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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선 존엄사 가능한가… 나라별 찬반 나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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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선 존엄사 가능한가… 나라별 찬반 나뉘는 이유

입력
2014.11.04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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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엄사를 예고한 미국 오리건주 포틀랜드의 새색시 브리트니 메이나드(29)의 사진. 지난 2일 예고한 대로 스스로 죽음을 택했다. 연합뉴스
존엄사를 예고한 미국 오리건주 포틀랜드의 새색시 브리트니 메이나드(29)의 사진. 지난 2일 예고한 대로 스스로 죽음을 택했다. 연합뉴스

미국의 뇌종양 말기 여성 브리트니 메이너드(29)의 존엄사를 계기로 ‘스스로 택한 죽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 같은 죽음에는 안락사도 포함된다. 존엄사와 안락사는 무엇이 다르며, 어떤 나라는 이를 허용하는데 또 어떤 나라는 허용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지 문답으로 알아봤다.

-‘존엄사’와 ‘안락사’는 다른가.

메이너드가 죽음을 택한 방식인 ‘존엄사’는 ‘안락사’와 다르다. 안락사의 사전적 의미는 ‘극심한 고통을 받고 있는 불치의 환자에 대해 본인 또는 가족의 요구에 따라 고통이 적은 방법으로 생명을 단축하는 행위’이며, 크게 ‘적극적 안락사’와 ‘소극적 안락사’로 나뉜다. ‘적극적 안락사’는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는 불치병 환자 등에게 의사가 직접 약물을 주사해 죽음을 앞당기는 방법이다. 더 적극적이고 인위적인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비해 ‘소극적 안락사’는 환자나 가족의 요청에 따라 생명 유지에 필수적인 영양공급이나 약물투여 등을 중단함으로써 죽음에 이르게 하는 행위를 말한다. ‘소극적 안락사’를 존엄사와 같은 의미로 봐야 한다는 견해도 있지만 미묘한 차이는 있다.

‘존엄사’란 말 그대로 인간의 존엄성을 해치지 않고 품위 있게 죽음을 맞이한다는 뜻이다. 할 수 있는 치료를 다 했지만 회복이 불가능할 경우 죽음에 임박했을 때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중단하는 것이다. ‘남은 생명을 단축시키는 개념’인 안락사와 달리 ‘자연적인 죽음’을 맞이하게 한다. 존엄사의 바탕에는 ‘무의미한 연명치료’가 인간의 존엄성을 해친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존엄사의 방법은 인공호흡기 등의 장치로 연명하고 있는 회복불능의 환자에게서 장치를 제거해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 2009년 선종한 김수환 추기경과 지난 2005년 선종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도 존엄사를 택했다.

-어떤 나라에서 존엄사를 허용하고 있으며 그 이유는 무엇인가.

법적으로 존엄사를 허용하는 국가는 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 등 베네룩스 3국과 스위스, 태국 등이다. 존엄사에 가장 관용적인 나라는 네덜란드다. 네덜란드는 지난 2000년 세계 최초로 불치병 환자에게 존엄사를 허용하는 법을 제정했다. 벨기에도 2002년 존엄사를 합법화했으며 스위스는 말기 환자에 대한 약물 처방을 사실상 묵인하고 있다. 캐나다와 일본 등은 존엄사를 법적으로 인정하고 있지 않지만, 환자의 고통과 죽음의 임박성, 본인의 의사, 고통 제거 수단 유무 등에 따라 허용 가능성을 열어 두고 있다.

프랑스는 원래 안락사 및 존엄사를 강력히 반대했지만, 지난 2004년 존엄사를 선택할 권리를 보장하는 ‘인생의 마지막에 대한 법’을 제정했다. 이 법은 환자가 사전 동의할 경우 ‘죽음의 순간’에 기계적 호흡이나 심폐소생술 등을 중단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미국은 일부 주에서만 존엄사를 허용한다. 메이너드는 캘리포니아주에서 살았지만, 이번 존엄사를 위해 이를 허용하는 오리건주로 이사했다. 오리건주는 미국에서 처음으로 1997년 존엄사를 법으로 허용한 도시다. 오리건주에서는 본인의 명시적 존엄사 요구, 가족의 증언, 치료를 해도 6개월 이상 삶을 이어가기 힘들다는 두 명 이상 의사의 진단이 있을 경우 존엄사를 인정하고 있다. 가족의 동의 아래 산소 호흡기를 제거하는 정도의 존엄사는 50개 주 가운데 40개 주가 인정하고 있다.

이들 나라가 존엄사를 허용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인간답게 죽을 권리를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 2011년 스위스 취리히주에서 실시한 조력자살 금지법안에 대한 주민투표 결과 투표자 27만8,000명 가운데 85%가 조력자살 금지법안에 반대하며 인간답게 죽을 권리를 제한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부분의 국가가 인위적으로 죽음에 이르는 적극적 안락사엔 부정적이지만, 환자 본인이나 가족의 동의 아래 생명 보조 장치를 제거하는 수준의 소극적 안락사나 존엄사는 허용하는 추세다.

