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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성 칼럼] 휴가 중 부디 다시 생각해 보시라

입력
2016.07.25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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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드 배치 외 다른 선택 없다지만

북핵 군사 대응만으로는 미래 없어

고정관념 벗어나 원점서 재검토해야

박근혜 대통령이 21일 북한 미사일 위협 등 안보상황 점검을 위해 국가안전보장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21일 북한 미사일 위협 등 안보상황 점검을 위해 국가안전보장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연일 폭염으로 숨이 턱턱 막히는데 박근혜 대통령의 한마디 한마디가 더 숨 막히게 한다. 박 대통령은 지난주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주재하면서 “사드 배치 외에 북한의 미사일 공격으로부터 우리 국민을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부디 제시해 달라”고 말했다. 특히 ‘부디’라는 대목에서 가슴이 턱 막힌다. 사드 배치에 대한 수많은 반대를 “정쟁”으로 쉽게 단정하는 독선과 단선적 사고가 이 강조 부사에 응축돼 있다.

물론 지금 박 대통령 인식체계 안에서야 사드가 불가피하고 유일한 선택일 테다. 스스로 사드 외에 대안이 없는 상황을 만들어 온 결과다. 북핵과 장거리미사일을 남북관계의 맨 앞에 놓은 것부터가 잘못이다. 두 사안이 우리 안보에 중대한 위협인 것은 사실이지만 여기에는 남북관계를 넘어 미국, 일본 나아가 중국 러시아까지 겨냥하는 국제정치적 맥락이 있다. 이를 못보고 4차 핵실험과 뒤이은 장거리 로켓 발사에 최고 수위로 대응함으로써 운신 폭을 좁히고, 미국이 강하게 요구해 온 한반도 사드 배치를 오히려 감사하게 받아들이는 상황을 자초했다.

북한의 군사적 위협에 군사적으로 대응하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있나. 박 대통령의 안보사고체계는 이 수준에 머물러 있다. 김관진 청와대 안보실장과 한민구 국방부 장관을 비롯한 군 출신 안보라인이 이 틀을 못 벗어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종합적인 국가 안보는 군사적 대응만으로 확보되지 않는다. 국제정치 맥락을 읽어 내고 대응하는 고도의 전략적 사고가 함께 이뤄져야 한다. 박 대통령 주변에는 이런 전략적 사고를 조언할 참모가 보이지 않는다. 설령 그런 참모가 있다 해도 싸늘한 레이저 시선 하에선 무용지물일 테지만.

군사적 위협에 대한 군사적 대응은 헤어나기 어려운 안보 딜레마로 속절없이 이끌려 간다. 안보보다 중한 게 뭐냐는 단순 논리 앞에 모든 자원과 관심을 군사 대응에 쏟아 붓지만 안보 불안은 더욱 커지는 딜레마다. 우리가 아무리 튼튼한 방패를 만들어도 북한은 이를 뚫을 더 날카로운 창을 벼릴 것이다. 사상 최상의 관계를 성취했다는 한중 외교장관이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무대에서 얼굴을 붉히는 동안 북중 외교장관은 사상 최강의 대북제재 국면 속에 은근한 미소를 주고받았다. 북핵 국제공조 체제의 균열은 북핵 문제 해결을 한층 요원하게 만든다. 의도와는 달리 사드가 북핵을 굳혀주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는 것이다.

한미 양국 정부는 성주에 배치될 사드가 미국의 동북아 미사일 방어(MD)체제에 통합되지 않을 것이라고 누누이 강조한다. 하지만 눈 가리고 아옹이다. 미국 내에서도 한반도에 배치된 사드가 MD체에 편입되는 것은 시간 문제라는 견해가 나오고 있다. 미국이 그토록 집요하게 한반도 사드 배치를 요구해 온 이유를 생각해 보면 자명하다. 중국과 러시아를 겨냥한 완벽한 방패로 MD체제를 구축하려는 것은 미국의 오래된 열망이기도 하다.

김정은 체제의 과대망상이 그 열망 실현에 최고 도우미가 됐지만 그 어리석은 게임에 속절없이 빨려 들어가서는 우리의 미래가 없다. 한미일 대 북중러의 신냉전 구도 최전선에 남북이 위치하면 우리의 운신 폭은 매우 좁다. 북방 삼각과 남방 삼각의 거대한 두 세력이 직접 부딪치는 곳이 바로 한반도다. 긴장이 고조되면 언제 천둥번개와 함께 폭우가 쏟아질지 모른다. 한민족의 파멸을 부를 전면 전쟁이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 해도 남북 교류협력, 나아가 북한을 발판으로 한 북방 진출 등은 완전히 물 건너가버리고 만다.

그래서 박 대통령에게 원점에서 다시 검토할 것을 주문한다. 2002년 평양으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러 갔을 때의 기억도 되살려 보았으면 한다. 북한 핵 보유가 현실화한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고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군사적 대응으로는 미래가 없다는 게 명백한데, 가지 않은 다른 길을 생각해 볼 수밖에 없다. 어제부터 시작된 올 여름 휴가 중 ‘부디’지금까지 머리를 꽉 채운 고정관념을 싹 비우고 전혀 새로운 사고를 해 보시길.

/이계성 논설실장 wk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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