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소형 기자

등록 : 2017.04.16 16:01
수정 : 2017.04.16 16:01

[강소기업이 미래다] 유엔이 주목한 우리 기업, 부강테크

“하수처리로 모두가 돈 버는 미래 꿈꾼다”

등록 : 2017.04.16 16:01
수정 : 2017.04.16 16:01

영국의 저명한 국제학술지 ‘브리티시 메디컬 저널’은 지난 160여년 간 인류의 수명 연장에 가장 크게 기여한 기술로 백신이나 항생제가 아닌 하수처리를 꼽았다.

하지만 세계 인구의 상당수는 여전히 제대로 된 하수처리 기술의 혜택을 못 받고 있다. 유엔은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한국 중소기업 부강테크의 기술을 주목했다.

부강테크는 축산농장이나 화학공장, 식품회사 등에서 나오는 하ㆍ폐수를 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독자 기술을 보유했다. 특히 가축분뇨 폐수처리 분야에선 10여 년 전만 해도 국내 시장을 독차지하고 있던 미국과 프랑스 업체들을 밀어내고 당당히 시장 점유율 1위 자리를 꿰찼다. 미국과 유럽, 중국, 베트남 등 세계 각국에 부강테크 기술이 적용된 하수처리장이 100곳을 넘었다.

21년 전 10명도 채 안 되는 엔지니어들이 모여 첫 발을 뗀 부강테크는 ‘대기만성(大器晩成)형’ 기업이다. 매출 100억원을 넘기는데 꼬박 10년이 걸렸고, 지난해 매출은 250억원 정도에 머문다. 박기택(49) 부강테크 분리막사업부문 대표는 “기술회사다 보니 제품에 대한 시장의 반응이 정말 더뎠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달리 보면 이런 보수적인 측면이 오히려 하수처리 시장의 장점이기도 하다. 일단 시장에서 인정받은 제품은 그만큼 오래 가기 때문이다.

최근 서울 중구 세종대로 한국일보 사옥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박기택 부강테크 대표가 직접 개발한 분리막 기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서재훈 기자 spring@hankookilbo.com

울산 삼성정밀화학 공장에 설치돼 있는 부강테크의 설비. 제품을 만든 뒤 버리는 폐수에서 유효 성분을 추출해내는데 쓰인다. 부강테크 제공

하ㆍ폐수처리 설비의 핵심 중 하나는 분리막이다. 고농도 화학폐수나 가축분뇨를 처리하려면 분리막으로 오염물질을 걸러내야 한다. 맨눈으론 깨끗해 보이는 수돗물이 들어가는 정수기의 필터도 몇 개월마다 교체해야 하는데, 하물며 흙탕물 수준의 폐수가 들어오는 하수처리 설비에선 분리막이 전체 설비의 성능을 좌우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부강테크는 초기엔 미국 기업 엔엘알(NLR)에서 분리막 기술을 100만달러에 도입했다. 그러나 NLR은 우월한 지위를 남용하며 사후관리에 소홀했다. 고객들의 불만은 고스란히 부강테크의 몫이었다.

박 대표는 “사업을 접어야 하나 고민하다 직접 개발해보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성능이 비슷하기만 해도 국내에서 팔 수 있겠다 싶어 미국 장비를 샅샅이 조사해 복제품을 만들어봤다. “아침에 눈을 뜨면 온통 분리막 생각밖에 안 났다”는 박 대표는 기어이 복제품을 뛰어넘어 보기로 했다. 고농도 폐수를 걸러낼 땐 분리막 표면이 오염물질로 금방 막혀버린다. 이를 해결하는 게 최대 난제였다. 당초 5억원으로 예상했던 연구개발비는 어느새 40억원으로 뛰었다.

아이디어는 의외로 단순한 데서 나왔다. 분리막 표면에 소용돌이를 만들어준 것이다. 폐수가 분리막을 통과하기 직전 소용돌이를 만들어 저어주면 그대로 흘려 보낼 때보다 막 표면에 오염물질이 덜 달라붙었다. 그만큼 분리막의 성능과 수명이 향상됐다. 언뜻 생각하면 당연한 원리지만, 분리막 시장에선 획기적인 시도였다. “소용돌이는 원하는 대로 제어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없애려고만 했지 적극적으로 활용할 생각은 아무도 못했다”고 박 대표는 설명했다. 부강테크는 발상의 전환으로 슈퍼컴퓨터까지 동원해 소용돌이의 움직임을 상세히 분석했고, 결국 제어하는데 성공했다. 박 대표는 “전체 하수처리 시장의 5%가량을 차지하는 고농도 시장에서 우리가 차별화하며 강점을 보일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소용돌이 기술 덕분”이라고 말했다.

제너럴일렉트릭(GE)나 지멘스 같은 글로벌 기업들도 보유하지 못한 소용돌이 제어 기술을 확보한 부강테크는 가축분뇨와 화학폐수뿐 아니라 식품공장이나 의약품 원료공장 폐수 처리 분야로 보폭을 넓혔다. 삼성정밀화학 울산공장을 시작으로 외산 장비들이 선점했던 국내 하수처리 시장을 차례차례 자사 설비로 바꿔나갔다. 의약품 원료를 생산하는 S사는 부강테크 설비 덕분에 생산원가를 90% 절감했고, 식품기업 C사는 생산성 증가로 설비 투자비를 4개월 만에 회수했다. 기존 타사 설비에선 6개월이던 분리막 교체 주기가 최대 4년으로 길어진 데다 정교하게 분리된 일부 성분을 수익 창출에도 활용할 수 있게 된 덕분이다.

지난 2010년 미국에서 열린 ‘수질환경기술전시회(WEFTEC)’에 설치된 부강테크(현지명 BKT)의 부스를 관람객들이 둘러보고 있다. 부강테크 제공

2년 전 파라과이 이파카라이 호수에 설치된 부강테크(현지명 BKT)의 깃발. 호수 정화 사업에 대한 감사의 뜻으로 현지 주정부가 설치했다. 부강테크 제공

최근 서울 중구 세종대로 한국일보 사옥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박기택 부강테크 대표가 직접 개발한 분리막 기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서재훈 기자 spring@hankookilbo.com

부강테크는 과감하게 ‘기술 원조국’인 미국에도 도전장을 냈다. 2008년 캘리포니아주에 현지 법인을 설립하고 관련 전시회와 개발자들을 찾아 다니며 ‘맨땅에 헤딩’했다. 드디어 캘리포니아 바스토우시 지하수 정화사업을 수주한 뒤 부강테크는 “캘리포니아주 인근 업계에선 알아주는 한국 기업”이 됐다. 2014년엔 베트남에도 진출해 현지 법인을 설립하며 낙후된 상하수도 시설을 개선했고, 파라과이에선 오염된 호수를 수영이 가능한 휴양지로 되돌려 놓았다.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부강테크는 ‘투마로우 워터(Tomorrow water)’라는 이름의 새로운 비전을 세계 시장에 제시했다. 버려지는 물을 정화해 수익을 창출하는 미래형 하수처리장을 만드는 개념이다. 이는 지난해 7월 열린 유엔 경제사회이사회에서 글로벌 지속가능개발 목표에 부합하는 사업 모델로 공식 채택됐다. 마침내 실증을 거쳐 기술이 개발도상국에 널리 보급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이다. 박 대표는 “꼴찌였을 땐 1등만 보고 쫓아가면 됐는데, 이젠 우리가 방향을 잡고 가야 한다”며 “미래형 하수처리장으로 환경 기술의 가치를 높이는데 기여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임소형 기자 precar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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