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촛불과 태극기, 극명하게 나뉜 ‘탄핵의 봄날’

알림

촛불과 태극기, 극명하게 나뉜 ‘탄핵의 봄날’

입력
2017.03.10 15:56
0 0
헌법재판소의 박근혜 대통령 탄핵인용이 발표된 10일 오전 서울 종로경찰서 앞에 모인 시민들이 방송을 보며 환호하고 있다. 서재훈 기자
헌법재판소의 박근혜 대통령 탄핵인용이 발표된 10일 오전 서울 종로경찰서 앞에 모인 시민들이 방송을 보며 환호하고 있다. 서재훈 기자

박근혜 대통령의 파면이 결정된 10일, 탄핵 찬반 양측은 희비가 엇갈렸다. 지난 3개월간 광장에서 “즉각 탄핵”을 외쳤던 찬성 측은 노고를 다독이고 변화의 물결이 일상으로 이어지길 염원한 반면, 극한 대치로 맞섰던 반대 측은 거리에 주저앉아 오열과 욕설, 과격한 행동으로 분노를 토해냈다.

이날 오전 11시20분쯤 서울 종로구 지하철3호선 안국역사거리 헌법재판소 방향 왼편에서 박 대통령 파면 소식을 접한 ‘박근혜정권퇴진비상국민행동(퇴진행동)’ 집회 참가자들은 일제히 환호했다. 서로를 얼싸안고 눈물 흘렸고 일부는 경찰 차벽을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하며 기쁨을 만끽했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 이미경(51)씨는 “쌓인 체증이 이제서야 내려가는 것 같다”며 “세월호 참사가 탄핵 사유가 안 된다니 아쉽지만, 박 대통령이 민간인 신분으로 (검찰) 조사를 받으면 7시간의 진실도 밝혀질 거라 믿는다”고 말했다. 퇴진행동 집회 참가자들은 청와대 방면으로 행진한 뒤 곧바로 해산한 뒤 오후 7시 광화문광장에서 촛불문화제를 통해 다시 모였다. 이 자리에서 이태호 퇴진행동 상황실장은 “촛불이 승리했다”고 말했다.

탄핵이 인용되길 바라며 헌재 선고 장면을 TV와 인터넷 생중계로 지켜본 시민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회사 사무실에서 숨죽이며 선고 장면을 지켜봤다는 직장인 장규리(35)씨는 “이정미 권한대행이 ‘그러나’라고 말할 때마다 (기각될 것 같아) 너무 절망적이어서 일이 손에 안 잡혔는데 인용돼서 너무 다행”이라며 “쏟아지는 (국정농단) 보도를 보며 이 나라에 살고 있다는 게 부끄러웠는데, 그나마 민주주의가 살아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회사원 조현준(30)씨도 “헌법질서 수호와 정치적 폐습 청산이라는 안창호 재판관의 보충의견이 너무 와 닿았다”며 “이번 결정으로 그 말대로 이뤄지길 바란다”고 했다. 미국 코네티컷대 대학원에 재학 중인 홍준성(31)씨는 “함께 유학하고 있는 학생들 모두 한 집에 모여 결과를 지켜봤다”며 “박 대통령의 파면이 확정되자 환호하기보다 대부분 안도하는 분위기였다”고 전했다.

탄핵 반대 편에 섰던 이들을 위로하는 목소리도 많았다. 정석환(68)씨는 “친구들 열에 둘은 탄핵 반대 집회에 적극 나섰는데 상실감이 너무 큰 것 같다”며 “선고 전에는 한심하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지금은 불쌍해 보인다. 이번 조기 대선에선 제대로 뽑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헌재 만장일치로 ‘대통령 파면이 결정된 10일 서울 안국역 일대에서 태극기 집회 참석자들이 파면 결정에 오열하고 있다. 류효진 기자
헌재 만장일치로 ‘대통령 파면이 결정된 10일 서울 안국역 일대에서 태극기 집회 참석자들이 파면 결정에 오열하고 있다. 류효진 기자

반면 아침 일찍부터 안국역사거리 남쪽 방면 도로에서 진행된 ‘대통령탄핵기각을위한국민총궐기운동본부(탄기국)’ 집회는 대통령 파면이 결정되면서 일순간 중단됐다. 예상과 다른 결과에 당황한 무대 위 진행자들은 말을 잃었고, 집회 대열 중간중간에서 스마트폰으로 선고 결과를 확인한 참가자들은 거친 욕설을 터뜨렸다.

곧이어 주최 측이 마이크를 통해 선고 결과를 전하자 일부 참가자는 거리 곳곳에 주저 앉아 “나라가 망했다”며 오열했다. 주최 측이 애국가 반주를 틀며 분위기를 진정시키려 애썼지만 순식간에 집회 현장은 “촛불이 설치는 바람에 억울한 박근혜 대통령이 희생됐다” “계엄령을 선포하고 (탄핵소추안을 가결한) 국회의원들을 체포해야 한다” “50일 뒤 태극기 대통령을 만들자” 등의 아우성으로 가득 찼다. 일부 시위자는 분노의 화살을 언론에 돌렸다. 한 50대 여성은 “국정농단 사태를 보도한 기자들은 자기들이 자손만대에 해를 입힌 대역 죄인인 줄 알아야 한다”며 취재 기자에게 소리쳤다. 집회는 이내 과격 시위 양상으로 변질됐다. 격앙된 분위기에 부상자가 속출했다.

그 틈에서 현실을 받아들이고 냉정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김모(75)씨는 “다들 흥분한 걸 알겠고 나도 너무 화가 나지만 사람이 다치는 건 아닌 것 같다. 과격한 행동을 자제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충남 서산에서 집회 광경을 TV로 시청한 김모(59)씨도 “나를 비롯해 박 대통령을 뽑은 주변 사람들 모두 탄핵이 안됐으면 했는데 (파면을) 애써 받아들이는 분위기”라며 “격해진 분위기에 다치는 사람이 더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고 어서 새로 (나라를) 꾸려 나갈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곽주현 기자 zooh@hankookilbo.com

김형준 기자 mediaboy@hankookilbo.com

신은별 기자 ebshin@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