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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오판

입력
2017.08.27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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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전쟁은 오판의 결과라고 하지만 한국전쟁만큼 오판으로 점철된 전쟁도 찾기 힘들다. 아시아 방어선에서 한반도를 제외한 ‘애치슨 라인’을 미군의 불개입 신호로 본 스탈린이나 전쟁 1주일 전까지도 북한의 남침 가능성에 눈감은 트루먼 행정부 모두 상대 의중을 오판해 전쟁을 불렀다. 전쟁 중에도 오판은 거듭됐다. 인천상륙작전에 이어 압록강까지 북진을 감행한 맥아더 장군은 중공군의 전면개입 경고를 무시하다가 장진호 전투 등에서 참담한 패배를 당했다. 중공군의 개입을 야기한 맥아더의 오판이 없었다면 전쟁은 훨씬 더 빨리 끝나고 한반도 정세도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다.

▦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 이후 미국과 북한이 주고 받은 말 폭탄의 요지는 딱 하나 ‘오판하지 말라’는 것이다. 김정은의 괌 기지 타격 발언에 트럼프 대통령이 “분노와 화염”을 들먹이자 틸러슨 국무장관은 “북한이 오판하지 않도록 김정은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전달한 것”이라고 했다. 북한은 며칠 전에도 을지프리덤가디언 연습을 거론하며 “조선의 초강경 의지를 오판하지 말라”고 했다. 단순한 허세인지 실질적 위협인지 알 수 없으나 오판의 전쟁을 겪은 우리에게는 무시할 수 없는 경고다.

▦ 미국의 전쟁 방식이 바뀐 건 9ㆍ11 테러를 겪은 뒤다. 아프가니스탄 전쟁이야 알 카에다에 대한 응징이었지만, 뜬금없는 이라크 전쟁은 ‘테러의 내상에 의한 집단발작적 행위’ 말고는 설명할 길이 없다. ‘적이 공격하기 전에 먼저 공격한다’는 부시 정부의 이른바 선제공격론이다. 하지만 대량살상무기 하나 없는 후세인 정권이 애초에 미국을 공격할 만한 존재가 되지 못했다는 건 증명된 사실이다. 지금 트럼프 행정부에서 거론되는 ‘예방전쟁’도 부시의 선제공격론을 낳은 9ㆍ11 테러에서 뿌리를 찾을 수 있다.

▦ 미국의 원로 국제정치학자인 존 스토신저는 ‘전쟁의 탄생’에서 전쟁의 가장 중요한 원인은 지도자의 ‘잘못된 지각(misperception)’이라고 했다. 전쟁을 부추기는 대내외 정치상황도 변수지만, 러시아를 과소평가한 히틀러 같은 지도자의 오판, 즉 사람의 실수가 전쟁의 가장 큰 원인이라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좌충우돌’ 트럼프와 ‘천둥벌거숭이’ 김정은이 절묘하게 조합된 지금의 대립구도가 오판과 실수가 나올 최적 환경이 아닐까 걱정스럽다.

황유석 논설위원 aquariu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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