ‘트럼프 과외’ 필요한 대선후보들

등록 : 2017.04.21 18:57
수정 : 2017.04.21 20:50

‘거래’ 위해선 말 뒤집는 트럼프

선택지 좁은 대북 레드 라인 압박

비전형적 의사결정 구조 파악해야 미국 대통령들은 세상의 선과 정의를 재단하려 했다. 그들에게 안보와 전쟁은 악에 맞서는 선의 집행이자, 성스러운 행위였다.

조지 W 부시 행정부 시절 ‘미국의 적 이름은 사탄이다’라는 말이 정권 내부에서 나왔다. 집권 100일도 안 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이런 선악의 개념이 보이질 않는다. 트럼프의 협상과 발언은 주고받기 거래, 그에 따른 말 뒤집기에 가깝다. 중국을 무역적자의 원흉처럼 말하더니, 북핵 미사일 문제를 해결해 주면 그 문제를 용인하겠다고 했다. 그에게 더는 중국이 환율조작국이 아니고, 북대서양조약기구 나토(NATO)도 무용지물이 아니다. 안보가 경제 문제와 엉켜 구분이 어려워졌고, 그리 외치던 ‘아메리카 퍼스트’도 어디 있는지 알 수 없다. 미국 대통령의 입을 따라가며 세계 현안을 분석하는 것의 유용성도 트럼프에 와서 흐릿해지고 있다. 되짚어 보면 트럼프가 선거 때 한 말은 표가 되는 공약이었지, 지키겠다는 약속은 아니었던 셈이다.

이전 대통령들에게서 보지 못한 트럼프의 비전형적 스타일은 부동산 개발업이란 그의 직업적 투시(透視)의 결과일 수 있다. 부동산 개발업은 땅을 고르고 건물을 세우기까지 층위가 다른 다양한 거래를 해야 한다. 기회가 오면 즉시 잡아야 하기에 수완도 필요한데, 트럼프는 45년 동안이나 그런 일을 했다. 그런 트럼프정부가 최근에는 한반도를 둘러싸고 섀도 복싱을 하고 있다. 실전에 가까운 외교ㆍ군사의 섀도 복싱 가운데 하나가 레드 라인(금지선)이다. 상대방에게 넘어선 안 될 행위로 설정해 둔 레드 라인은, 어기면 군사적으로 응징한다는 경고이기도 하다. 과거 북한에 대한 레드라인은 무의미했다. 중소 대립의 틈바구니에 있던 1968년 1월 북한은 청와대 습격을 위해 공작원 31명을 서울에 침투시키고, 미국의 정보 수집함 푸에블로호를 나포했다. 핵 추진 항공모함 엔터프라이즈호와 군함 30여척이 동해로 달려와 무력시위에 들어갔고, 미국 언론들은 전쟁 예고 기사로 한반도를 클로즈업시켰다. 당시 전운은 갑작스런 북베트남과 베트콩의 남베트남에 대한 테트공세(구정공세)로 풀렸다. 현지 대사관마저 내줘야 했던 미국이 패닉에 빠지면서 한반도의 전쟁 그림자는 걷혔다. 이듬해 4월 미군 정찰기 격추로 미군 31명이 사망하며 북폭론이 다시 거세졌지만 닉슨 행정부는 이 카드를 쓰지 않았다. 응징하면 북한도 자체 설정한 레드 라인에 따라 보복에 나서게 되고, 양측의 레드 라인이 연달아 무너지는 것은 전쟁을 의미했다. 한쪽이 방아쇠를 당기면 상대방의 존재나 피해가 엄청날 수밖에 없는 한반도 식 공포의 균형이었다. 냉전이 풀린 1994년 북폭 계획까지 세웠던 클린턴행정부도 결국은 제네바 합의로 돌아섰다.

이번 4월 위기설의 한 축인 트럼프정부의 레드 라인은 6차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시험으로 좁혀져 있다. 트럼프는 북한에 잘 처신하라고 경고하고, 백악관은 레드 라인 없이 적절할 때 행동에 나서겠다는 말로 긴장을 높인 상태다. 국내 정치상의 필요, 국면 전환용이란 의구심도 없지 않지만 더 큰 문제는 그에게서 합리적 의사결정을 기대하기 어려워진 현실과 구조다. 지난 7일 미국의 시리아 미사일 공격에서 사람들이 놀란 것은 그의 단호함이 아니라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이후 유지되던 백악관 안전보장회의(NSC)란 컨트롤 타워 없이 공격이 단행된 사실이었다. 트럼프식 발언이나 화법에 대해 심리적, 정신적 분석이 중시 되어야 할 판이다. 5ㆍ9 대선에서 선출될 차기 대통령이 마주할 해외 정상은 트럼프가 먼저일 것이다. 이런 트럼프를 만나 대적해 낼 대선 후보는 과연 누구일까. 북한을 설득하고 압박하겠다는 말만 되풀이하는 후보들을 보면 누가 당선되어도 ‘트럼프 과외’는 필요해 보인다. 뉴욕타임스의 컬럼리스트인 니컬러스 크리스토프는 선택지가 많지 않는 북핵 해법을 우려하며, 신의 가호가 있기를 빌었다. 숨쉬기도 미안하다는 사월에 대통령을 잘 뽑아야 할 이유는 많아지고 있다.

이태규 뉴스1부문장 tg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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