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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를] 히말라야 트레킹, 아들과 국토종주… 버킷리스트 채워요

입력
2018.07.18 04:00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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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 연차 쏟아부어 25박 26일 

 오지 중의 오지 칸첸중가 등정 

 “조난 위기 넘으며 나를 찾았죠” 

 

 2주 쉬는 ‘웰프로 휴가제’ 이용 

 아들 또는 딸과 단둘이서 여행 

 “일만큼 소중한 자식과의 추억”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4.3일. 평생교육 기업 휴넷이 조사한 올해 직장인들의 여름휴가 기간이다. 일주일이 채 안 되는 시간 동안 직장인들은 분주하게 휴가 계획을 짜고 가족들과 또는 혼자서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이 직장 생활의 화두가 되면서 휴가 기간도 자연히 늘어나고 있다. 정부는 올해부터 공공기관을 중심으로 2주 여름휴가 제도를 장려하고 있고, 금융권이나 제조업 일부 기업들은 이미 수 년 전부터 2주 휴가를 도입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일주일 넘는 휴식은 낯설기만 하다. 바닷가 리조트에서 2주를 보내기는 지루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앞선다. 장기 휴가를 체험해 본 ‘프로 휴가러’들의 생각은 다르다. 휴가 기간이 길어진 만큼 집이나 휴양지에서만 시간을 보내기보다는 다양한 경험과 도전을 해볼 수 있는 시기라고 조언한다.

김지중 한화자산운용 부장이 네팔 칸첸중가 해발 4,785m 지점인 로낙에서 빨래를 말리며 지도를 살펴보고 있다. 김지중씨 제공
김지중 한화자산운용 부장이 네팔 칸첸중가 해발 4,785m 지점인 로낙에서 빨래를 말리며 지도를 살펴보고 있다. 김지중씨 제공

 나를 찾아 칸첸중가로 떠난 여행 

한화자산운용에 근무하는 김지중(47) 부장은 지난 4~5월 25박 26일에 걸쳐 ‘히말라야의 험산’ 칸첸중가 베이스캠프 트레킹을 다녀왔다. 그를 히말라야로 이끈 것은 2년 전 퇴근길에 우연히 집어든 정유정 작가의 책 ‘히말라야 환상방황’이었다.

올해 연차휴가 17일을 한꺼번에 쏟아부어 한 달 가까운 여행에 나설 용기를 낸 것은 그가 평소 휴가를 ‘당연한 권리’로 여겨왔기 때문이다. 긴 휴가가 용인되는 조직 문화가 있어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휴가 동안 사무실을 벗어나 가까운 휴양지에서 며칠 쉬는 것도 좋지만, 평소 보고 듣고 읽으면서 해보고 싶었던 것들을 경험하는 기회로 삼아보자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1년에 30명 정도만 도전한다는 ‘오지 중의 오지’ 칸첸중가를 오르는 것은 책을 읽은 뒤 생긴 버킷리스트의 제일 윗줄에 있었다. 허락된 곳은 정상(8,586m) 아닌 북면 베이스캠프 팡페마(5,143m)였지만, 그곳에라도 도착해야 비로소 모습을 드러내는 세계 세 번째 최고봉을 직접 눈에 담는 일로도 그에겐 큰 도전이었다.

김지중 한화자산운용 부장이 네팔 칸첸중가 북면 베이스캠프 팡페마(5,143m)에서 깃대를 잡고 서 있다. 김 부장 너머로 칸첸중가 정상이 보인다. 김지중씨 제공
김지중 한화자산운용 부장이 네팔 칸첸중가 북면 베이스캠프 팡페마(5,143m)에서 깃대를 잡고 서 있다. 김 부장 너머로 칸첸중가 정상이 보인다. 김지중씨 제공

