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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윤선] 간통죄를 믿습니까?

입력
2015.05.12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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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끌벅적했다. 간통죄가 성적자기결정권을 위배해서 위헌이란다. 그럼 간통해도 된다는 소리냐, 여자들은 어떻게 보호받냐, 판사들이 자기들 좋으려고 위헌으로 판단했구나 등 우려하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나왔다. 특히나 각종 아침 프로 즉 남편 출근시키고 비로소 tv켜는 여성을 상대로 한 프로는 경쟁하듯 간통죄 폐지에 대한 우려를 쏟아냈다.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받아들이지 못 하는 것도 이해 못 할 바 아니다. 특히 “성적자기결정권” 이란 모호한 표현을 듣고 있자면, 더욱 그렇다. 아니 도대체 성적자기결정권이라는 게 뭐 얼마나 대단한 것이길래, 건강한 가정을 유지할 의무보다 더 신성하다는 것인가. 그런 식으로라면 자기장기매매결정권도 신성불가침의 권리일 텐데 장기매매를 처벌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런 식으로라면 자기목숨결정권도 신성불가침의 권리일 텐데, 자살을 도와준 사람을 처벌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자살자를 처벌하지 못 하는 이유는 이미 사망했기 때문이다).

이에 필자는 성적자기결정권이라는 알 듯 모를 듯 한 표현 대신 간통죄에 대하여 보다 근본적이고 도발적인 회의를 제시하고 싶다. 바로 “간통죄를 믿슙니까?”라고 말이다. 다시 말하자면, 간통죄가 건강한 가정을 유지해주고 있다고 믿고 있습니까?라고 말이다.

간통죄가 폐지됐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간통죄가 폐지됐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간통죄는 1905년 대한제국 시절 처음으로 등장했다. 누구를 처벌하기 위하여? 바로 간통을 저지르는 유부녀를 처벌하기 위하여! 그럼 간통을 저지르는 남자들은? 허헛. 그게 어찌 죄인가. 무릇 사내가 여러 여성을 취하는 게 자랑이면 자랑이지 어찌 죄가 되겠는가, 조선 시대에 말이다. 그걸 투기하는 여성들이 오히려 벌받고 쫓겨나면 쫓겨났지 말이다.

그렇다, 감히 하늘 같은 남편을 배신한 여성을 엄히 처벌하기 위한 것, 바로 이게 바로 간통죄의 제정 목적이다. 그 후 몇 번이고 법이 바뀌어 남자도 비로소 처벌대상이 되었으나, 태생부터 비뚤어진 법이 어찌 제대로 적용이 될까? 이상하게도 여성을 보호하기 보다는 오히려 여성이 고소 대상이 되는 경우가 더 많았다. 왜 그럴까? 여전히 운용을 남성들에게 더 편리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잘 알다시피 간통죄로 배우자를 고소하려면 그 전에 먼저 이혼소송이 제기되어 있어야 한다. 즉 헤어질 것을 각오해야만 고소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경제적으로 열위에 있는 여성들이 어디 쉽게 그 맘을 먹을 수 있겠는가? 남편 주장에 따르면 “겨우 딱 한 번, 그것도 실수로” 그런 것인데? 시댁 주장에 따르면 “속상하겠지만 남자들이라면 다들 한 번쯤 실수하니 다들 참고 사는 일” 이라는데?

이러지도 못 하고 저러지도 못 하고 저 웬수를 죽여 살려하며 고민하다 보면 6개월쯤은 쉽게 지나간다. 그런데 이 법은 또 간통을 안 때로부터 6개월이 지나면 고소할 수가 없단다.

그러다 보니 정작 여성들은 남편들을 간통죄로 고소하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반면 남성들은 경제적으로 우위에 있기에, 아내의 간통을 아는 순간 간통죄로 고소할 때 여성만큼의 고민이 필요하지 않았다. 결국 남편들이 더 고소하기 쉽게 만들어졌다 이것이다(물론 그렇다고 해서 어느 남자라고 손쉽게 “아싸 내 아내 바람났어요”라며 고소할까. 상대적으로 더 쉽다는 말에 불과하니 오해하지 않으셨으면 한다). 이것이 바로 간통죄의 알몸이다.

이처럼 간통죄는 간통을 줄이는데 도움도 안 되고(등산로마다 넘쳐나는 모텔을 보라), 건강한 가정 생활 유지에 별 도움도 못 주고(날로 늘어나는 이혼율을 보라), 오히려 여성들이 이 죄로 인하여 피해를 보는 경우가 더 많았다 이 말이었다. 침해되는 개인의 권리보다 도모되는 공적 이익이 훨씬 커야 개인의 권리를 침해할 명분이 생기는데, 이건 원 공적 이익에 별반 도움도 안 되는 법을 굳이 유지할 필요가 있겠나 싶은 것이다.

간통은 결국 부부 당사자 간의 약정 위반이다. 민사로 해결하면 된다. "4주 후에 뵙겠다"는데도 조정이 되지 않으면 함께 살 수 없는 것 아니겠는가. 사진은 드라마 '사랑과 전쟁' 한 장면.
간통은 결국 부부 당사자 간의 약정 위반이다. 민사로 해결하면 된다. "4주 후에 뵙겠다"는데도 조정이 되지 않으면 함께 살 수 없는 것 아니겠는가. 사진은 드라마 '사랑과 전쟁' 한 장면.

간통죄 유지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가끔 내게 묻는다. “당신의 남편(필자는 아직 한 번도 결혼하지 않았다)이 바람을 피워도 여전히 그렇게 고고하게 말할 수 있겠냐”고 말이다. 당연히 고고할 수는 없다. 힐러리 클린턴이 회고했듯, 나 또한 내 남편의 목을 닭처럼 비틀어버리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미워한다고 해서 그것이 형법으로 단죄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지난 주에도 말씀드렸다시피 법은 원래 제일 늦게 적용되어야만 한다. 개인들끼리의 모든 행위를 법이 일일이 다 규제한다면 그 얼마나 삭막한가(기실 법은 그럴 재주도 없다). 근친상간이 부적절하다고 하여, 근친상간 하는 자들을 처벌할 것인가. 개인 사이의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고 해서 모두 다 처벌할 것인가. 흰 머리 될 때까지 서로에게 충실하기로 한 약속을 어겼다면, 이는 당사자간의 계약 위반이고, 민사로 해결하면 된다. 간통은 당사자간의 약정 위반이다.

한 때 영국은 동성연애자들을 처벌하기까지 했다. 참으로 기 찬 법이 아닌가? 안타깝게도 간통죄 처벌을 바라보는 다른 나라 법학자들의 시선도 별로 다를 바 없었다.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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