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속도조절 신호 못 읽고 국방부 홀로 과속하다 망신살
부지 선정, 전자파 유해성, 환경오염 등 쟁점 놓고 미국 눈치만 살필 듯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ㆍ사드)의 한반도 배치를 협의하기 위한 한미 양국간 논의가 첫발부터 스텝이 제대로 꼬였다.
국방부는 23일 사드 배치를 논의할 한미 공동실무단 구성을 위한 약정 체결을 연기한다고 밝혔다. 전날부터 국방부는 미측과 이날 약정을 체결한다며 ‘보안’을 신신당부했다. 그러다 예고한 시간을 불과 20분 남겨놓고 발표를 돌연 연기하는 수모를 겪은 것이다. 이로써 한미간 사드 배치를 논의할 첫 회의는 국방부의 당초 예상보다 크게 늦춰져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대북 제재 결의안을 채택할 다음 주로 연기됐다.(본보 2월 23일자 1면)
하지만 안보리의 결의안 채택이 임박한 상황에서, 키를 쥐고 있는 중국이 가장 우려하는 사드 배치를 강행하려 했던 국방부에 대해 ‘안보불안을 야기하는 아마추어리즘의 극치’라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우리 협상대상인 미국마저 중국을 달래려 사드 논의에 속도를 조절하고 나섰는데도, 외교적 공조신호를 읽지 못하고 오로지 사드 폭주에 여념이 없는 국방부의 맹목적 태도를 질타하는 목소리가 높다.
국방부는 22일 오후부터 23일 오전까지 미국과의 사드 협의를 놓고 우왕좌왕하며 갈피를 잡지 못했다. 22일 오후5시50분에는 “23일 오전10시30분에 한미 공동실무단 약정체결 관련 보도자료를 배포할 테니 엠바고(보도유예)를 유지해달라’고 출입기자단에 요청해왔다. 내용에 대해서는 “내일 설명하겠다”며 일절 함구했다. 미국과 실무단 가동을 위한 협의가 사실상 마무리됐다는 의미였다. 지난 7일 북한이 장거리미사일을 발사한지 3주 만이었다.
하지만 국방부가 밝힌 시간대가 석연치 않았다. 국방부의 공지에 앞선 오후4시 중국은 왕이 외교부장의 미국 방문을 전격 발표한 상태였다. 중국이 사드의 한반도 배치와 대북 안보리 결의안을 놓고 미국과 담판하러 가는 상황에서 한미간 실무단을 가동한다는 건 앞뒤가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23일 오전, 우려했던 사고가 결국 터졌다. 국방부는 줄곧 “엠바고 내용을 곧 알릴 테니 기다려달라”고 읍소하다 보도자료 배포를 20분 앞둔 10시10분, “약정 체결을 연기했다”고 돌연 공지했다. 실무단 가동시점을 놓고 한미간에 상당한 의견 차가 있었다는 얘기도 전해졌다. 국방부는 뒤늦게 “하루 이틀 약정 체결이 늦어지는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정확히 언제 체결할지는 밝히지 않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미측은 안보리 결의를 앞두고 중국을 의식해 회의를 연기하자고 요청했지만, 우리가 하루속히 사드 논의를 시작하자고 떼를 쓰면서 스케줄이 엉킨 것 같다”고 말했다. 이처럼 국방부가 자중지란을 자초하면서 향후 미측과의 사드 배치 논의는 우리측에 불리하게 진행될 전망이다. 2014년 6월 ‘주한미군 방어용’으로 미측이 처음 거론한 사드가 이제는 우리측이 안달 내며 서둘러 도입해야 할 무기로 변질됐기 때문이다. 기존에 우리가 부담해야 할 부지선정이나 레이더 전자파의 유해성에 따른 지역주민 설득 등 사회적 비용 외에 미국이 지불해야 할 사드 배치 비용 일부도 떠안게 될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나온다.
정부의 다른 관계자는 “국방부의 오버 때문에 미국과의 사드 배치 논의가 주객이 전도된 상황으로 뒤집혔다”고 말했다.
김광수기자 rolling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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