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등록 : 2017.06.17 05:00
수정 : 2017.07.01 15:39

[SF, 미래에서 온 이야기] 2차 대전 종전시킨 원자폭탄, 작가 웰스에서 시작됐다

등록 : 2017.06.17 05:00
수정 : 2017.07.01 15:39

<15>위대한 예언자 H.G. 웰스

#1

“연쇄반응 가속하면 폭탄 가능”

1914년 작품서 아이디어 제시

아인슈타인 등 물리학자들 놀라

루즈벨트 설득해 원폭 개발 나서

#2

타임머신 투명인간 유전자조작

선구적 개념 따라 연구 이어져

세계 정부 주창한 이상주의자

유엔 탄생과 인권선언에 기여

1945년 8월 9일 일본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자폭탄으로 피어오른 버섯구름. 당대의 물리학자들에게 연쇄반응을 이용해 핵분열반응을 가속시키면 폭탄이 될 수 있다는 아이디어를 제공한 것은 H.G. 웰스의 소설 ‘해방된 세계'였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루즈벨트 대통령 각하, 저는 우라늄을 재료로 한 새롭고 중요한 에너지원이 곧 사용될 수 있다고 예측합니다.

이렇게 만들어질 새로운 형태의 폭탄은 가장 낮추어 생각해도 극도로 강력한 폭탄이 될 것입니다.”(앨버트 아인슈타인,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한 달 전인 1939년 8월, 물리학자 레오 실라르드는 동료 유진 위그너와 함께 아인슈타인을 찾아갔다. 실라르드는 몹시 초조한 상태였다. 독일에서 망명한 유대인 과학자였던 그는 히틀러의 광기와 위험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아인슈타인에게 현재 인류의 지식수준에 의하면 파멸적인 폭탄이 생겨나는 것은 시간문제이니, 최소한 히틀러보다 먼저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들어보던 아인슈타인은 고개를 저었다. “핵 붕괴 에너지의 총량이 크다는 건 알지만 붕괴 속도가 너무 느려요. 폭탄이 될 수 없습니다. 러더퍼드도 불가능하다고 했어요.” 실라르드는 말했다. “연쇄반응을 일으키면 돼요.” 그는 한 SF소설에 나온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그 소설에서는 핵반응을 ‘가속’시켜 만든 폭탄이 등장한다. 이 폭탄은 무서운 파괴력으로 ‘세상이 끝날 때까지’ 폭발을 계속한다.

아인슈타인은 놀랐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루즈벨트 대통령에게 편지를 보내 미국이 원자폭탄을 먼저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저 유명한 맨해튼 계획은 이렇게 시작되었고, 지구를 몇 번이나 파괴하고도 남을 핵폭탄은 그렇게 생겨났다.

레오 실라르드(오른쪽)를 비롯한 몇몇 물리학자들은 독일의 원자폭탄 개발 가능성과 가공할 위험성을 일찌감치 감지했다. 루즈벨트 대통령에게 이를 경고하기 위해 앨버트 아인슈타인(왼쪽)의 명성이 필요했다. 아인슈타인과 실라르드가 대통령에게 보낸 편지 초고를 전후 공개해 보이고 있다.

원자폭탄의 원리를 제공한 소설은 바로 H.G. 웰스가 1914년에 발표한 ‘해방된 세계(The World Set Free)’였다. 원자폭탄이 쓰이기 31년도 전이었다. 실라르드도 이 소설에 근거하여 중성자 연쇄반응을 발견했다.

우주 비행을 이루어내다

1938년 10월 30일, 미국 CBS 라디오는 핼러윈 특집 드라마를 방송하다 돌연 급박한 목소리로 뉴스를 전했다. “화성인이 뉴저지를 습격하고 있습니다. 시민 여러분께서는 긴급 대피해 주십시오. 이는 훈련이 아니라 실제상황입니다.” 시민들은 공포에 질려 피난길에 올랐다. 전화와 교통이 마비되었고 시민들은 외계인과 싸우기 위해 총을 들고 거리로 나섰다. 후속조사에 의하면 600만 청취차 중 100만 여명이 그 뉴스를 사실로 믿었다.

H.G. 웰스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우주전쟁’(2005). UIP 제공

미디어 역사상 가장 큰 해프닝으로 기록된 이 대형 사고를 친 사람은 당시 23세였던 오손 웰스였다. 3년 뒤 20세기 최고의 걸작으로 불리는 영화 ‘시민 케인’을 만든 사람이다.

