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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대변이식술

입력
2017.07.16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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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에서 근래 입증된 놀라운 치료가 하나 있습니다. 의사들에게도 낯선 FMT(fecal microbita transplantation)라는 약자로 불리는, 일명 ‘대변이식술’입니다. 말 그대로 건강한 다른 사람의 인분을 환자의 소화관에 이식하는 치료 방법입니다.

원리를 간단히 설명하면 이렇습니다. 우리 몸의 소화관에는 다양한 균이 정상적으로 존재합니다. 그 중에는 Clostridium difficile이라는 균이 있는데, 건강한 장 안에서는 별 문제를 일으키지 않지만, 환자의 정상적인 장내 세균이 사라지면 독성을 일으키는 균입니다. 이 균이 한번 독성을 일으키기 시작하면 환자는 설사나 발열 등 심각한 감염 증세를 보이고, 다른 항생제 치료에도 잘 반응하지 않습니다. 이때 건강한 사람의 분변을 인위적으로 환자의 소화관에 주입해 정상균총을 회복하는 이론입니다.

실제 FMT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환자의 동의입니다. 그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건강하고 신선한 분변을 구하는 것입니다. 둘 다 현실적으로 제법 어려운 일입니다. 일단 기증자는 가족 중에서 찾습니다. 가족의 분변은 환자의 분변과 유전학적으로 전혀 일치하지는 않지만, 환자의 입장에서 누군가의 분변이 소화관에 들어가야 한다면 가족의 것을 선택하는 것이 안도감을 주기 때문입니다. 미국에는 일명 ‘대변 은행’도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대부분 엄격한 검사를 통과한 가족이 기증합니다.

분변은 배출된 지 6시간 이내의 신선한 것이어야 하고, 치료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200g에서 300g 정도가 필요합니다. 의료진은 준비된 기증자에게서 충분한 양을 채취해서 동결건조합니다. 이 치료제를 시술 직전에 믹서기에 갈아야 합니다. 의료용 믹서기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보호자가 병원 밖에서 한 번만 사용될 믹서기를 사와야 합니다. 이 갈린 치료제를 멸균된 거즈로 거르고, 용액에 갭니다. 현 연구 결과에서는 물보다 식염수가 좋으며, 500mL 이상의 용액에 개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 이 블렌딩 방법은 아직 확립되지 않아 많은 학자들이 갑론을박중입니다.

이제 환자의 몸에 이 용액을 주입해야 합니다. 방법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콧줄로 위나 십이지장에 주입하거나, 관장하거나, 내시경으로 대장에 주입하는 것입니다. 두세 가지를 동시에 해도 됩니다. 셋 다 입을 통과하지 않아 분변의 맛을 보는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지만, 다행히 위쪽보다는 아래쪽으로 주입하는 방법이 치료 효과가 더 좋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보통 큰 부작용 없이 3일 내에 증상이 호전되고, 놀랍게도 치료 성공률이 매우 좋습니다.

FMT는 미국에서 활발히 연구 시행되는 치료입니다. 그러나 정서에 맞지 않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국내에선 아직 일부 병원에서만 시행하는 단계입니다. 2013년에는 FMT에 관한 연구로 미국 식품의약국에서 인분을 실험용 약으로 규정하기도 했습니다. 현재 치료 범위도 점차 다른 질환으로 확대되는 추세입니다.

학생 때 FMT를 논문에서 접하고 큰 충격에 빠졌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것은 많은 인문학적 상식을 뒤흔드는 종류의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똥물에 튀기다” “아끼다 똥 된다” “똥 묻은 개” 등등, 분변은 인간사에서 아주 다양하게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나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처럼 분변은 실제로 의학적으로 규명된 치료약이었던 겁니다. 이렇게 의학이라는 과학은 때로는 매우 흥미로운 것을 입증해낼 때가 있습니다. 또한 우리가 매일 변기에 앉아 내보내는 소화물은 고통 받는 누군가에게 간절한 치료약으로 쓰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치료를 떠올리면 배 한쪽에서 이상하게 욱욱한 느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일까요.

남궁인 응급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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