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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박근혜 독트린'이 절실하다

입력
2015.04.19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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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남미를 순방중인 박근혜 대통령이 18일 오후(현지시간) 두번째 순방국인 페루 리마 호르헤차베스 국제공항에 도착, 영접나온 안나 마리아 산체스 외교부 장관(오른쪽) 등 페루 측 환영인사와 공항을 빠져 나가고 있다. 연합뉴스
중남미를 순방중인 박근혜 대통령이 18일 오후(현지시간) 두번째 순방국인 페루 리마 호르헤차베스 국제공항에 도착, 영접나온 안나 마리아 산체스 외교부 장관(오른쪽) 등 페루 측 환영인사와 공항을 빠져 나가고 있다. 연합뉴스

박근혜 대통령이 지금 중남미 4개국을 순방 중이다.

총리까지 연루된 성완종 스캔들에다 마침 출국일이 세월호 1주기 날이어서 “꼭 가야 하나”라는 반응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순방에 나서기로 한 것은 옳은 결정이라 평가한다. 우리나라는 지정학적으로나 경제체계 측면에서 전세계 어떤 나라보다 대외의존도가 높기 때문에 외교는 늘 최우선 의제가 될 수 밖에 없다. 게다가 정상들이 국내 문제에 마땅한 해결책을 찾지 못할 때 외교를 돌파구로 삼는 것은 우리나라에만 있는 일이 아니다.

하지만 기업인들을 거느리고 외국을 찾아 수출시장을 넓히려는 비즈니스 외교는 난이도가 낮은 외교다. 성대한 서명식과 화려한 만찬이 끝나면 각종 청구서가 뒤따르기 마련이지만 그 비용은 수년 뒤에나 실체가 드러난다.

박근혜 대통령이 몰두해야 할 시급한 외교적 숙제는 다른데 있다. 바로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 주변 강대국들이 수긍하는 외교 원칙을 제시하는 것이다. 분명한 외교원칙이 있다면,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ㆍ사드) 설치나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가입 같은 결정을 내릴 때마다 주변국 눈치를 보는 수모를 덜 수 있다.

이달 초 이란과 핵협상을 성사시킨 후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토마스 프리드먼을 백악관에 초청해 자기이름을 내건 외교 독트린 원칙을 설명하던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의 모습을 부럽게 지켜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실 7년 차가 된 오바마 대통령의 외교는 늘 낙제점이란 평가를 받아왔다. 게다가 스스로 ‘오바마 독트린’이라고 설명한 ‘적대국에 대해 힘의 우위를 유지하되 계속 관계를 유지한다(engage)’라는 원칙도 오바마가 만든 것이 아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외교가 처참한 실패라는 사실이 분명해지던 2006년 미국 외교전문가들이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에 모여 초당파적인 ‘스마트파워위원회’를 구성하고 새로운 외교원칙 수립에 나섰다. 이 위원회는 1년여의 토론 끝에 ‘무력보다는 미국의 소프트파워를 통해 적대국을 설득해야 한다’등의 새로운 외교원칙을 수립했다. 그리고 오바마 대통령은 이를 충실히 실천했다.

실천 과정은 실패의 연속이었다. 특히 이라크에서 군 철수가 이슬람 수니파 과격단체 이슬람국가(IS)의 발호로 이어졌을 때나,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유린하는 걸 지켜보기만 할 때, “군사를 파병해 강경 대응하라”는 주장이 빗발쳤다. 하지만 단독 파병은 곧 부시의 실패한 외교로 회귀하는 것임을 잘아는 오바마 대통령은 무시로 일관했다. 그러다 지난해 4월 아시아순방에 나서는 에어포스원 기내에서도 기자들의 비판이 이어지자 울컥해 “내 외교철학과 원칙은 ‘바보짓 하지 말자’(Don’t do stupid shit!)다”라고 상소리까지 섞어 분통을 터뜨리는 바람에 조롱을 당하기도 했다. 당시 “오바마 독트린은 이 말의 앞 글자를 딴 ‘DDSS 독트린’이며, 이는 향후 오바마 자서전 제목 중 가장 강력한 후보”라고 비꼰 사람이 바로 얼마 전 오바마 대통령이 백악관으로 초청한 토마스 프리드먼이다.

오바마 독트린이 중동문제 해결과 러시아의 침략성을 제어하는 데는 효과적이지 못했다. 하지만 오바마 대통령은 수십년간 풀지 못했던 쿠바와 관계정상화와 이란 핵협상을 타결한 대통령으로 역사에 남을 것이다. 역사는 대통령의 무수한 실패가 아니라, 그 실패에도 불구하고 성공한 한 두 가지 업적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지난달 말 사드와 AIIB 문제로 우리 외교가 우왕좌왕한다는 비판이 제기되자, 윤병세 외교부장관은 “미중 양측으로부터 러브콜을 받는 상황이 결코 골칫거리나 딜레마가 될 수 없다, 이것은 축복이 될 수 있다”라고 한 발언은 타당한 주장이다. 하지만 주변 강대국을 설복시킬 수 있는 원칙과 그를 실천하는 의지를 보여주어야만 그 축복이 현실화된다.

박근혜 대통령이 역사에 기록될만한 외교적 원칙을 실천해 ‘박근혜 독트린’으로 역사에 남기기에는 남은 임기가 너무 짧을지 모른다. 하지만 초당적 기구를 만들어 새로운 원칙을 만들어 차기 정부에 남기기에는 충분한 시간이다.

정영오 국제부장 young5@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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