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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세상보기] 최저임금 1만원은 왜 지지 받지 못하는가

입력
2017.01.04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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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당 최저임금 1만원이라는 진보진영의 목표는 지지받지 못하고 있다. 이렇게 말하면 노동계 활동가들은 난색을 표하거나 반박하고 싶어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지난 2년 동안 수백명의 사람들을 만나 계속 묻고 다닌 나로서는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 그것이 좋은 교육을 받은 진보인사들의 비전일 수는 있겠지만, 가난한 사람들과 일하는 사람들의 지지를 끌어내지는 않는다고.

재작년 참여연대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1,000명 가운데 약 25%가 최저임금을 1만원 혹은 그 이상으로 인상하기를 원했다. 약 35%가 8,000원대로 인상하기를 원했다. 그리고 약 25%는 6,000원대로 인상하기를 원했는데 이는 이미 이루어졌다. 나머지는 동결 또는 잘 모른다는 답변이었다. 이 여론조사를 긍정적으로 해석하면 응답자의 과반이 최저임금이 상당히 오르기를 바란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런데 사람들에게 직접 물어보면 이 통계가 드러내지 않는 부분을 보게 된다. 최저임금 1만원에 찬성하는 사람들은 대개 “그래야 한다”는 등 당위를 내세울 뿐, 자신의 삶이 실제로 나아질 것 같느냐는 질문에 긍정하는 이는 드물다. 반면 반대하는 이들은 그보다 훨씬 많은데다 학을 떼고 싫어한다. 그들은 최저임금 1만원이라는 제안이 자신의 삶을 위협한다고 여기기도 하는데 그런 견해는 부자가 아닌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가난한 계층에서 훨씬 흔하게 관찰된다. 심지어 지금의 임금수준으론 생활이 어렵다고 말하는 경우에도 그렇고, 특별히 보수적이지 않더라도 그렇다.

은퇴 후 경비근무를 하는 50대 신씨는 최저임금의 대폭 인상이 자신과 같은 처지에 있는 일자리를 줄일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그가 일하는 아파트 단지는 작년에 최저임금이 6,000원을 넘어서자 경비인력 절반을 감축했다. 남편과 사별한 후 육아도우미 일로 생계를 유지하는 50대 김씨의 생각도 비슷했다. 실직하면 당장 먹고 살 수가 없다는 그녀는 복지를 늘리는 편을 선호한다고 했다. 8년째 같은 식당에서 서빙 업무를 해왔다는 40대 주부 김씨는 최저임금이 오르면 물가도 오르기에 전혀 나아질 것이 없다고 말했다.

각종 아르바이트를 다 해봤다는 30대 초반의 남씨는 지금도 최저임금이 지켜지지 않으며 임금을 떼일 경우 구제받기도 어렵다면서, 시급한 건 최저임금 인상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테이블이 달랑 6개 있는 카페를 경영하는 이씨는 8,000원까지는 괜찮지만 임금이 1만원으로 오른다면 가게 문을 닫겠다고 했다. 그는 아르바이트 시급보다 월세나 프랜차이즈 지출이 더 크지 않냐는 질문에, 문제는 그게 아니라 당장 사업을 유지할 수 없게 되는 현실이라고 잘라 말했다.

한편 찬성하는 의견은 이런 식이었다. 주물공장에서 일하는 최씨는 노조집행부의 결정이니 따라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모든 직종의 최저임금이 똑같이 1만원이 된다면 제조업 노동자가 공장을 떠나 서비스직으로 옮겨갈 것이라며 부작용을 우려했다. 광고회사에 근무하는 박씨는 최저임금 인상으로 소득격차를 줄여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그렇게 되더라도 시급 1만원보다 많이 받고 있는 자신의 급여는 그대로일 거라고 내다봤다.

한국 노동인구의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집단은 연 소득 2,000만원에서 4,000만원을 버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이들은 시급으로 환산하면 이미 1만원 이상을 받고 있기에 최저임금 인상을 자신과 직결된 일로 여기지는 않는다. 따라서 그 목표는 보다 훨씬 적은 수의 집단, 즉 연 소득 1,000만원에서 2,000만원 사이에 드는 사람들을 타깃 삼게 되는데, 이들은 비정규직 노동자거나 영세자영업자로서 임금의 대폭인상이 가져올 변화를 마음 속으로부터 두려워한다. 나는 모든 사람이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최저임금 1만원이 저소득 계층의 요구를 반영한 목표라고 보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탁상에서 결정된 전략에 가까울 것이다.

손이상 문화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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