쾌청한 날씨에 '열병식 블루' 안도
인민복 차림 시진핑, 정상들 맞아
13억 중국인들 TV앞서 못 뜨고
인터넷선 중화부흥 글·그림 도배
3일 새벽1시 중국 베이징(北京)시 톈안먼(天安門)에서 북동쪽으로 3㎞ 가량 떨어진 진바오제(金寶街) 거리. 전날부터 시작된 차량 통제로 차도는 텅 비어 있었지만 인도엔 사람들이 벌써부터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이날 오전10시 시작되는 ‘중국 인민 항일 및 세계 반(反)파시스트 전쟁 승리 70주년 기념대회’를 준비하는 인원들과 자원봉사자들이었다. 이들은 원활한 행사 진행과 만약의 사태에 대비, 전날부터 밤을 새고 있는 것이다.
이날 톈안먼 성루 앞에 마련된 열병식 관람대엔 사전에 초청된 인사들만 들어갈 수 있었다. 이들은 오전 6시까지 지정석에 앉아 대기해야 했다. 따라서 거의 잠도 자지 못한 채 새벽 3,4시부터 준비를 했다. 톈안먼을 중심으로 반경 4㎞ 이내의 도로는 모든 차량의 출입이 통제된 터여서 이들은 일단 통제 구역 근처까지 지하철과 전세 버스 등을 타고 간 뒤 나머지 거리는 걸어서 행사장에 도착해야 했다. 후퉁(胡同)이라 불리는 베이징의 작은 골목에는 집집마다 중국의 국기인 오성홍기가 내 걸려 있었다.
여명이 밝아오며 베이징 하늘도 점점 파란 색으로 열리기 시작했다. ‘열병식 블루’는 대성공이었다. 흰 구름이 다소 끼기는 했지만 날씨는 쾌청했다. 그 동안 차량 홀짝제 운행을 강제 시행하고 베이징은 물론 톈진(天津)시, 심지어 1,000㎞ 가까이 떨어진 허난(河南)성까지 공장 1만2,255곳의 문을 닫고 건설 현장 9,000여곳의 공사도 중단시킨 결과였다.
행사장을 찾지 못한 13억여명의 중국인도 오전7시부터 시작된 중국 관영 CCTV의 생방송을 보느라 TV 앞을 뜨지 못했다. 오전 9시부터는 시진핑(習近平) 주석과 부인 펑리위안(彭麗媛) 여사가 명ㆍ청 시대 황궁인 구궁(故宮ㆍ자금성) 앞 돤먼(端門)에서 각국 정상들을 맞는 장면이 생중계됐다. 교통이 통제된 톈안먼과 자금성 사이에 자리하고 있어 각국 정상들은 돤먼 북쪽 광장에 도착, 차에서 내린 뒤 문을 통과해 남쪽 광장에서 기다리고 있는 시 주석 부부에게 걸어가야 했다. 빨간 카페트가 깔리긴 했지만 50여명의 외국 정상급 귀빈은 순서를 기다려야 했다.
시 주석은 회색 중산복(인민복), 펑 여사는 빨간 드레스에 분홍 손지갑을 했다. 황금색 상의의 박근혜 대통령은 9시 돤먼 북쪽에 도착, 20분 뒤 시 주석 부부와 악수를 나눴다. 시 주석 부부가 마지막으로 영접한 정상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었다. 이후 시 주석 부부와 각국 정상들은 돤먼을 배경으로 기념 촬영을 했다. 박 대통령은 펑 여사의 왼쪽에 섰다. 이후 박 대통령은 시 주석, 푸틴 대통령과 맨 앞에 서 나란히 톈안먼 성루에 올랐다. 성루에선 시 주석 오른쪽에 푸틴 대통령, 그 오른쪽에 박 대통령이 섰다.
행사는 리커창(李克强) 총리의 사회로 진행됐다. 개회 선언과 동시에 56문의 예포가 70발의 축포를 쐈다. 56개 민족으로 구성된 중국이 항전 승리 70주년을 기념한다는 뜻이 담겼다. 예포가 울리는 가운데 인민영웅기념탑 앞에 대기하던 국기호위대가 광장 북쪽 편에 있는 국기게양대를 향해 ‘121보’를 걸어 오성홍기를 게양했다. 121보는 1894년 갑오전쟁(청일전쟁)부터 올해까지 121년을 의미하는 것인데, 2009년 건국 60주년 기념일 열병식 때는 호위부대가 아편전쟁이 일어난 1840년부터 2009년까지 햇수인 169걸음을 걸었던 것과 대비된다. 아편전쟁을 기점으로 삼는다는 것은 서구제국에 패한 아픈 역사를 기억하겠다는 의지인 반면 이번 열병식에서 청일전쟁으로 기점을 변경한 것은 청일전쟁으로 일본에 넘겨줬던 동아시아의 주도권을 되찾았다는 자신감을 과시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시 주석의 연설에 이어 열병식이 이어졌고 전투기 편대가 상공에 ‘70’자를 그리며 분열식이 시작됐다. 지상 퍼레이드에 이어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한 공중쇼도 펼쳐졌다. 행사는 평화를 상징하는 비둘기가 방생되고 오색 풍선들이 하늘로 날아 오르며 막을 내렸다.
인터넷은 애국심과 중화민족주의 등을 강조하는 글과 오성홍기 그림으로 도배됐다. 웨이보(微博ㆍ중국판 트위터)엔 ‘조국 만세, ‘중국은 일어섰다’, ‘역사를 잊지 말자’ 등의 내용이 많았고, ‘홀짝제 운행이 끝나 다행’이란 냉소적 댓글도 보였다. ‘열병식이 끝나면 스모그가 다시 시작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었다.
베이징=박일근특파원 ik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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