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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美 좋으면 北도 품을 트럼프… 한국외교 전략실종 안타깝다

입력
2016.11.10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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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더스 돌풍 역시 세계화 반발

브렉시트는 영 민족주의 대변해

새로운 미국 방향 오히려 뚜렷

‘막가는’ 아닌 ‘명확한 자국 중심

창조적 외교에겐 기회인데…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시대가 열렸다. 주류 언론과 여론조사 기관의 예측을 보란 듯이 깨버리고 트럼프 후보가 거침없이 질주하였다. 차마 트럼프 후보를 지지한다고 표현하지 못했던 숨은 지지자들과 불만세력이 투표소에서 자신들의 의사를 표시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들이 차마 공개적으로 지지하지 못했다는 것은 그만큼 트럼프 후보가 이상적인 후보가 아니라는 것을 반증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돌적인 지도자를 통해서 지금의 답답한 세상을 “확” 바꾸고 싶다는 의지가 상당수의 미국인들 사이에서 팽배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제 지금의 상황을 만들고 유지해 온 “주류 정치인”은 그만이라는 메시지다. 경선과정에서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 후보에게 강력한 도전장을 던졌던 “사회민주주의적”인 버니 샌더스의 돌풍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할 수 있다. 지금의 상황에서 정말로 벗어나게 해 주는 지도자를 미국의 왼쪽이나 오른쪽이 다 원했던 것이다. 가장 현상 유지적이고 개혁에 대한 신뢰가 가지 않는 힐러리 클린턴 후보는 그래서 밀려났다.

그렇다면 바꾸고 싶은 현재는 무엇이고 그걸 깨고자 하는 트럼프 현상은 무엇인가? 미국 하버드 대학의 대니 로드릭 교수는 이를 너무 많이 나간 세계화와, 그에 대한 피해자들의 극단적 대응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도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세계화의 광풍이 불었다. 이 광풍은 극단적인 양극화와 비참한 노동자 생활을 가져와 대거 불만세력을 낳았는데, 이들을 등에 업고 등장한 극단적인 세력이 급진 민족주의 세력인 파시스트, 그리고 사회주의 세력이었다. 당시 급진 민족주의로 나아간 파시즘, 나치즘과 사회주의 혁명이 세계를 혁명과 전쟁의 소용돌이로 몰아넣었다. 대니 로드릭 교수는 “트럼프 현상”이나 “버니 샌더스 현상”이나 모두 20세기 말, 21세기 초에 다시 등장한 세계화에 대한 극단적인 대응으로 해석한다. 영국의 브렉시트(유럽연합 탈퇴)는 영국의 민족주의를 대변하면서 생겨난 같은 현상이다.

이런 큰 흐름 속에서 보면 트럼프의 미국이 국제정치적으로 어떠한 방향으로 갈 것인지가 상당히 뚜렷하게 보인다. 그리고 그 방향은 우리가 트럼프 대통령을 조롱하듯 떠들어 온 “막가는” 방향이 아니라 오히려 가고자 하는 고지가 명확히 보이는 길이다. 세계화를 통제하고 자국중심주의로 가는 길이 바로 그것이다. 물론 그 길로 가는 과정이 순탄치는 않을 것이고, 또 과연 그 고지에 도착할 수 있을지도 확실치 않지만 방향만큼은 뚜렷하다. 그럼 트럼프의 미국은 앞으로 어떤 국제정치를 만들어 나갈까?

첫째, 트럼프의 대외정책에 대한 발언을 잘 살펴보면 매우 일관되게 ‘현실주의’적인 국제정치 철학을 담고 있다. 선악의 구별과 국제적인 규범, 제도를 중요시하기 보다는 험악한 현실 속에서 자국의 안전과 번영을 최우선으로 내세우고 그를 위해 계산적으로 행동한다. 미국의 안전과 번영에 필요하다면 러시아와, 중국과 북한과도 대화하고 협상하고, 쓸데없이 동맹유지 비용이 비싸다고 생각하면 동맹국의 자주국방이나 동맹조정도 시도할 수 있다.

둘째, 미국 민주당 정부의 대외정책이 국제규범과 다자주의 제도를 중시하는 외교정책이었다면 트럼프 대통령의 외교정책은 자국의 이익을 최우선시하는 양자 협상을 더욱 강조하게 될 것이다. 이는 어쩌면 상당 수준의 외교적 조정을 의미하게 되는데, 우리는 이러한 양자협상에서 치열한 두뇌싸움을 해야 할 것이고 한미관계 조정에 따라오는 다른 국가들과의 관계 조정에도 외교력을 전략적으로 발휘해야 한다.

셋째, 역설적으로 이러한 미국의 현실주의적인 조정은 그 동안 꽉 막혀 있었던 우리의 외교문제의 해결에 돌파구를 줄 수 있다. 북한 핵 문제를 미국의 안전과 안전 유지 비용이라는 계산의 틀 속에서 새롭게 풀면서, 그 과정에서 도덕적이기 보다는 가장 현실적인 방안을 트럼프의 미국이 채택할 수 있다. 즉 북한과의 협상과 딜이 가능해 질 수 있고 미국과 북한이 계산이 맞으면 새로운 생각들을 할 수도 있다는 의미이다.

넷째, 중국에게는 오히려 기회의 창이 열린다. 미국이 고립주의적으로 후진한 곳에 중국이 들어가서 국제적 공공재를 제공하고 다자주의를 수호하고, 시장을 열어 놓는다면 중국은 미국을 대신하여 국제적인 지도력을 인정받을 수 있다. 중국이 그런 의지와 능력이 있는지 반문하는 독자들이 있겠지만 이미 중국은 우리가 상상하는 이상으로 다자주의적이고 시장주의적인 국가가 되어 있다. 트럼프의 미국 역시 중국과 경제적으로는 경쟁하겠지만 이런 비용을 지불하는 중국을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결국, 트럼프 시대의 새로운 조정은 새로운 ‘점들의 연결’과 같은 것이어서 창조적이고 전략적인 외교관들에게는 가슴 뛰게 하는 역사적 기회다. 지금 말도 안 되는 일로 국정이 공백 상태이고, 조정을 담당할 외교력과 전략이 존재하지 않는 우리가 너무나도 안타깝다.

이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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