알려졌다시피 이 드라마는 H.G. 웰스가 1898년 발표한 소설 ‘우주전쟁’을 각색한 작품이다. 같은 해 천문학자 퍼시벌 로웰이 ‘화성에 운하가 있다’고 발표한 이래 사람들이 화성인이 있다고 믿었던 시절이었다(실은 이탈리아어인 ‘cannail(큰 틈)’을 ‘운하(canal)’로 잘못 번역한 것이었지만).

흥미로운 이야기는 더 있다. 이 소설을 재미있게 읽은 아이들 중 16세의 로버트 고다드란 소년이 있었다. 그는 소설에서 화성인이 타고 온 비행선에 골몰했고, 다음 해에 ‘우주를 비행하겠다’고 결심하기에 이른다. 그는 평생 조롱에 시달렸는데, 당시의 과학자들은 “진공에는 로켓을 추진시킬 물질이 없으니 날 수 없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고다드는 작용과 반작용의 원리를 이용해 뒤로 추진하는 것으로 진공에서도 앞으로 갈 수 있다고 믿었고, 1926년 세계 최초로 액체추진 로켓을 만들어 내었다. 단지 로켓에 대한 이해부족으로 제대로 평가되지 못하다가 사후에야 재평가되었다. 뉴욕타임스는 1969년, 닐 암스트롱이 달에 이르기 사흘 전에야, 과거에 “고다드는 고등학생도 아는 지식을 모른다”고 혹평했던 것을 사과했다.

웰스의 소설에 빠져 액체추진 로켓을 개발한 로버트 고다드가 있었기에 우주비행 시대는 가능했다. 1926년 고다드가 개발한 첫 액체추진 로켓은 시험비행서 4.2초간 비행했다. 미 항공우주국 제공

예언자로 불린 작가

SF를 아동문학으로만 보는 편견이 있는 한국에서는 웰스마저도 아동소설 작가로 소비하는 경향이 없잖아 있지만, 실상 웰스는 노벨문학상 후보에 네 번이나 오른 대문호였고 1920~30년대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사상가였다. 그 어떤 작가도 웰스만큼 미래를 예언하는데 능하지 않았다. 그의 예측이 어찌나 줄줄이 맞아 떨어졌는지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예언자’라는 칭호가 붙을 정도였다.

그는 자신의 논픽션 ‘과학과 기계의 발전이 인간의 삶과 사유에 미친 반작용에 대한 예측’(1901)에서 자동차, 철도가 지역 간 거리를 좁히고 교통체증이 일어날 것이며, 도시 확장으로 교외 지구가 발전할 것을 예언했고, ‘다가올 세계의 모습(The Shape of Things to Come)’(1933)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의 발발과 양상을 거의 정확히 예측했다. ‘네 번째 해(In the Fourth Year)’(1918)에서는 전 세계 국가들의 대표자로 구성된 세계정부 설립을 진지하게 제안했는데, ‘지나친 이상주의’로 여겨졌던 이 생각은 국제연맹과 국제연합의 탄생으로 약소하게나마 실현되었다.

타임머신, 투명인간, 유전자 조작 생명체, 세계 대전 등 H.G. 웰스의 예언은 SF의 단골 소재이자 과학 연구 대상으로 현실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쳤다. 사진은 영화 ‘타임머신’.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제공

더해서 그가 소설에서 제시한 타임머신, 우주전쟁, 투명인간, 유전자 조작 등의 개념은 지금까지도 SF의 단골소재인 것을 넘어서서, 실제 과학 연구에도 문자 그대로 적용된다. 소설 ‘투명인간’(1897)에서 웰스는 ‘물체가 보이는 것은 빛이 반사되거나 흡수되거나 꺾이기 때문이니, 물에 넣은 유리가 보이지 않듯이 몸에 닿는 빛이 공기와 같은 굴절률을 갖게 하면 보이지 않게 할 수 있다’고 했는데, 이는 현재 연구 중인 광학미채(투명 망토)의 기본 원리다. ‘타임머신’(1895)에서 웰스는 ‘시간은 공간의 한 축이므로, 공간을 이동할 수 있듯이 시간을 이동할 수 있다. 광속보다 빠르게 회전하면 시간을 넘을 수 있고, 비행기를 통해 위아래로 이동할 수 있듯이 기계를 통해 시간을 이동할 수 있다’는 이론을 폈는데, 지금도 대부분의 시간여행 소설에서(그리고 현실의 과학자들도) 경전처럼 인용하는 원칙이다. ‘모로 박사의 섬’(1896)은 영국 과학계에 동물 생체해부에 대한 논쟁을 불러 일으켰고, 발간 2년 만에 영국생체해부금지협회(BUAV)가 생겨나게 했다. 이 단체는 현재까지도 동물권리운동에 앞장서고 있다.

