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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세상보기] 페북지기

입력
2016.07.27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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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조선일보 페이스북에 기사 하나가 소개됐다. 반응이 엄청난데, 두 문단짜리 기사에 1,900명이 반응 이모티콘을 눌렀다. 댓글은 547개 달렸다. 문제의 기사는 사건을 객관적으로 요약한 짧은 글이다. 사건 내용은 이렇다. 게임 중독이 된 것이 억울했던 한 남자가 차를 몰고 넥슨 사옥으로 돌진했다. 흥미롭지만 이 정도 화제가 될 기사는 아니었다. 대체 왜 관심을 끌었을까. 이 페이스북 포스팅에 반응한 2,500여명 중 이 사건에 관심 있었을 사람은 반도 채 되지 않을 것이다. 이 글에 대한 반응이 뜨거웠던 이유는 기사 소개 멘트다. 조선일보 페북지기(이하 조페지기)는 기사 소개 글에 이렇게 썼다. “사옥 앞에 뭔가 있었을 텐데” “햄버거 350개 있었을 텐데”

조페지기 말대로 넥슨 사옥 앞엔 ‘뭔가' 있었다. 조페지기가 이야기하는 ‘뭔가’와 ‘햄버거 350개’는 최근 메갈리아 논쟁과 관련이 있다. 넥슨이 페이스북 페이지 ‘메갈리아 4’를 후원하는 티셔츠를 입고 사진을 올린 성우 김자연의 목소리를 자사 게임 ‘클로저스’에서 삭제하는 일이 있었다. 이에 항의하는 시위가 넥슨 사옥 앞에서 열렸다. 넥슨 사옥 앞에 있던 '뭔가'는 시위대거나 햄버거다. 당일 햄버거 350개가 지원물품으로 왔다고 한다. 이 기사엔 “메퇘지(메갈리안과 멧돼지 합성어)들”이란 조롱 조의 댓글이 달렸다. 햄버거 350개는 교묘한 조롱의 키워드다.

웃음엔 여러 종류가 있다. 풍자는 도가 넘은 조롱과 다르고 도가 넘은 조롱은 저열한 웃음과는 또 다르다. 무면허 음주 차량이 돌진한 사건과 그 앞에 있을 시위대를 함께 이야기한 의도에 한 점의 불순도 없길 바란다. 신문 지면에서 편집국의 의도를 드러내는 장치가 ‘헤드라인’과 ‘기사 배치’였다고 하면 소셜미디어에선 그 역할을 포스팅 메시지가 담당한다. 페이스북을 통해 유입되는 젊은 독자층이 제일 먼저 보게 되는 건 조페지기의 기사 소개 멘트다. 조선일보 페이스북 운영팀에 따르면 “10대, 20대, 30대” 젊은 독자층의 눈높이에 맞춰 친밀한 커뮤니케이션이 전략이라고 한다. 최근 조선일보 페이스북을 보면 아슬아슬하게 친밀함과 저열한 유머코드 사이를 줄타기하는 느낌이다. 줄타기를 잘하는 건지, 아니면 한 발을 오물에 이미 넣었는지 헷갈린다.

성폭행 혐의로 고소당한 연예인의 이야기는 ‘장난 거리’가 아니다. 조선일보는 연예인 박유천 씨가 성폭행 혐의 기사를 소개하면서 “아 빨리 좀 나와요. 화장실을 몇 시간을 쓰는 거야 대체”라고 썼다. 사건과 관련 있는 화장실이란 장소로 드립을 쳤다. 아빠에게 실수로 야한 셀카를 보낸 딸의 사연을 소개하며 “노모 (노모자이크) 버전이 보고 싶다면?”이란 글귀를 덧붙였다. JTBC의 사드 오역 보도 정정 건에 관해서는 조선일보 공식 계정으로 “가만 보면 지가 뭐나 되는 줄 알고 거드륵거리는 것들이 모가지에 공구리를 치던데 말이지”라는 댓글을 달았다. 여기서 거드륵 거리는 ‘지’는 누굴 지칭하는 걸까? 주어 없는 화법이어도 다들 알아듣는다. 이런 식이다. PR뉴스 인터뷰를 통해 조선일보는 “디지털 뉴스 본부 내에 소셜 미디어팀과 디지털 편집팀이 있는데 여기서 협의 하에 페이스북을 운영한다”고 말했다. 조선일보 소셜 계정이 구사하는 저급 유머코드는 편집부의 실수가 아니라 전략이다.

재미 좇다 망했으면 좋겠다. 저열한 웃음이 ‘젊은 독자층의 눈높이’를 위한다는 이유를 들어, 허용되진 않길 바란다. 언론의 권위 같은 얘기는 꺼내기도 싫다. 권위가 아니라 윤리가 문제다. 페이스북은 기자의 윤리 정신을 벗어 던지고 날뛸 수 있는 무중력 지대인가. 한국기자협회는 인권보도준칙, 성폭력범죄보도 세부권고기준, 성폭력 사건 보도 가이드라인 등 윤리 보도를 위한 수많은 원칙을 가지고 있다. 독자에게 친밀하게 다가간다는 명분이 이 모든 기준을 무시할 수 있는 만능카드는 아니다.

조소담 비트니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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