-다수의 나라들에서 존엄사를 금지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안락사와 존엄사에는 종교적, 윤리적 문제가 얽혀있기 때문에 법적으로 허용하는 나라가 실은 많지 않다. 유럽의 영국과 독일 등은 존엄사를 부정하며 허용하지 않고 있다. 그 중에서도 엄격한 나라는 독일이다. 독일은 “어떠한 경우에도 사람을 죽일 수는 없다”는 형법에 따라 존엄사와 안락사 모두 인정하지 않는다. 고의가 인정될 경우 최고 종신형을 받을 수 있다. 영국 역시 법적으로 존엄사가 금지돼 있다. 단 식물인간 상태로 3년 이상 지난 경우에는 극히 제한적으로 존엄사를 인정하고 있다.

호주는 1996년 세계 최초로 존엄사 및 안락사를 인정하는 ‘말기환자법’을 합법화하고 당시 말기 환자 4명을 안락사 시켰다. 하지만 각종 논란으로 6개월 만에 이 법은 폐기됐다. 현재는 호주 8개 주 가운데 3개 주만 ‘생명연장 장치 제거’를 의료행위로 인정하고 있다. 이탈리아의 경우 로마 교황청을 안고 있는 등 가톨릭 문화가 뿌리 깊어 사람의 목숨을 인위적으로 다루는 존엄사나 안락사를 인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갈수록 존엄사 허용 여론이 커지고 있고 2008년에는 법원의 첫 존엄사 허용 판결이 나오기도 했다.

-한국에서 존엄사는 가능한가.

한국의 경우 다른 여러 나라들처럼 법적으로 존엄사를 허용하지 않는다. 하지만 1997년 12월 보라매병원 의료진이 회복불능환자를 가족의 요청에 따라 퇴원시켰다가 살인방조죄로 처벌 받은 뒤, 연명의료 중단법을 만들자는 문제제기가 계속되고 있다.

대법원이 존엄사를 처음으로 허용한 것은 2009년이다. 당시 대법원은 가족들이 존엄사를 요청한 식물인간 상태의 김모(당시 77세) 할머니에 대해 “회복 불가능한 사망 단계에 이른 환자가 인간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추구권에 기초해 자기결정권을 행사하는 것으로 인정되는 경우 연명의료 중단을 허용할 수 있다”며 허용했다. 이 판결에 따라 김씨의 인공호흡기를 제거했지만 그는 약 200여일 더 생존했다. 김씨와 같이 연명의료를 받고 있는 환자는 지난해 말 현재 전국에 걸쳐 약 1,500여 명으로 추산된다.

연명의료가 무의미한 치료라는 지적이 계속되자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11월 ‘연명의료결정법(일명 존엄사법)’ 초안을 발의했다. 이 법안은 사망까지 얼마 남지 않은 회복불능환자를 연명의료 중단 대상으로 삼으며, 중단할 수 있는 의료행위는 인공호흡기, 심폐소생술, 혈액투석, 항암제 투여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법안은 발의된 뒤 올해 입법되면 2015년부터 시행할 예정이었지만 아직 국회를 통과하지 못한 상태다. 이와 별도로 정부는 2012년 12월에 ‘무의미한 연명치료 제도화 논의를 위한 특별위원회’를 구성해 다섯 차례 논의 끝에 지난해 5월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권고안’을 발표했다. 지난 7월 보건복지부가 이 권고안을 국가생명윤리정책위원회에 보고했고 입법 추진 중이다.

존엄사 관련 입법이 늦어지는 이유는 뭘까. 국내에서는 생명에 대한 자기결정권이나 존엄하게 죽을 권리에 대한 인식 수준이 아직 낮다고 지적하는 사람도 있다. 종교계가 생명권의 본질을 침해하는 행위라며 반대하는 것도 영향을 준다. 연명의료 중단에 관한 고민이 환자 가족의 경제적인 부담에서 시작되는 것이 문제라는 지적도 있다. 지난해 환자단체연합회가 회원 31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는 관련 법률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는 사람이 93%를 차지했다.

연명의료 법률 제정보다 호스피스 인프라 구축이 우선이라는 지적도 있다. 연명치료 제도화 특위의 권고안에도 “환자가 연명의료 대신 호스피스-완화의료를 선택할 수도 있도록 정부와 사회는 적극적으로 제도를 마련하고 지원해야 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죽음을 앞둔 환자가 연명의료 대신 평안한 임종을 맞을 수 있도록 돕는 호스피스 병동 수는 2011년 기준으로 전국 43개(상급종합병원 12개, 종합병원 21개, 병원 4개, 의원 6개)에 불과해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김지수 인턴기자(숙명여대 미디어학부 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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