봄에 출발한 산행이었지만 높은 산은 여름과 겨울을 한꺼번에 품고 있었다. 그는 때로는 구름 위를 걷는 것처럼, 때로는 스키를 타는 것처럼 산을 올랐다. 해발 4,785m의 로낙에 오른 11일차에는 땀에 젖은 옷과 침낭을 빨아서 캠프 곳곳에 널었다. 몸은 피곤하지만 하산할 때 곰팡이 핀 옷을 입지 않으려면, 침낭을 뚫고 들어오는 벼룩 때문에 고생하지 않으려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해발 5,000m까지 올라가면 산소 요존량(대기 중 함량)이 52%에 불과해 숨이 차고 머리가 아파 헛구역질이 날 정도다. 김 부장은 “산소량이 절반 가까이 줄어들고 나니 가슴 통증을 줄이기 위해 규칙적으로 숨을 쉬는 데 온 정신을 쏟을 수 밖에 없었다”며 “드러누워 쉬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극한 상황에서도 나중을 위해 한걸음씩 내딛는 것이 마치 인생살이와 비슷하다고 느꼈다”고 회상했다.

김지중(맨 앞) 한화자산운용 부장이 네팔 칸첸중가 트래킹 14일차에 북면 베이스캠프에서 남면 베이스캠프로 이동 중 눈보라로 조난당한 상황 기록. 김 부장 일행은 눈 길을 헤치고 수직 하산해 8시간 만에 안전지대에 도착할 수 있었다. 김지중씨 제공
김지중(맨 앞) 한화자산운용 부장이 네팔 칸첸중가 트래킹 14일차에 북면 베이스캠프에서 남면 베이스캠프로 이동 중 눈보라로 조난당한 상황 기록. 김 부장 일행은 눈 길을 헤치고 수직 하산해 8시간 만에 안전지대에 도착할 수 있었다. 김지중씨 제공

조난 위기도 있었다. 출발 14일째, 반환점인 팡페마를 돌아 남면 베이스캠프로 이동하는 길에서다. 이틀간 해발 4,000m가 넘는 5개의 봉우리를 넘어 최종 목적지 도착 두 시간을 남겨둔 상황에서 강풍과 눈보라로 길이 사라진 것이다. 기상 악화로 헬기조차 뜰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이틀간 걸어온 눈 쌓인 길을 되돌아 가기엔 너무 많은 체력을 소모한 상태여서 어쩔 수 없이 눈 속을 헤치고 길을 만들며 내려가는 수직 하산을 선택했다. 8시간의 사투 끝에 안전지대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는 하산을 해야 할지 뒤돌아서야 할지 선택해야 하는 그 기로에서 일행을 모두 담은 사진을 찍었다. “그냥 셀카(셀프 카메라)로 보일 수 있지만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어요. 기록으로 남겨놓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던 건 아닐까요.”

김 부장이 휴가지에서 얻은 것은 극한의 상황에서 벗어났을 때의 안도감, 가빠지는 숨을 참고 뚜벅뚜벅 걷다 보면 언젠가 목적지에 도달한다는 단순한 교훈이었다.

신한은행에서 일하는 김백년(오른쪽)씨가 2015년 8월 중학생 아들 형일군과 나선 자전거 국토종주 중간 지점인 충북 괴산 이화령 고개에 선 모습. 김백년씨 제공
신한은행에서 일하는 김백년(오른쪽)씨가 2015년 8월 중학생 아들 형일군과 나선 자전거 국토종주 중간 지점인 충북 괴산 이화령 고개에 선 모습. 김백년씨 제공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사춘기 아들과의 추억 

신한은행 김백년(44) 팀장은 매년 여름휴가 기간을 반으로 쪼개 절반은 가족 모두와 함께, 나머지 절반은 아들 또는 딸과 단둘이 함께 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열흘간의 연차를 한꺼번에 사용해 2주를 쉬는 ‘웰프로(Well-pro)’ 휴가제를 이용해서다. 아들과는 서울 시내 대학 탐방, 자전거 국토종주 등을 함께 했다. 온 가족이 유럽여행을 다녀온 뒤 따로 휴가를 내서 겨울 한라산을 등정하기도 했다. 올해는 갓 중학생이 된 딸과 일본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

