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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리뷰] 탐욕과 방탕이라고? 소비는 억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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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리뷰] 탐욕과 방탕이라고? 소비는 억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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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01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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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화장품회사 '에이본'의 창립 75주년 광고(1961). 방문 판매원인 '에이본 레이디'를 내세워 가정 주부에게 화장품을 팔았다. '소비자도 판매원도 여성'인 독특한 전략이 먹혀 에이본의 브랜드 가치는 한때 샤넬보다 높았다. 휴머니스트 제공
미국 화장품회사 '에이본'의 창립 75주년 광고(1961). 방문 판매원인 '에이본 레이디'를 내세워 가정 주부에게 화장품을 팔았다. '소비자도 판매원도 여성'인 독특한 전략이 먹혀 에이본의 브랜드 가치는 한때 샤넬보다 높았다. 휴머니스트 제공

내가 소비하는 것이 나를 규정한다(I am what I consume). 철없는 욕망 덩어리 같은 말이 아니다. 소비, 즉 재화와 용역을 고르고 사고 쓰고 버리는 행위는 철저히 사회적이다. 젠더, 인종, 계층, 신분, 나이, 국적, 시대가 나의 소비를 좌우한다. 욕망도 한계도 결국 사회가 정해 주는 것이므로. 예컨대 “샤넬 핸드백을 갖고 싶지만, 살 수 없다”는 한 문장은 소비자인 나에 대한 많은 것을 알려준다.

연세대 설혜심 사학과 교수의 ‘소비의 역사’는 소비를 고리로 서구 근ㆍ현대 이야기를 풀어낸다. 소비하는 인간(호모 콘수무스ㆍHomo Consumus)이 등장한, 산업화ㆍ대량생산이 문을 연 소비의 시대. 소비는 탐욕, 방탕, 타락의 억울한 혐의를 썼다. 그러나 소비를 키워드로 역사와 사회를 내밀하게 들여다 볼 수 있다는 게 저자의 접근이다. 이야기꾼 저자답게 책의 어떤 페이지를 펼쳐도 흥미롭다.

프랑스혁명 이후 여성은 남성의 '과시적 소비 대리인'일 뿐, 주체적 소비를 하지 못했다. 우스꽝스러운 코르셋과 치마는 주류 남성 문화가 여성에게 강요한 복식이었다. 휴머니스트 제공
프랑스혁명 이후 여성은 남성의 '과시적 소비 대리인'일 뿐, 주체적 소비를 하지 못했다. 우스꽝스러운 코르셋과 치마는 주류 남성 문화가 여성에게 강요한 복식이었다. 휴머니스트 제공

우선 소비 욕망의 이야기. 서구 제국주의는 ‘백인처럼 하얘지고 싶다’는 욕망을 아프리카에 심고 팔았다. 하얀 것은 곧 깨끗한 것이었다. 매개는 값싼 비누였다. “비누는 곧 문명”(생활용품 제조사 ‘유니레버’의 광고 카피)으로 불렸다. 제조사들은 “비누로 열심히 씻으면 흑인도 하얘진다”고 선전했다. 청결해야 아프리카인이 아프지 않고, 그래야 제국을 떠받치는 노동력을 지킬 수 있다는 검은 속내를 감춘 채. 화장품 회사들이 요즘도 ‘미백 효과’를 내세우는 걸 보면, 어리석은 백색 신화는 아직도 위력적이다.

신부의 웨딩드레스는 신랑의 턱시도보다 비싸다. 남성보다는 여성이 몸 치장에 공을 들인다. 여성은 태생적으로 사치의 동물일까. 300년 전 유럽에선 남성 복식이 여성보다 화려했다. 프랑스혁명을 계기로 검약과 절제가 정치적 의무가 되자, 남성은 여성을 과시적 소비 욕망을 투영하는 대리인으로 삼았다. 여성은 사회에서 배제된 채 코르셋으로 몸을 조이고 치렁치렁한 차림을 한 남성의 트로피가 됐다. 2017년의 여성이 ‘예뻐야 한다’는 강박을 벗지 못한 건, 여전히 비주류라는 의미다.

