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시법 위반' 정당인 카톡 계정서 수천명 정보·대화 들여다보고
경찰 "알릴 의무는 카톡 운영사에… 범죄 관련 몰라 다 가져간 것" 당당
경찰이 집회ㆍ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피의자의 카카오톡 계정을 압수수색하면서 3,000여명에 달하는 카카오톡 친구 개인정보와 대화내용을 무차별적으로 수집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최근 검찰이 인터넷 허위사실 유포 수사 방침을 밝힌 데 이어 이번 사건까지 불거짐에 따라 인터넷과 SNS 상에서 표현의 자유가 위축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천주교인권위원회 등 6개 시민단체는 1일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경찰이 집시법 위반 혐의로 정진우 노동당 부대표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정 부대표의 카카오톡을 압수수색해 약 3,000명의 개인정보와 내밀한 이야기를 사찰했다”고 주장했다. 정 부대표는 지난 6월 10일 세월호 사건 진상규명 및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만민공동회’를 열고 청와대로 가려다 경찰에 연행돼 구속기소됐으며 한 달여 만에 보석으로 석방됐다.
정 부대표가 지난달 16일 종로경찰서에서 받은 ‘송ㆍ수신이 완료된 전기통신에 대한 압수ㆍ수색ㆍ검증 집행사실 통지서’에 따르면 경찰은 5월 1일~6월 10일치 정 부대표의 카카오톡 메시지 내용, 대화 일시ㆍ상대방 아이디ㆍ전화번호, 수발신 내역, 그림 및 사진 파일 전체를 압수수색했다. 다만 대화 내용은 서버에 1주일치만 저장되기 때문에 6월 17일 압수수색 당시에는 6월 10일치만 남아 있었다.
이날 회견에서 정 부대표가 공개한 카톡 내용을 보면, ‘세월호 참사를 잊지 않는 시민방’에 658명, ‘세상이야기’에 450명 등 약 3,000명의 인원이 채팅방에 속해 있었다. 이 중에는 ‘6학년 4반’ ‘진북초 4인방’ 등 사적인 채팅방부터 ‘쌍용차 범대위’ ‘밀양희망버스’ 등 시민단체 관련 대화공간까지 있었다. 정 부대표는 “압수수색 내역에 정치적으로 민감한 정보와 사측에 알려지면 불리해질 수 있는 투쟁사업장의 대응방안이 포함돼 있다”며 “이를 들여다 본 것만으로도 국민의 정치적 견해 표현을 위축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들 단체는 ▦압수수색 영장 집행 시 미리 그 일시와 장소를 당사자에게 통지해야 한다는 형사소송법 제122조 ▦컴퓨터 하드디스크 압수수색 시 범죄 관련 내용만 가져가야 하고 선별이 불가능하면 분석 과정에서 피의자나 그 변호인을 입회시켜야 한다는 2012년 대법원 판례 등을 들어 경찰의 위법성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이에 대해 경찰은 정 부대표에게 사전 통보하지 않은 것은 압수수색 대상을 통신사인 카카오 회사로 봤기 때문이며 압수수색 사실을 알려줄 의무는 회사에 있다고 반박했다. 또 어떤 정보가 범죄 관련 내용인지 사전에 알 수 없어 통째로 가져간 것이고, 카카오톡 압수수색은 컴퓨터 하드디스크와 달리 범위가 정해져 있는 출력물 형태로 받았으므로 당사자 입회의 의무가 없다고 밝혔다. 경찰 관계자는 “정 대표가 진술을 거부하는 상황에서 불법 시위 모의와 지시 내용들을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카카오톡 압수수색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경찰이 카카오톡을 압수수색해 개인의 사적 대화내용은 물론 채팅방에 연결돼 있던 타인의 개인정보까지 대량으로 입수한 것이 적절한 것인지는 여전히 논란이다. 한상희 건국대 로스쿨 교수는 “경찰이 수사 편의를 위해 카카오톡 압수수색 영장을 신청하고 법원이 면밀한 검토 없이 영장을 발부한 것은 문제”라며 “법리 해석은 제쳐두고 이는 개인 사생활 침해와 표현의 자유 침해와 직결되는 문제로 논란의 여지가 크다”고 말했다. 물론 지금도 이메일이나 컴퓨터 하드디스크 등이 수사상 필요시 압수수색되지만 SNS의 경우 타인의 정보까지 대량으로 노출될 수 있고, 본인 입회 등 압수수색 절차에 대한 판례도 아직 없어 논란의 여지가 있다.
한편 이날 참여연대 공익법센터는 9월 18일 검찰이 밝힌 사이버 명예훼손 수사 강화 방침에 반대한다면서 김진태 검찰총장에게 인터넷 검열 중단을 요구하는 서한을 전달했다. 박경신 공익법센터 소장(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은 “검찰의 방침은 인터넷 공간에서 국민을 감시하고 검열하겠다는 노골적인 선언”이라며 “결국 국민의 명예가 아닌 대통령과 정부의 입장만 보호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형직기자 hj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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