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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새해의 복이 절실한 일

입력
2018.01.05 13:14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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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사는 데 온갖 것들이 있어야 하지만 그 중에서도 콕 집어 복이 필요하니 그것을 기원한다는 의미가 담긴 말일 것이다. 세상 일이 어디 전부 마음대로 되겠는가? 하는 데까지 최대한 해보고 나머지는 그때그때의 운과 하늘의 뜻에 맡기는 수밖에 없다. 사람이 노력한다는 전제 하에서, 사람이 어찌할 수 없는 부분에 대해서는 복이 듬뿍 주어진다면 좋겠다는 뜻으로 새해의 인사를 풀이해 본다.

인사의 핵심은 생략된 부분에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강조된 복 말고 말 안 한 사람의 영역 말이다. 복이 주어질 만한 어떤 일, 그것은 인간인 우리가 정하는 부분이다. 먹고 사는 것만으로도 벅차다, 제발 새해 인사마저 분석하려 들지 말고 그냥 좀 넘어가자고, 혹자는 말한다. 정말 그런가? 새로운 마음으로 모처럼 경건하게 맞이하는 새로운 이 시간의 시작을 그냥 넘어가기만 할 것인가? 설마, 우리가 그 정도의 패배주의에 빠져있는 건 아니지 않은가. 새해에 우리는 발전하고 싶다. 진정한 의미에서 말이다.

여기서 키워드는 우리이다. 각자의 삶도 중요하지만, 우리가 하나의 집합체로서 어떻게 나아져야 하는지는 더더욱 중요하다. 혼자서 어떻게 하든 사회가 안 받쳐주면 그 결과는 국소적 또는 파편적이고 그래서 미미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가 추구해야 할 진정한 발전의 방향은 대체 어느 쪽일까? 질문해본다. 더 잘 부유해지는 것? 아무리 문제가 많아도 세계 195개국 중 11위면 이미 국제적 상류층이다. 더 유명해지는 것? 한국은 방송콘텐츠 수출이 세계 3위, 역대 8번째로 동·하계 올림픽을 개최하는 나라이다. 더 안전해지는 것? 여기는 ‘술에 적신 밤도 안전한’ OECD 1위 치안 국가이다. 물론 북한은 또 다른 얘기이지만 등등등. 우리사회에 아무 문제도 없는 척하려는 게 아니다. 문제는 산적해 있지만 그래도 거시적 관점에서 이 나라는 이 세상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들을 추구하는 방향에 있고 제법 좋은 성적을 내는 궤도에 스스로를 올려놓고 있다는 얘기이다.

딱 한 가지만 빼고. 자연, 환경, 생명, 이런 것들만 제외하고 말이다. 못 믿겠다고? 예일 대학과 컬럼비아 대학이 공동 개발한 환경성과지수(Environmental Performance Index)에 따르면 한국은 80위에 당당히 올라있다. 보츠와나보다 한 단계 아래 순위이다. 이런 지표는 얼마든지 더 들 수 있다. 하지만 숫자로 증명하는 게 다는 아니다. 이곳에 살면서 매일 같이 보고, 느끼고, 접하는 것으로도 충분하다. 누구나 확인할 수 있는 간단한 예를 들어보자. 지금 거리에 나가보라. 롱패딩, 모피, 그리고 털 달린 모자의 광풍이 도시를 휩쓸고 있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누구나 동물의 털을 벗겨 만든 옷을 걸치고 있다. 허리까지 오던 점퍼는 모두 무릎까지 내려오는 길이가 되어 하나에 오리 또는 거위가 15~20마리 희생되는 지경이다. 이제는 겨울용 겉옷을 사려면 최소한 모자에 너구리 털이 안 달린 걸 보기가 힘들 정도. 방한과 직접적 관련도 없는 후드의 가장자리마다 너구리나 여우의 말 못할 고통이 스며있다. 일찍이 80년대에 시작된 모피 보이콧 움직임에 이어 현재 세계 패션계는 반모피 운동이 확산되고 있는데도 한국의 모피 소비는 고공행진이다. 한국관세무역개발원에 따르면 2000년대에 들어와서 모피 수입은 10년 동안 무려 2.5배나 성장했다. 산 채로 털을 벗기는 가장 잔인하기 이를 데 없는 동물 털 산업의 실태가 이미 만천하에 드러나 있는데도 거의 모든 국민이 이에 한 몫 하고 있는 현실. 이것이 우리사회의 ‘생명 성적표’의 단면이다.

새해에 기원하는 복은 나와 내 가족만이 아닌 생명 전체에 대한 사랑과 실천에 듬뿍 주어지길 기원해 본다.

김산하 생명다양성재단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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