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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계규 화백의 이사람] ‘맨 손’으로 일어난 황목치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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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계규 화백의 이사람] ‘맨 손’으로 일어난 황목치승

입력
2017.08.04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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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 아라키. 요즘 야구 잘 하던데~.” 지난 3일 프로야구 LG와 롯데의 경기가 열린 잠실구장. 지난해까지 LG에 몸 담았던 이병규 스카이스포츠해설위원이 황목치승(29)을 보자 특유의 시크한 덕담을 건넸다. 황목치승은 국적이 한국이지만 황목(荒木)이라는 특이한 성을 쓴다. 일본인이던 할아버지가 제주도 여성과 결혼하면서 ‘아라키’라는 성의 한자를 우리 발음대로 쓴 것이다. 그래서 LG 선수들은 그를 그렇게 부른다.

황목치승은 요즘 LG에서 가장 ‘핫’한 선수다. 지난달 26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넥센과 경기에서 명장면을 만들어낸 덕이다. 1-3으로 뒤져 패색이 짙은 LG의 9회말 마지막 공격에서 1사 후 박용택의 중월 2루타로 한 점을 따라 붙은 LG는 박용택을 대주자 황목치승으로 교체해 마지막 승부수를 띄웠다. 2사 후 이형종이 우전안타 때 황목치승이 홈으로 쇄도했지만 심판은 태그아웃을 선언했다. 양상문 LG 감독은 곧바로 비디오 판독을 신청했고, 올 시즌 가장 긴장되는 판독 시간이 흘렀다. 육안으로 보기엔 명백한 아웃이었다. 하지만 다른 각도에서 느린 화면을 재생한 방송사 중계에 몸을 웅크리며 태그를 피한 황목치승의 왼손이 간발의 차로 먼저 홈플레이트에 닿은 장면이 포착됐다. 결국 LG는 황목치승의 ‘손’으로 동점을 만들고 4-3으로 극적인 역전승을 일궜다. 이순철 SBS스포츠 해설위원은 “슬라이딩을 하는 과정에서 저렇게 손을 바꾸는 건 정말 대단한 기술”이라고 극찬했다.

제주남초교 5학년 때 야구를 시작한 황목치승은 제주제일중 3학년 때 청소년 국가대표에 뽑힐 정도로 주목 받던 유망주였다. 중학교 졸업 후 일본 교토국제고로 야구 유학을 떠났고, 고교 때도 실력을 인정받아 야구 명문 아세아대 합격증을 받았다. 하지만 대학 정식 입학을 앞두고 떠난 전지훈련에서 상대 팀 주자의 스파이크에 찍혀 무릎 인대 2개가 완전히 끊어져 선수 생명의 기로에 섰다. 이후 2년간 수술과 재활을 반복했지만 옛 기량을 회복하지는 못했다. 그나마 이 부상으로 군 면제를 받아 2012년 김성근 전 한화 감독이 이끌던 독립구단 고양 원더스에 입단하면서 재도전의 꿈을 꿀 수 있었다. 그는 국내 고교를 졸업하지 않아 신인드래프트를 거쳐야 프로에 입단할 수 있었는데 2013년 신인드래프트에서 어떤 구단도 그를 호명하지 않았다. 또 한번 좌절한 그를 LG가 신고선수(연습생) 신분으로 영입했다. 지난 3년간 2군에서 보낸 시간이 더 많았다. 황목치승은 “비디오 판독을 할 때 한 번만 살려 달라고 하늘에 기도했다”고 말했다. 살아온 인생처럼 누구보다 간절한 마음이었다. 성환희기자 hhs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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