아들, 딸과의 시간을 따로 만든 것은 사춘기 자녀들이 아빠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다시 없을 소중한 경험이 될 것이라는 확신이 들어서다. 휴가 기간이 짧았다면 가족 모두가 함께하는 여행만 선택했을 터다. 김 팀장은 “중학교 시절을 헛되이 보내면 아이들과 단둘이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유대감을 쌓을 시기를 영영 놓쳐버릴 것이라고 생각했다”며 “짧은 시간이지만 아이들이 아빠를 다시 보게 된 계기가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한은행에서 일하는 김백년(오른쪽)씨가 2015년 8월 중학생 아들 형일군과 자전거 국토종주를 마치고 종착지인 부산 사하구 낙동강 하구둑 인증센터에서 손을 맞잡고 있다. 김백년씨 제공
신한은행에서 일하는 김백년(오른쪽)씨가 2015년 8월 중학생 아들 형일군과 자전거 국토종주를 마치고 종착지인 부산 사하구 낙동강 하구둑 인증센터에서 손을 맞잡고 있다. 김백년씨 제공

김 팀장과 아들의 관계가 특히 돈독해진 시간은 2015년 여름에 함께한 국토종주다. 인천에 사는 그는 당시 중학교 2학년생이던 아들에게 “이번 방학엔 자전거를 타고 강을 따라 부산까지 다녀와보지 않겠냐”고 제안했다. 매일 자전거를 타고 통학하던 아들은 흔쾌히 수락했다. 인천에서 부산까지 자전거를 타고 간 뒤 다시 버스를 타고 돌아오는 5일간의 자전거 여행은 그렇게 시작됐다.

자전거길 출발점인 인천 서구 서해갑문에서부터 종착점인 부산 사하구 낙동강 하구둑까지는 총 633㎞, 평지인 강변만 달리는 것이 아니라 중간중간 높은 고개도 넘어야 하는 험난한 구간이다. 하루에 적게는 105㎞, 많게는 144㎞을 달린다는 계획이 중학생에게는 버거워 보이기도 했지만 지금 아니면 언제 해보겠냐는 생각에 부자(父子)는 하루 열두시간을 달렸다. 해발 548m의 이화령을 넘던 셋째날 사달이 났다. 자전거를 탄 채 오르막을 오를 수 없어 직접 끌고 고개를 넘었는데 도저히 안되겠다며 포기하려던 아들을 겨우 설득했다. 여행 마지막날 부산에 도착해서는 쫄딱 비를 맞아 저체온증이 오기도 했다.

극한 상황에서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달린 경험, 새벽부터 일어나 끼니를 준비하고 중간중간 자전거를 정비했던 일들은 아들을 한 뼘 더 자라게 했다. 타고 간 자전거를 짐칸에 싣고 인천으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아들은 언젠가는 3대가 함께 가보자는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아들이 서른 살이 되는 해에 둘이서 다시 부산을 찾아 15년 전 자전거 여행의 마침표를 찍고 싶어요. 계획하는 것도, 실행에 옮기는 것도 쉽지 않았지만 지금 아니면 함께 할 수 없는 추억을 쌓은 것이 아닐까요.”

 나에게 주어진 연차, 당연한 권리 

한 회사에 1년을 꼬박 다니면 15일, 이후 근속연수가 쌓일 때마다 하루씩 늘어나는 연차는 직장인이 누릴 수 있는 당연한 권리다. 휴가 보장은 조직 구성원들의 행복을 위해 꼭 필요한 충전의 시간이 아닐까. 그 사람이 담당하던 고유의 업무가 약간의 차질을 빚는 것은 감수해야 할 수순이라는 것이 ‘프로 휴가러’들의 생각이다.

김지중 부장은 “회사 걱정 하지 않고 온전히 자신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어야 진정한 휴가를 즐기고 온 것”이라며 “그렇게 시간을 보내야만 제대로 충전된 상태로 다시 업무를 수행할 수 있다”고 했다. 김백년 팀장은 “휴가는 가족들과의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를 함께 보낼 수 있게 해 준다”며 “회사일 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자아가 형성되는 아이들과의 관계 형성”이라고 말했다. 박세인 기자 sa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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