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태석 기자

등록 : 2017.06.19 04:40
수정 : 2017.06.19 04:40

‘비극적 죽음’으로 메시지 남긴 전북 스카우터

조문도 못한 최강희, 유서 존재도 관심...점점 커지는 의문점

등록 : 2017.06.19 04:40
수정 : 2017.06.19 04:40

작년 5월 심판 매수 사건이 발생한 뒤 전주월드컵경기장에 걸린 걸개들. 프로축구연맹 제공

심판 매수에 연루된 프로축구단 전직 스카우터가 자신이 일하던 경기장에서 목숨을 끊어 여러 의문점이 증폭되고 있다.

K리그 클래식(1부) 전북 현대 전 스카우터 A씨가 지난 16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목을 매 숨져 있는 걸 구단 다른 관계자가 보고 경찰에 신고했다. A씨는 2013년 다섯 차례에 걸쳐 두 명의 심판에게 총 500만을 준 혐의로 지난 해 9월 28일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받았다.

A씨는 법정에서 “용돈(떡값)조였고 부정 청탁은 없었다”고 줄곧 주장했다. 하지만 판결문을 보면 A씨는 2013년 4월과 9월, 10월에 경기 전날 심판 숙소 근처에서 B심판을 불러 100만원씩 세 번 돈을 건넸다. 같은 해 1월과 8월, 경남 합천과 거창으로 C심판을 찾아가 100만원씩 두 번 줬다. C심판이 전화를 안 받자 A씨는 2014년 7월 경기 전날, 다른 사람의 휴대폰으로 전화를 해 “잘 좀 봐 달라”고도 했다. 2005년 여름부터 줄곧 전북을 이끌고 있는 최강희(58) 감독은 2011년 말부터 2013년 6월까지 국가대표 지휘봉을 잡느라 잠시 구단을 비웠다. A씨가 심판에게 청탁한 시점 중 일부는 최 감독이 전북 사령탑을 맡고 있을 때와 겹친다. 유죄 판결 직후 A씨는 구단으로부터 계약해지를 당했고 8개월 여 만에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했다.

전북 현대 축구단 전직 스카우터의 비극적 죽음에 많은 축구인들이 애도를 표했다. 최강희 전북 감독은 조화는 보냈지만 조문은 못 한 것으로 확인됐다. 전주=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전주덕진경찰서 강력3팀 관계자에 따르면 A씨는 죽기 사흘 전인 13일 최강희 감독을, 다음 날인 14일 김이주 전 전북 코치를 만났다. 김 코치는 본보 통화에서 “A씨가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고 했다. 최 감독은 A씨를 만난 일로 16일 구단 사무실에서 경찰 조사를 받았는데 이 자리에서 “A씨가 나를 만나 생활고를 호소했다”며 “13일 말고 약 한 달 전에도 A씨를 만났다. 우리는 안 좋은 일이 생겼다고 만나지 못할 사이는 아니다”고 밝혔다. 전북 구단 관계자는 “사건 발생 후 알아보니 실제 A씨가 2013년경 무리한 대출을 받아 집을 사고 보증을 잘못 서 압류가 들어와 매우 힘들었다”고 전했다.

하지만 사건 발생 초기로 거슬러 올라가보면 앞뒤가 맞지 않는다.

심판 매수가 검찰 수사로 처음 드러난 지난 해 5월 전북은 “A씨의 개인 일탈이다. 구단에 보고 없이 개인적으로 진행했다”는 보도자료를 냈다. 스카우터가 왜 개인 돈까지 털어 심판을 매수하겠느냐며 ‘꼬리자르기’라는 거센 비판이 나오자 구단 관계자 입에서 “A씨 연봉이 1억 원이 넘는다”는 해명이 나오기도 했다. 개인 돈으로 매수할 여력이 충분하다는 말이다. 하지만 당시 A씨는 거액의 이자와 빚에 허덕이고 있는 상황이었다.

또한 최 감독은 사건 발생 후에도 A씨와 예전처럼 친분 관계를 유지했다고 말했지만 A씨 상가에 조화만 보냈을 뿐 정작 조문은 못한 것으로 확인됐다. A씨 측근은 “원래 17일 광양에서 열린 전북과 전남의 K리그 경기 후 밤늦게 최 감독이 상가를 방문하려 했다. 그러나 유족 측에서 ‘오기만 하라’며 강하게 반발했고 상황이 험악해져 결국 못 갔다”고 전했다. A씨 주변 증언을 들어보면 그는 최근 지인들에게 자주 억울함을 호소했다. 한 관계자는 “혼자만 죄를 뒤집어썼다고 느낀 A씨가 법적으로 되돌릴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 노력했다”고 말했다. 구체적으로 뭐가 억울했는지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최 감독에 대한 유족의 반감이 상당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번 일이 A씨의 개인 일탈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는 걸 뒷받침하는 유력한 정황들이다. 사실 심판 매수 사태가 처음 불거졌을 때부터 이 같은 의혹은 꾸준히 제기돼 왔다.

A씨가 마지막으로 택한 장소는 관중석에서 구단 사무실로 직접 연결되는 통로다. 2002년부터 구단 스카우터로 일하며 수 백 번은 드나든 곳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한 그는 뭘 말하고 싶었던 걸까.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자살을 할 때는 실패 가능성이 적은, 익숙한 장소를 고른다. (사무실을 택한 게) 이례적인 건 아니다”면서도 “이 경우 평소 고인이 공공연하게 억울함을 털어놨다면 마지막으로 자신의 호소를 효과적으로 알릴 수 있는 장소를 택했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유서의 존재도 관심사다. 경찰은 “유서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는 입장이지만 고인의 아들에게 유서가 있고 기자회견까지 준비 중이라는 말이 나온다. 사실일 경우 이번 사건의 여러 의혹을 풀 결정적인 단서가 될 수 있다. 유족 중 한 명은 “(유서의 존재 여부는) 노 코멘트하겠다”면서도 “억울한 부분이 있으면 진실은 드러나지 않겠느냐”고 했다.

전주=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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