H.G. 웰스가 꿈꾼 하나의 세계정부는 느슨한 형태로나마 국제연맹 창설의 주춧돌이 되었고, 오늘날 국제연합으로 이어지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하나의 세계를 꿈꾼 이상주의자

웰스는 비단 문명 비평가와 예언자의 역할에 그치지 않았다. 현실에서 더 나은 미래를 만들기 위해 뛰어다닌 사회 운동가이기도 했다. 자본주의의 모순을 비판한 사회주의자였고, 세계 인류가 하나의 국가를 만들 수 있다고 믿은 이상주의자였다. 국제연맹 창설의 제안자이자 열렬한 지지자였고, 1940년 지금은 ‘생키선언(Sankey Declaration)’으로 불리는 인권선언의 작성과 홍보에 깊이 관여했다. 8년 뒤, 세계 58개국이 참여해 채택한 유엔 세계인권선언의 많은 부분이 그의 문구를 따라 작성되었다.

웰스가 ‘우주전쟁’에서 외계의 침공을 그렸던 것은 전쟁을 바랐기 때문이 아니라, ‘지구 바깥의 적’을 가정하는 인식의 전환을 통해 지구인 전체가 하나의 인류임을 상기시키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도 세계사 입문서로 널리 추천되는 그의 ‘세계사 대계(압축판 세계사 산책)’의 첫 장이 무려 ‘지구의 탄생’과 ‘생명의 탄생’에서 시작하는 점은 웰스가 세상을 보는 큰 그림을 짐작하게 한다.

그런 이상주의자였던 웰스였지만, 말년에 두 번째 세계전쟁이 일어나고 자신이 경고한 핵폭탄이 예언 그대로 생겨나는 것을 지켜보면서 깊은 절망에 빠졌다. ‘공중전쟁(The War In the Air)’(1908)의 1941년 재출간본 서문에서 그는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이 작품은 제1차 세계대전이 있기 이전에 세계대전의 가능성과 함께 대량살상무기로 인류 문명이 몰락할 수 있음을 경고한 소설이었다. 재출간본이 나온 것은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무렵이었다. 그가 죽기 5년 전, 원자폭탄이 실제로 지상에 투하되기 4년 전이었다.

“내가 말했잖아. 이 썩을 멍청이들아.(I told you so. You damned fools.)”

김보영ㆍSF 작가

허버트 조지 웰스

1866년 9월 21일~1946년 8월 13일. 영국의 대작가, 과학소설가이자 문명 비평가. SF의 아버지로 불리며, 100여편의 과학소설뿐 아니라 역사, 정치, 사회 다방면에 저서를 남겼다. 7세 때 발목을 다쳐 지루함을 떨치려 책을 읽다가 독서광이 되었다. 어려운 환경에서 여러 일을 전전하다 18세에 런던대 생물학과에 진학, 올더스 헉슬리의 할아버지인 토머스 헉슬리 밑에서 수학했다. 27세 때 이미 교과서를 썼고 29세 때 ‘타임머신’을 써 일약 유명작가가 되었다. SF의 무수한 단골 소재의 개념을 처음 제시했고, 탁월한 선구안으로 미래를 예측했다. 자신이 경고한 세계대전이 실제로 발발하고, 자신이 예언한 원자폭탄이 실제로 사용되는 것을 보며 절망 속에서 세상을 떠났다.

<소개된 책>

우주전쟁

H.G. 웰스 지음

임호경 옮김

문학동네 발행

타임머신

H.G. 웰스 지음

김석희 옮김

열린책들 발행

투명인간

H.G. 웰스 지음

김석희 옮김

열린책들 발행

모로 박사의 섬

H.G. 웰스 지음

한동훈 옮김

문예출판사 발행

세계문학단편선: 허버트 조지 웰스

H.G. 웰스 지음

최용준 옮김

현대문학 발행

H.G. 웰스의 세계사 산책

H.G. 웰스 지음

김희주 전경훈 옮김

옥당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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