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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경성 기자

등록 : 2017.06.17 10:00

왜 통일장관 후보는 정상회담 ‘사초’를 지웠나

등록 : 2017.06.17 10:00

대화록 폐기한 혐의로 기소돼 곤욕 치렀지만

文정부 중책 맡은 조명균 전 안보정책비서관

2007년 10월 제2차 남북 정상회담 때 노무현 전 대통령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간의 대화를 기록하기 위해 배석했던 조명균(붉은 원 표시) 통일부 장관 후보자. 당시 직책은 청와대 통일외교안보정책비서관이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17일 현재 조명균 통일부 장관 후보자는 대법원 선고를 기다리고 있다.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폐기한 혐의로 2013년 기소돼서다.

1, 2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고 최종심에서도 항소심이 뒤집히진 않을 것으로 조 후보자나 그를 지명한 문재인 대통령은 믿고 있을 것이다. 역사를 조작하려고 ‘사초(史草)’에 손댔다는 누명은 그를 지긋지긋하게 괴롭혀 왔다.

조 후보자가 충실한 사관(史官)이었다면 그는 정쟁(政爭)의 피해자다. 그의 상관이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 다른 건 몰라도 기록 관리를 가장 중요하게 여긴 대통령이었다는 데에는 별 이견이 없다. 조 후보자 역시 역사적인 정상회담을 후대에 교훈을 줄 만한 멀쩡한 역사로 만들려고 두 남북 정상이 마주한 자리에 배석해 대화 내용을 고스란히 기록으로 남겼다.

기록은 빌미가 된다. 조선 시대 사관은 모든 조정 행사와 회의에 들어가 역사 편찬 자료로 쓰이는 사초를 작성했는데 연산군 4년(1498년) 벌어진 무오사화(戊午士禍)는 바로 이 사초가 화근이었다. 그래서 ‘무오사화(戊午史禍)’라고도 불린다. 사관 김일손을 비롯한 수많은 신하가 모함에 걸려 죽임을 당했고 이미 죽은 김종직은 관이 파헤쳐져 시신의 목이 잘렸다.

핑계는 대선 후보(문 대통령)의 정체성이었다. 2012년 대선을 앞두고 당시 여당인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 측 인사들은 ‘노 전 대통령이 정상회담에서 북방한계선(NLL)을 포기했다’며 색깔론을 폈다. 경쟁자를 종북으로 몰려고 꺼낸 것이 정상회담 대화록이었다. 선거를 이기려고 비밀 문서를 유출해 공개한 것은 악의적 범법 행위였지만 이긴 자의 죄는 용서됐다.

반면 패배 결과는 참담했다. 이명박 정부 때 죽음으로 내몰린 노 전 대통령은 박근혜 정부에선 부관참시(죽은 뒤 큰 죄가 드러난 사람의 관을 쪼개고 시신을 자르는 일)됐다. 그러나 국가정보원이 공개한 대화록 어디에도 ‘포기’ 발언은 없었다. 일이 꼬인 건 참여정부 인사들 때문이었다. 국정원 보관본이 미심쩍다며 원본을 보자고 해놓고, 그걸 못 찾은 것이다.

자승자박이었다. 당시 새누리당은 사초가 폐기ㆍ은닉됐을 가능성을 제기하며 2013년 7월 참여정부 관계자들을 검찰에 고발했다. 검찰은 기민했다. 조 후보자 등 관련자를 출국 금지하고 대통령기록관을 샅샅이 뒤졌지만 대화록은 안 나왔다. 초본 삭제 흔적과 수정본이 발견된 건, 노 전 대통령이 퇴임 전 복사해간 ‘봉하 이지원(청와대 문서관리 시스템)’에서였다.

검찰은 노 전 대통령 지시에 의한 ‘사초 삭제’로 결론 내리고 백종천 전 청와대 외교안보실장과 통일외교안보정책비서관이었던 조 후보자를 기소했다. 14개월 간 재판 과정에서 최대 쟁점은 삭제된 회의록 초본이 대통령기록물에 해당하는지 여부였다. 재판부는 대통령기록물이 아니라고 봤고, 완성본과 혼동하지 않게 하려면 폐기하는 게 옳다고 했다. 무죄였다.

실록이 완성되면 사초는 물에 빨아 내용을 모두 없앴다. 정국에 파란을 일으키지 않도록 막기 위해서였다. 세초(洗草)라 했다. 사초 관리도 엄격했다. 사초를 훔치거나 위조ㆍ변조한 자, 내용을 다른 이에게 누설한 자는 사형에 처했다. 조 후보자가 했던 일은 일종의 세초였다는 것이 법원 판단이다. 역사적인 남북 정상회담을 성사시킨 주역인 데다 사관 역할까지 하고도, 되레 냉대되고 곤욕까지 치러야 했던 조 후보자가 돌아왔다. 감회가 남다를 듯싶다. 권경성 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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