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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년 만에 맞잡은 손… 경기는 졌지만 “코리아”는 뜨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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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년 만에 맞잡은 손… 경기는 졌지만 “코리아”는 뜨거웠다

입력
2018.05.04 21:27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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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여자 탁구 단일팀 선수들이 4일 스웨덴 할름스타드 아레나에서 열린 세계선수권 준결승에서 일본에 패한 뒤 한반도기를 펼쳐 들었다. 1991 지바 세계선수권 이후 27년 만에 결성된 단일팀은 일본에 아쉽게 0-3으로 패했다. 할름스타드=EPA 연합뉴스
남북 여자 탁구 단일팀 선수들이 4일 스웨덴 할름스타드 아레나에서 열린 세계선수권 준결승에서 일본에 패한 뒤 한반도기를 펼쳐 들었다. 1991 지바 세계선수권 이후 27년 만에 결성된 단일팀은 일본에 아쉽게 0-3으로 패했다. 할름스타드=EPA 연합뉴스

비록 졌지만 27년 만에 남북이 손을 맞잡았다는 것만으로 의미 있는 경기였다.

특히 단일팀의 유일한 북한 선수 김송이(23ㆍ세계랭킹 49위)는 끈질긴 플레이로 한국 팬들에게도 깊은 인상을 남겼다.

남북 여자 탁구 단일팀 ‘KOREA(코리아)’는 4일(한국시간) 스웨덴 할름스타드 아레나에서 열린 세계탁구선수권대회 단체전 준결승에서 일본에 0-3으로 완패했다. 코리아는 전지희(25ㆍ포스코에너지ㆍ35위)와 양하은(27ㆍ대한항공ㆍ27위), 북한의 김송이를 내세웠지만 세계랭킹 3위 이시카와 카스미(25), 6위 히라노 미우(18), 7위 이토 미마(17)가 버틴 일본의 벽을 넘지 못했다.

지난 1991년 지바 세계선수권 이후 27년 만에 단일팀을 구성한 코리아는 동메달에 위안을 삼았다. 이번 대회는 3,4위전 없이 두 팀이 공동 동메달을 받는다. 단일팀 합의에 따라 남북 선수 9명 모두가 메달을 목에 건다. 한국이 세계선수권 단체전에서 동메달을 딴 건 2012년 도르트문트 대회 이후 6년 만이다. 또 북한은 단일팀 동메달로 2016년 쿠알라룸푸르 대회 동메달에 이어 세계선수권 단체전에서 2회 연속 메달을 수확했다.

남북은 원래 지난 3일 8강에서 대결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경기시간 5시간 전 양측과 국제탁구연맹(ITTF)이 논의 끝에 단일팀을 꾸리며 전격적으로 준결승에 직행했다.

단일팀이 점수를 낼 때마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응원하는 남북 선수단. 할름스타드=AP 연합뉴스
단일팀이 점수를 낼 때마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응원하는 남북 선수단. 할름스타드=AP 연합뉴스
가장 인상 깊은 경기를 보여준 북한 에이스 김송이. 할름스타드=EPA 연합뉴스
가장 인상 깊은 경기를 보여준 북한 에이스 김송이. 할름스타드=EPA 연합뉴스

한국 에이스 전지희가 첫 주자로 나섰지만 이토 미마에 0-3(2-11 8-11 9-11)으로 무너지면서 기선 제압에 실패했다.

두 번째 경기가 백미였다. 2016년 리우올림픽 여자 단식 동메달리스트인 북한 에이스 김송이는 일본의 강자 이시카와 가스미를 상대로 주눅 들지 않았다. 특히 2-2(4-11 11-6 8-11 13-11)로 팽팽하게 맞선 마지막 5세트는 손에 땀을 쥐는 명승부였다. 5차례나 듀스가 이어졌다. 김송이는 몇 차례 매치 포인트를 선점했으나 1점이 부족해 결국 14-16으로 무릎을 꿇었다. 3단식 주자 양하은은 한 수 위의 히라노 미우에게 1-3(4-11 5-11 11-9 6-11)으로 졌다.

한반도기를 함께 손에 들고 함께 웃는 남북 선수들. 할름스타드=EPA 연합뉴스
한반도기를 함께 손에 들고 함께 웃는 남북 선수들. 할름스타드=EPA 연합뉴스

갑작스럽게 단일팀이 결성된 탓에 호흡을 맞추거나 작전을 공유할 시간이 절대 부족했다. 남북 선수들은 유니폼도 기존 걸 각자 그대로 입고 경기에 나섰다.

그러나 남북 선수들이 뒤섞인 벤치의 분위기는 뜨거웠다. 단일팀이 득점을 올릴 때마다 남북은 약속이라도 한 듯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박수를 보냈다. 김송이가 실수했을 때도 “힘내, 괜찮아”라고 격려했다. 김송이가 이시카와를 매치포인트까지 밀어붙였을 땐 큰 환호도 나왔다. 관중석도 덩달아 단일팀을 응원하기 시작했다. 한 외국인 관중은 ‘One Korea, One Table(하나의 한국, 하나의 탁구)’이라고 적은 팻말을 들어 보였다.

경기 뒤에도 단일팀 선수들은 이별이 아쉬운 듯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북한 김남해(22)는 한국 서효원을 뒤에서 껴안았고 한국 유은총(24)이 김송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북한 차효심(23)은 “(헤어지는 게) 서운합니다”라고 했다. 유은총은 “이제 떨어지게 돼 아쉽다. 그렇지만 슬픈 분위기는 아니었다. 또 볼 사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다음을 기약했다. 이후 선수들은 ITTF가 준비한 대형 한반도기에 각자 이름을 적어 넣었다. 소형 한반도기에도 서로 이름을 써서 나눠 가졌다. 북한 김송이는 한국 유은총에게 ‘김송이 바보, 유은총 언니’라고 적었다. 전날 연습 때 유은총이 김송이를 이겨 ‘바보’라고 놀린 걸 상기시킨 것이다.

경기 뒤 안재형 한국 감독은 “앞으로 함께 연습하면 전력이 상승해서 일본과 중국에 좀 더 가까이 갈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김진명 북한 감독 역시 “아쉽지만 남북 모두 고생했고 잘했다”고 말했다. 현장에서 경기를 지켜 본 27년 전 지바의 주역 현정화(49) 한국마사회 총감독도 “북한 관계자들과 함께 앉아 함께 응원하니 27년 전이 생각났다. 선수 시절과 비교해 또 다른 느낌이었다. 감동적이었고 뭉클했다”고 밝혔다.

코리아는 27년 전 지바의 기적을 재현하지 못했다. 그러나 탁구공 하나로 남북이 하나라는 사실을 다시 일깨웠다. 이번 만남을 통해 3개월 앞으로 다가온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단일팀 구성 논의도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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