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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원은 일 없어 주5일 노는데”… GM 본사는 대책 함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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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원은 일 없어 주5일 노는데”… GM 본사는 대책 함구

입력
2017.10.26 04:40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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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 가동률 20%까지 곤두박질

비정규직 수백명 벌써 해고당해

“내년 6월 다 폐쇄” 소문만 흉흉

거액 기술료 내 매출원가 높고

본사에 지급 이자만 1300억원

비정상적 비용 지급이 추락 원인

24일 전북 군산의 한국지엠 생산공장 내에 '일하고 싶다'라고 적힌 노조원들의 플래카드가 걸려있다.
24일 전북 군산의 한국지엠 생산공장 내에 '일하고 싶다'라고 적힌 노조원들의 플래카드가 걸려있다.

“공장에 일감이 없어 일주일 중 닷새는 출근을 못 하고 있습니다.”

24일 전북 군산시 한국지엠(GM) 생산공장에서 만난 생산직 직원 박인호(가명)씨의 얼굴에는 좌절감이 묻어났다. 한국GM 군산공장 가동률이 20%까지 곤두박질치면서 잔업과 특근이 사라져 월급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수당도 없어졌고, 2교대 근무는 1교대로 줄었다. 한 달에 단 5, 6일밖에 일하지 못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입사 11년 차인 그가 현재 한 달에 손에 쥐는 돈은 약 170만원. 그나마 정규직이라 통상임금의 70% 정도 받을 수 있어서다. 군산공장 비정규직 수백 명은 최근 일감이 없어 해고당했다. 최씨는 “동료 직원 중에 쉬는 날이 길어지면서 생계를 위해 일용직 막노동을 나가는 이들이 늘고 있다”며 “지금 같은 상황이 언제까지 계속될지 모른다는 사실에 더욱 암담하다”고 하소연했다.

24일 전북 군산의 한국지엠 생산공장 주변에 비정규직 노조원들이 내건 플래카드가 걸려있다.
24일 전북 군산의 한국지엠 생산공장 주변에 비정규직 노조원들이 내건 플래카드가 걸려있다.

이날 오후 4시 30분 한국GM 군산공장 동문 앞. 예전 같으면 정규직 1,800명, 비정규직 1,400명 등 약 3,200명에 달하는 직원들이 공장을 24시간 돌리기 위해 주간조, 야간조가 맞교대를 하며 붐볐을 시간이다. 하지만 이날은 퇴근하는 직원들이 문밖으로 빠르게 사라지자 공장 전체가 불이 꺼지며 곧 깊은 어둠에 잠겼다. 군산공장 노조가 건물 외벽에 내건 ‘군산공장 정상화 확약하라, 일하고 싶다’ ‘임박한 위기 가만히 있다간 당한다’ 플래카드들만이 바람에 나부껴 황량한 분위기를 더했다. 퇴근하던 생산직 직원은 “현재 공장에 출근하는 인원이 예전의 3분의 1 수준인 1,050명 정도에 불과하다”며 “회사에서 내년 4월에는 쉐보레 ‘캡티바’ 등에 공급하던 디젤엔진 생산라인마저 폐쇄한다고 결정해 군산공장의 일감이 더욱 줄어들 것”이라고 우려했다.

군산은 현재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 폐업과 함께 수천 명에 달하는 현대중공업 직원들까지 지갑을 닫아, 지역경제가 나락으로 추락하고 있다. 지역주민은 “군산의 아파트 가격이 3,000만~4,000만원 떨어졌다”며 “만에 하나 GM이 군산공장을 폐쇄하면 이 지역은 유령도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군산 주요 상권 중 한 곳인 경원동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박모씨는 “최근까지 24시간 장사를 했으나, 손님이 없어 지금은 낮에만 하고 있다”며 “상권이 죽으면서 아예 가게를 닫는 상인들도 많아지고 있다”고 전했다.

쉐보레 준중형 세단 ‘크루즈’, 레저용 차량(RV) ‘올란도’ 등을 생산하는 군산공장은 부평, 창원공장과 함께 한국GM의 국내 주요 생산기지다. 하지만 스포츠유틸리티(SUV) 인기로 준중형 세단의 수요가 크게 줄어든 데다 GM 쉐보레 브랜드가 2013년 유럽시장에서 철수한 이후 수출길도 막히면서 가동률이 급격히 떨어졌다. 부평과 창원공장 가동률도 60~70%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GM의 올해 9월까지 누적 판매량은 40만1,980대를 기록, 전년 대비 7.5% 감소했다. 군산공장 노조 관계자는 “GM이 군산공장을 내년 6월에 폐쇄할 것이라는 얘기가 들린다”며 “GM이 새로 임명한 한국GM 사장이나 부사장 등이 인도에서 기업 구조조정을 주도했던 인물들이라, 직원들 사이에서는 국내공장도 폐쇄하기 위한 인사라는 걱정이 점점 커지고 있다”이라고 말했다.

한국GM 추락은 GM의 이해할 수 없는 경영 행태가 가장 큰 원인이란 분석이 많다. 가장 많은 의문이 제기되는 부분은 비정상적으로 높은 한국GM의 매출원가 비율이다. 지난해 한국지엠의 매출원가 비율(93.8%)은 현대차(76.2%)와 기아차(79.3%) 르노삼성(79.8%) 쌍용차(85%) 등 국내 주요 경쟁사들보다 10%포인트 이상 높다. 이호근 대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GM 본사가 한국GM에서 기술료, 연구개발비 등의 명목으로 지나치게 많은 이익을 뺏어가고 있다는 의미”라며 “이런 구조에선 한국GM도 새로운 성장발판을 마련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한국GM이 이자 비용을 과도하게 지출하고 있다는 점도 지적된다. 한국GM은 지난해 본사로부터의 차입금이 2조원이 넘는다며, 그 이자비용으로 본사에 1,300억원을 지급했다. 문제는 GM이 한국GM에 돈을 빌려주면서 책정한 금리가 5.3%에 달한다는 점이다. 업계 관계자는 “계열사에 대한 차입금 금리는 통상 1% 수준이라는 점에서 GM이 한국GM을 상대로 ‘돈놀이’를 하고 있다는 의심을 지울 수가 없다”고 지적했다. 이 밖에도 한국GM은 GM으로부터 재무 및 자금, 회계, 세무, 내부감사 등의 업무지원을 받는다는 명목으로 2015년 690억원, 지난해엔 430억원을 지불하기도 했다.

군산공장 노조 내부에선 이참에 GM과 결별하고 아예 새 주인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최근 업계에선 GM이 군산공장을 중국 합작사인 상하이자동차에 매각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얘기가 흘러나온다. 중국과 가까운 군산공장은 주변에 부품공장들이 포진해 입지가 좋은 데다 한국 시장 공략을 위해 ‘메이드 인 차이나’ 대신 신뢰도가 높은 ‘메이드 인 코리아’로 제품을 포장하고 싶어하는 상하이자동차가 눈독을 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군산공장 노조 관계자는 “GM은 한국GM의 미래발전 방향을 제시하는 것은 고사하고 당장 공장을 정상적으로 운영하지도 못하고 있다”면서도 “자신들의 경영실패 책임을 무마하기 위해 ‘쌍용차 사태’를 일으킨 상하이자동차에 매각을 추진한다면 저지 투쟁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군산=글ㆍ사진 김현우기자 777hyunw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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