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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실어 나른 트럭... 보도연맹 학살 국가 폭력 꼬집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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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실어 나른 트럭... 보도연맹 학살 국가 폭력 꼬집어

입력
2017.06.01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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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깔 한 점 없이 간략한 먹선과 목탄만으로 표현된 그림은 보도연맹의 끔찍하고 어처구니없는 비극을 트럭 ‘제무시’의 관점에서 기술한다. 평화를 품은 책 제공
색깔 한 점 없이 간략한 먹선과 목탄만으로 표현된 그림은 보도연맹의 끔찍하고 어처구니없는 비극을 트럭 ‘제무시’의 관점에서 기술한다. 평화를 품은 책 제공

제무시

임경섭 글, 그림

평화를 품은 책 발행ㆍ44쪽ㆍ1만1,000원

‘제무시’는 미국 자동차회사인 지엠사의 로고 GMC를 일본식 영어발음으로 부르는 말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특히 해방 뒤 미군정 때부터 한국전쟁기까지 미군을 따라 들어온 군용트럭을 일컫는다. 전쟁 뒤에는 한국군이 쓰다가 민간에 불하하여 재건사업에 두루 쓰였고, 벌목한 나무를 실어 나르는 산판차로도 널리 이용됐다. 요약하면 한국전쟁 전후에 쓰인 미군트럭을 일본식으로 부르는 말이니, 굴곡진 우리 근현대사가 투영된, 착잡한 이름의 탈것이다.

그 제무시에게 이 그림책이 인격을 부여하고 이름 대신 번호를 붙여 주었다. 389, 436, 625. 제무시 3대가 적막한 시골의 읍사무소 창고에서 산속 숯골 사이를, 여러 날 동안 날마다 왕복한다. 사람들을 가득 싣고 갔다가 텅 빈 차로 돌아온다. 갔다가 돌아오는 그 사이에, 산속에선 총소리가 하늘을 찌르고 놀란 새들이 허공으로 날아오른다.

적막한 시골은 경남 김해의 어느 마을이요,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은 국민보도연맹원들. 1950년 7월 어느 날, 전쟁이 일어나고 전선이 남쪽으로 밀려 내려오던 무렵이었다. 총 쏜 자들은 남한의 군경이었으니, 전선에서 북쪽의 적군을 향해야 마땅했을 총구가 남쪽의 양민들을 겨누었던 것이다.

알려진 대로 국민보도연맹은 1949년, 이승만 정권이 일제 때의 친일전향 단체였던 대화숙을 본떠 ‘좌익에서 전향한 사람들을 계도해 대한민국 국민으로 받아들인다’는 명목으로 만들고, 좌익과는 상관없는 사람들까지 대거 가입시켜 감시, 관리한 사상통제용 관변단체였다. 그런데 전쟁이 일어나자 이들이 북에 동조할지 모른다는 이유로 무차별 학살했으니, 피살자의 수는 2009년에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가 확인한 것으로 4,934명, 비공식적으로는 수만에서 수십만명으로 추정된다.

그림책 ‘제무시’는 이 끔찍하고도 어처구니없는 비극을, 거기 동원된 제무시들의 관점에서 기술한다. 색깔 한 점 없이 간략한 먹선과 목탄만으로 표현된, 이성도 감정도 소거된 채 사건만이 진행되는 그 숨 막히는 공간에서 부당한 임무를 말없이 수행하던 제무시 625호는, 네 번째 학살의 날 돌아오는 길에 제 몸에 실려 갔던 사람들이 죽음을 예감하고 길바닥에 던져 놓은 고무신의 행렬을 본다. 그날 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고무신들이 산을 이루는 꿈을 꾼다. 그리고 해가 뜨지 않은 이튿날, 625호는 또 다시 사람들을 싣고 산을 오르다 중턱에서 꼼짝 않고 멈춰서 버린다. 화가 난 436호에게, 화가 난 389호가 말한다. “우리는 각자 맡은 일을 묵묵히 하면 돼.” 산속에선 다시 총소리가 울리고, 빈 몸으로 되돌아온 두 제무시가 625호를 향해 돌진한다. 피하려던 625호는 비탈길을 벗어나 산 아래로 곤두박질쳐 부서진 채 불타버린다. 불타면서 625호는 환영을 본다. 고무신들을 싣고 산속이 아닌 마을로 향하는 자신의 환영.

이 그림책은 반세기도 훨씬 전 부당한 국가폭력에 동원된 사람들의 양심과 저항, 침묵과 안일의 은유임이 분명한데, 그럼에도 요 몇 년 새 이 나라 정치권력의 핵심부에서 일어났던 여러 인격들의 행태에 고스란히 겹쳐진다. 친일과 독재, 권위주의와 특권, 종북좌빨이라는 이념몰이… 역사를 유린해 온 세력의 잔재와 쌓인 폐단이 청산되지 못한 채 되풀이되어 온 까닭이다.

지난 겨울, 더는 참을 수 없었던 시민들이 들고일어나 양심을 저버린 인격들에 이름 대신 번호를 붙여 주었다. 921, 4990, 519... 503! 그리고 기어코 붙여져야 할 또 다른 번호들. 이제라도 그들이 고개를 숙여 역사의 길목마다 널린 고무신들에 눈을 뜨기를, 아집과 미망의 행보를 멈추기를 바라는 것은 정녕 무리인 걸까?

김장성 그림책작가ㆍ출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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