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개성공단에서 북측 근로자 임금 등으로 지급된 달러가 북한의 핵ㆍ미사일 개발에 사용됐다는 주장을 하고 나섰다. 홍용표 통일부 장관은 12일 기자회견에서 개성공단 임금 등 달러 현금이 북한의 대량살상무기(WMD)에 사용된 관련자료를 갖고 있다고 밝혔다. 홍 장관은 14일 KBS 일요진단에 출연해서는 개성공단 근로자 임금 등으로 북측에 지급된 달러의 70%가 노동당 39호실 또는 서기실로 유입돼 핵과 미사일 개발, 사치품 구입 등에 쓰였다는 요지의 발언을 했다. 통일부도 이날‘입장자료’를 내고 홍 장관의 주장을 뒷받침했다.
이 같은 주장을 펴는 정부 의도는 분명하다. 갑작스럽게 취해진 개성공단 전면중단 조치의 불가피성을 강조하고 정당화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와 금융시스템이 다른 북한에서 노동당 39호실이 모든 외화를 관리해왔다는 사실은 오래 전부터 알려진 사실이다. 여기에는 북한이 정상적 무역거래나 해외 파견 근로자 임금을 포함해서 합법 또는 불법으로 벌어들인 외화가 모두 포함된다. 개성공단서 번 달러도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새삼스럽게 개성공단 임금 달러가 39호실로 유입된다는 사실을 콕 찍어 핵ㆍ미사일 개발에 사용됐다고 주장하는 것은 속이 뻔히 들여다 보이는 억지다.
정부가 개성공단 임금이 WMD에 사용된다는 관련자료를 갖고 있다는 주장도 그렇다. 홍 장관은 이 자료들을 공개할 수 없는 사정이 있는 것처럼 말했지만 개성공단 근로자들에게 지급된 달러라고 특별히 꼬리표가 있을 리 없는데 얼마나 구체적인 자료가 있을지 의심스럽다. 실제로 그런 자료가 있다 해도 문제는 남는다. 2013년 3월 채택된 유엔 안보리 결의 2094호는 북한의 WMD개발에 도움이 될 수 있는 금융거래와 현금 제공을 금지하고 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유엔안보리에 개성공단 임금이 핵개발 등에 쓰이지 않는다는 보고서를 제출해왔다. 하지만 홍 장관 말대로라면 연간 1억 달러에 달하는 개성공단 임금이 핵개발 등에 전용된다는 자료를 갖고 있으면서도 허위 보고를 한 셈이 된다. 명백히 결의 위반이자 국제사회에서 우리정부의 신뢰성을 실추시키는 사안이어서 논란을 피하기 어렵다.
홍 장관은 그런 자료가 있었음에도 개성공단의 의미를 생각해 그 동안 안정적 유지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국제사회에도 설명해왔다고 밝혔다. 스스로 우리 정부가 국제사회에 허위보고를 해왔음을 실토한 셈이다. 우리 내부에서야 어떻게든 남북관계 최후 보루인 개성공단을 유지해보려는 정부당국의 고충을 이해해줄 수도 있지만 냉엄한 국제사회에서는 통하기 어려운 변명이다.
미국이 북한과 거래하는 제3국의 개인ㆍ기업까지도 포괄적으로 제재할 수 있는 강력한 대북 제재법안 입법절차를 신속하게 마치고, 일본 정부도 대북 송금 제한과 북한을 경유한 선박의 입항 금지 등 대북 제재조치를 한층 강화했다. 이 같은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강화 기류 속에 정부의 유엔안보리 결의 위반 논란이 당장은 묻힐지 모르나 두고두고 부담이 될 수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16일 개성공단중단 사태 등과 관련한 국회연설을 한다면 이 문제에 대해서도 납득할 만한 설명이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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