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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끝뉴스]가계부채 줄여 집집마다 웃음 주겠다면서요?

입력
2016.09.16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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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국의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
주요국의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

“가계부채 부담을 줄여 집집마다 행복의 웃음이 살아나도록 하겠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2012년 대선 후보 시절 공약집에 이같이 밝히며 다른 대선 후보와 달리 가계부채 대책을 공약 1순위로 내세웠습니다. 당시 TV 토론회에 참석한 박 대통령은 “1,000조원에 달하는 가계부채는 개인의 경제 문제일 뿐만 아니라 방치되면 국가 경제적으로도 큰 위협이 될 수 있다”고 발언하기도 했죠. 일찌감치 가계부채 문제의 심각성을 크게 인식하고 있었던 겁니다.

박 대통령이 내놓은 가계부채 대책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당시 박 대통령은 날로 심각해지는 가계부채의 불길을 잡고 저소득층의 가계빚 부담을 덜어준다는 취지에서 18조원 규모의 국민행복기금을 조성해 신용대출 연체자의 빚을 탕감해주는 대책을 내놓았는데요. 박 대통령이 보수 정당에 소속인 걸 감안하면 상당히 파격적인 발상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같은 대책은 저소득층의 채무 부담을 줄여주는데 어느 정도 역할을 하긴 했지만 정작 가계부채 문제를 해결하기엔 역부족이었습니다. 오히려 정부는 지난 2014년 7월 경기 부양 목적으로 이전까지 부동산 규제의 최후 보루로 여겨졌던 총부채상환비율(DTI)과 주택담보인정비율(LTV) 규제를 완화하면서 스스로 가계부채 급증세에 불을 붙이고 말았습니다. 그 여파로 최근 2년간 가계부채가 220조 이상 급증했기 때문인데요.

최근엔 새로운 기록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한 지난 2013년 2월 이후 올해 8월까지 3년 6개월 동안 늘어난 가계부채는 대략 308조5,000억원에 이릅니다. 이명박 정부 5년간 늘어난 가계부채가 298조3,000억원이었던 걸 고려하면 박근혜 정부는 이 기록을 지난 7월(299조8,000억원), 출범한 지 3년 5개월 만에 넘어선 것입니다. 가계부채 대책에 가장 공을 들이던 박근혜 정부에서 아이러니하게도 가계부채가 가장 많이, 그것도 가장 빠르게 늘어난 겁니다.

정부는 지난해 말 가계부채 증가세를 완화시키고 부채의 질을 높이겠다며 새로운 대책을 내놨는데요. 여신심사 가이드라인을 도입해 주택담보대출 구조를 기존 변동금리ㆍ일시상환 대출에서 고정금리ㆍ장기 분할상환 대출로 전환시켜 금리 인상기에 발생할 수 있는 리스크를 줄이겠다는 게 골자였습니다. 정부가 1년 간의 준비 끝에 이 대책을 내놓긴 했지만, 사실 지난 대선 때 공약으로 이 아이디어를 제시한 건 당시 문재인 후보였습니다. 정부가 당시 공약을 참고해 대책을 내놨는지는 알 수 없지만, 결과적으로 박 대통령이 내놓은 해법들이 가계부채 문제를 해결하는데 크게 통하지 않은 건 분명해 보입니다.

물론 가계부채가 늘어났다고 해서 무조건 안 좋다는 식으로 해석하긴 어렵습니다. 경제가 성장하면 그만큼 부채도 자연스럽게 늘어나기 때문입니다. 전문가들도 가파른 가계부채 증가속도에 대해 경고만할 뿐이지 가계부채가 얼마까지 도달해야 우리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지는 누구도 정확하게 얘기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럴 때일수록 정부가 예지력을 발휘해 가계부채 문제에 더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그 누구도 주택대출 부실이 2008년 미국의 금융위기로 이어질지 예측하지 못했던 것처럼 말이죠. 가계부채 폭탄이 정말로 터지면 우리 경제가 걷잡을 수 없는 패닉에 빠질 수 있는 만큼 정부가 이미 내놓은 대책만 믿고 안심해선 안 된다는 겁니다. 정부 대책이 잘 통한다면 좋겠지만, 사실 대책과 현실이 엇박자가 나는 경우도 적지 않았기 때문이죠. 실제 정부가 이번에 주택공급 물량을 줄이는 내용의 대책을 내놨지만, 오히려 일부 주택시장이 과열 양상을 빚으면서 8월 주택담보대출 증가액은 2008년 이후 최고를 기록했습니다.

지난해 가계부채 문제가 이슈로 떠올랐을 때 당시 주무부처인 금융위원회는 홈페이지에 ‘가계부채 문제는 점점 나아지는 중입니다’라는 내용의 카드뉴스를 게시했습니다. 지금은 이 카드뉴스를 찾아볼 수 없습니다. 정부는 그간 가계부채는 빠르게 늘었지만 부채의 질은 나쁘지 않기 때문에 당장 문제될 게 없다는 태도를 보였는데요. 1년이 지난 지금, 상황이 그때보다 나아졌을까요?

가계부채는 사상 최대로 늘었는데, 금리가 높은 2금융권 대출이 급증하면서 가계의 부채상환 위험성은 더 높아지고 있습니다. 급증하는 아파트 집단대출 역시 주택공급 과잉과 맞물려 우려를 키우고 있고요. 자꾸 문제를 작게만 보려는 정부가 불안한 건 괜한 노파심일까요. 아직은 괜찮다는 정부를 향해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고 나서는 한국은행이 오히려 더 책임감 있어 보이는 이유는 왜일까요.

김동욱 기자 kdw1280@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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