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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진의 삶이 있는 풍경] 사진은 사랑이다

입력
2017.03.21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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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난 아이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숨기지 않았다.

“우와! 이런 데도 갔었나봐?”

“이것 좀 봐봐. 엄마! 이 사진 되게 멋지다!”

아이는 엄마의 손을 잡아 끌고 사진전 오프닝 행사를 앞둔 전시장 내부를 누비고 다녔다. 즐거운 덕담과 인사말들이 즐거이 떠다녀야 할 날임에도 불구하고 전시장의 분위기는 꽤 무거웠다. 다행히 한껏 생글생글한 열한 살 소녀의 밝은 기운이 다소 가라앉은 전시장의 분위기를 다독거렸다. 엄마도 싫지 않은 듯 아이에게 손을 맡겼고 가족으로 보이는 침울한 표정의 연세 높은 어른들도 환하게 따라 웃었다. 아이의 재재한 웃음소리는 이윽고 한쪽 벽면에 별도로 설치된 사진들 앞에서 더욱 커졌다. 사진 속 주인공은 바로 그 아이 자신이었다. 태어날 때부터 쭉 커가는 모습이 곱게 펼쳐져 있었다.

“아하하하! 내가 이런 때도 있었어? 되게 쪼끄만 하네!”

“그러게~. 세상에나 나도 몰랐네. 이런 걸 다 찍어놓고 보여주지도 않았구나. 에휴!”

엄마는 감동과 아쉬움이 겹친 눈빛으로 일일이 모든 사진들마다 시선을 맞추었다. 모녀의 움직임을 따르던 나는 잠깐 스치듯 흐르는 그녀의 눈물을 보고 나서야 잠시 고개를 돌렸다. 전시된 모든 사진들은 그녀의 남편이자 아이의 아빠인 문화일보 고 임정현 기자의 작품들이다.

몇 달 동안 사진기자 시절 동료였던 고인의 추모사진전을 준비했다. 40대 중반의 중견 사진기자였던 그는 2년 전 갑작스레 명을 달리했다. 한창 일할 나이였고 특유의 너털웃음으로 주변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던 사람 좋은 기자였다. 가볍지 않은 그와의 인연으로 인해 추모사진전 기획을 일임 받은 나는 그가 남긴 모든 사진파일을 여러 차례 하나하나 살폈다. 생을 멈춘 이의 지난 삶을 살피는 데 있어 그가 직접 찍어 남긴 사진을 보는 것만큼 적절한 것은 없다. 어떤 감정으로 무엇을 보려 했는지를 확인하다 보면 그가 남긴 삶의 궤적이 자연스레 읽혀진다. 더군다나 전문적으로 업을 삼은 사진기자였던 고인의 사진들을 살피게 되면서 그의 사람됨과 열정에 대해 더 깊이 느낄 수가 있었다. 취재의 영역 안이든 개인적인 관심도의 의중이든 자신의 감정에 따라 세세히 변화하고 안착된 내면의 본성들이 그림처럼 눈앞에 펼쳐졌다. 특히 하나뿐인 딸에 대한 한없는 사랑의 감정을 확인하게 되는 시간 내내 뭉클한 심정이 가슴에 밀려들었다.

귀결된 사진이미지를 보는 행위이지만 그보다는 이미지가 담기게 된 과정을 충분히 이해함으로써 고인의 감정적인 밀도에 더 가까이 다가설 수 있다. 사진을 보면 자신에게 주어진 생의 순간들 속에서 무엇을 얘기하려 했는지, 누구를 아끼고 마음을 주려 했는지 고스란히 전달이 된다. 이 글을 읽는 누구든 최소한 자신의 스마트폰 카메라에 담긴 사진들을 돌아보는 것으로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일이다. 본디 결과물의 형태에 집중하게 되는 게 사진이지만 과정상의 감정확인이라 할 수 있는 그 행위 자체에 집중하다 보면 짐짓 그 의미가 달라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피사체와의 관계성 그리고 그 자신이 머물고 있는 공간성 등에 대한 가치부여를 통해 사진이 자기내면과 충분히 닿을 수 있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팔불출이라 불리며 자신의 딸에 대한 무한한 사랑의 감정을 담은 고인의 사진들은 더없이 아름다웠다. 수많은 사진들 속에서 하나의 성장일기처럼 기록된 딸아이를 향한 그의 감정은 결국 사랑이다. 사랑할 줄 아는 삶이야말로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그리고 영면과 더불어 이승의 존재감 또한 소멸되기 마련인 고인의 귀한 사랑노래를 이렇게나마 세상에 대신 전하는 사람으로서 나는 또한 얼마나 감사한 노릇인가.

결국 사진은 사랑이다. 그래서 사진하길 참 잘 했다는 생각을 요즘 들어 확신하게 된다.

임종진 달팽이사진골방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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