여성인 저자는 소비에서 이처럼 젠더 코드를 발견한다. 재봉틀은 여성의 가사 노동을 덜어 준 고마운 기계인가, 그렇다면 바느질은 여성이 하는 게 당연한 일인가. 재봉틀이 나왔을 때 노동은 남성의 전유물이었다. ‘여성이 복잡한 기계를 쓰는 건 자연 섭리에 어긋난다’ ‘여성이 다리를 가지런히 모으고 재봉틀 페달을 밟으면 생식기가 흥분한다’ 같은 터무니 없는 주장으로 여성의 사용을 막았다. 19세기 말 재봉틀이 가정에 보급된 건 제조회사의 공격적 마케팅 덕분이었다. 그러나 해피 엔딩은 없었다. 여성 노동력이 한동안 가정에 묶이고 말았다.

‘아모레 아줌마’의 미국 버전인 화장품회사 에이본의 방문판매원인 ‘에이본 레이디’. 19세기에 등장한 이들은 여성도 경제 주체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했다. 하지만 화장품은 여성들끼리 사고 팔고, 결국 여성의 대상화를 강화하는 물품일 뿐. 결과적으로 여성이 ‘남성의 리그’에 진입하는 장벽이 더 높아졌다. “생산과 진보를 중시하는 근대사회가 노인, 여성 등 사회적 약자를 임의로 규정하고 그들을 중심적 위치에서 소외시켰다”고 저자는 분석한다.

흑인 노예노동으로 생산한 설탕을 거부하자는 내용의 풍자 삽화(1791). 휴머니스트 제공
흑인 노예노동으로 생산한 설탕을 거부하자는 내용의 풍자 삽화(1791). 휴머니스트 제공

소비가 종교가 된 시대, 욕망은 평등해졌지만 소비는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더 계급화했다. 소비는 “사회적 연대를 희석시킨다”(사회학자 다니얼 부어스틴)는 지탄을 받았다. 저자는 반대로 소비의 ‘연대 기능’에 주목했다. 18세기 말 영국 소비자들은 흑인 노예노동으로 생산한 설탕을 거부했다. “설탕 1파운드를 소비할 때마다 사람의 살 2온스를 먹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당시 사회평론가의 말이다. 노예와 스스로를 동일시한 여성들이 ‘윤리적 소비’를 주도했다. 영국 전체 가구의 90%가 설탕 소비를 줄였고, 노예제 폐지 논란이 뜨거워졌다.

남북전쟁 이후 대량생산 시대를 맞은 미국 시장은 흑인의 소비력에 기대를 걸었다. 그러나 백인은 분리 평등 정책으로 소비 시장에서 흑인을 가혹하게 차별했다. 흑인은 옷을 훔치는 더러운 존재이므로 탈의실을 쓸 수 없었다. 1960년대 미시시피주의 흑인들은 백인 상점을 보이콧했다. “차별을 사지 말자!” “당신을 증오하는 이에게 돈을 주지 말자!” 백인 사회는 끝내 굴복했다. 흑인들은 구매력이 엄청난 무기임을 깨달았다.

“소비자는 혼탁한 소비사회에서 자신의 역할을 증명하기 위해 투쟁할 줄 아는 존재다. 소비자는 오래 전부터 수동적인 ‘돼지’가 아닌 소비 주체로 역할 해왔다. 깨어 있는 소비자는 소비로부터 해방의 잠재력을 찾고 진정한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주인공이 될 수 있다.” 최근 생리대 위해성 논란에 대입해 보면, 소비자가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가 선명해진다.

최문선 기자 moonsun@hankookilbo.com

소비의 역사

설혜심 지음

휴머니스트 발행ㆍ496쪽ㆍ2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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