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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살며] 추석 선물

입력
2015.09.25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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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한국에 처음 온 날은 추석이었다. 공항에 내려서 입국수속을 마치고 건물을 나서 택시 타기 전에 제일 먼저 본 것은 색동저고리 한복을 입은 아이와 그 아이의 가족들 모습이었다. 아이는 파마머리를 하고 아빠와 손을 잡고 이야기하면서 다니고 엄마도 고운 한복을 입었었다. 엄마 손에 있는 핑크색 천으로 쌓인 보따리가 유난히 눈에 띄었다.

한국에 온 첫 날이 추석이었지만 그 해에는 아무 것도 모르고 지나갔다. 추석이 가을의 한 가운데라는 의미를 가진 음력 8월의 보름날에, 가을에 수확한 싱싱한 곡식, 과일로 그 기쁨을 다 함께 나누고 조상님께 감사를 전하는 날이라는 것을 한국에서 몇 해 살고 나서야 알았다. 이날은 가족 모두가 보여 송편을 만들어 먹고, 가까운 친척이나 지인들에게 인사를 하러 가면서 선물을 드리고 덕담을 나누는 민족 대명절이라는 것도 알게 됐다. 그때 봤던 핑크색 보따리가 추석의 기쁨을 누군가에게 전달하는 선물이었던 것도 말이다.

한국에 정착한 이듬 해에는 추석을 앞두고 시장에 가서 몽골서는 보기 힘든 여러 모습에 내심 감격했다. 시장에는 그 해 농사로 수확한 모든 곡식과 과일이 다 진열되어 있었다. 보름달처럼 동그랗고 먹음직스러운 배와 사과는 반짝반짝거리며 시장 안을 그 내음으로 가득 채웠다. 사람들은 싱글벙글 웃으며 음식을 장만해 가족들이 모이면 함께 먹을 생각에 가슴 설레는 듯했다.

농사를 짓지 않고 가축을 키우며 사는 유목민족의 나라 몽골에서 온 나에게는 낯설면서도 기분 묘하게 만든 풍경과 풍습이었다. 몽골에는 추석이 없지만 음력 8월 15일을 좋은 날로 여기는 것은 다르지 않다. 시골에서는 새로 태어난 가축의 귀나 몸에 도장을 찍거나, 결혼식 등 집안의 많은 행사를 이날에 몰아서 치르려고 한다.

몽골서는 해본 적이 없지만 그 동안 한국에 살면서 명절에 많은 선물을 받기도 하고 보내기도 했다. 그런데 선물을 주고 받거나 명절 인사하는 방식도 시간이 지나면서 바뀌는 것 같다. 명절에 맞춰 전하는 안부 인사를 이제는 스마트폰 영상통화로 손쉽게 해결하기도 하고, 선물 역시 직접 보고 구입해 전달하지 않고 아예 업체에 맡겨 택배 기사가 전하는 시대가 되었다. 추석 선물은 갈수록 다양해지고 박스와 포장지가 화려해진다.

처음 이런 선물을 받을 때는 포장을 뜯기 전에 사진 찍어 어디에라도 올려 자랑하고 싶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선물 받아 정리를 하고, 보낸 분께 감사전화를 드리고, 우리도 선물 보냈는지 체크하는 것이 고맙다기보다 약간 번거롭게 느껴지기도 한다. 과도하다 싶은 포장지와 그 속의 내용물을 종이, 천, 플라스틱 박스 등으로 나눠 버려야 하고, 버리는 날짜를 기다리느라 쌓아 놓았다가 냄새 나고 날파리 꼬이는 불편도 적지 않다.

반대로 우리가 보낸 선물이 다른 사람에게도 이런 번거로움을 주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처음에 사람들은 추석에 풍성한 수확을 하면 기뻐서 그것을 주변 사람들과 나누어야겠다는 생각에 서로에게 선물을 했을 것이다. 그 시기에는 진짜 마음 담긴 소박한 보따리가 오가고 서로를 생각하는 정을 나누었을 것이다. 그래서 지금 주고 받는 명절 선물은 이런 고마운 마음보다 화려한 포장지와 브랜드 이미지가 더 눈에 띄어서 받는 사람을 미안하게 하거나 보낸 사람을 허술하게 만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우리 마음도 과도한 선물 포장지처럼 겉은 화려하고 속은 그저 그런 것은 아닌지 하는 걱정도 된다.

아무리 시대가 변했다 하더라도 평소 고맙게 생각하던 분에게는 포장지로 겉만 화려하게 꾸민 것이 아니라 진실을 담은 인사와 선물을 전해야 하는 게 아닐까. 바쁜데 그게 어디 쉬운 일이냐고 할지 모르겠으나, 아무래도 화려한 포장보다는 정다운 인사와 정겨운 성의 표시가 서로의 마음을 보름달처럼 풍성하고 밝게 만들 것 같다.

막사르자의 온드라흐 서울시 외국인부시장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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