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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식 칼럼] 애플에 비친 삼성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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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식 칼럼] 애플에 비친 삼성전자

입력
2011.01.31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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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이맘때 삼성전자는 속이 편치 않았다. 그룹의 최대 숙제였던 이건희 회장의 사면복권이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한 국가적 관점'에서 해결되고 실적은 사상 최대 행진을 이어갔는데도 말이다. 문제는 2009년 11월 국내 시판된 애플의 아이폰이었다. 미국서 처음 출시된 2007년 이후 세계를 휩쓴 아이폰 열풍이 한국적 토양에는 먹히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과 바람은 말 그대로 아전인수였다.

실적 좋지만 시스템분야 등 구멍

명백한 착각이고 오만이었다. 낸드 플래시 반도체 등 아이폰의 주요 부품은 삼성제품이라는 자부심은 변명에 불과했다. 스마트폰이 휴대폰 시장의 트렌드로 자리잡고 기능 등의 하드웨어 기술력 대신'앱'으로 표현되는 소프트웨어 혁신이 지배하는 세상은 삼성전자를 뒤로 밀어냈다. 범 삼성가의 일원인 신세계 정용진 부회장이 트위터를 통해 삼성전자의 방심과 무지를 경고한 것도 무리가 아니다.

삼성의 반격은 3월 말 이건희 회장의 일선 복귀와 함께 시작됐다. "진짜 위기다. 다시 시작하자. 앞만 보고 가자"는 독려가 주효했던지 2개월 만에 아이폰과 동급인 갤럭시S를 내놓았다. 아이폰이 미국 시장에 선보인 지 35개월, 한국에 상륙한 지 8개월 만이었다. 그런 갤럭시S가 지난해 6월 이후 전 세계적으로 1,000만대 이상 팔리며 휴대폰 명가 삼성전자가 2,500만대의 스마트폰을 파는 데 앞장섰다. 4분기에만 1,600만대 이상 팔린 아이폰에는 크게 못 미치지만 한때 혁신의 개념과 시장의 힘을 과소평가했던 삼성전자로선 가슴을 쓸어 내릴 법도 하다.

엊그제 삼성전자는 지난해 154조원을 넘는 매출과 17조3,000원의 영업이익 등 사상 최대 실적을 거뒀다고 발표했다. 매출로는 세계 최대 전자업체인 미국 HP를 제쳤고, 영업이익은 GE마저 따돌렸다. 최대 수훈갑은 10조원 이상의 이익을 낸 반도체부문이지만 통신부문도 크게 기여했다. 특히 갤럭시S를 만든 무선사업부는 1조원을 훌쩍 넘는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시장은 100만원 대 주가로 화답했다.

그런데 왠지 찜찜하다. 같은 시기에 전해진 애플의 실적 때문이다. 애플은 지난해 4분기(10~12월) 아이폰 아이팟 아이패드 맥북 등 i시리즈만으로 267억 달러의 매출과 60억 달러의 순이익을 기록했다. 매출 및 순익 신장세도 놀랍지만 22%의 순이익률은 실로 경이롭다. CEO인 스티브 잡스의 제품 혁신과 마케팅 능력에 시장의 찬사가 쏟아졌고, 그의 병가에 따른 애플 주가 추락 역시 화제였다.

이 기간에 삼성전자는 D램 반도체와 LCD 값 하락 등으로 41조원의 매출과 3조원의 영업이익에 그쳤다. 사업구조나 규모, 제품과 시장의 특성이 달라 애플과 맞비교는 어렵지만, 삼성전자의 3배를 넘는 애플의 순이익률은 혁신과 창의, 사람과 문화가 돈을 만든다는 오늘의 진리를 웅변으로 말해준다.

여기서 자극 받았을까. 이 회장의 독려가 한층 강해졌다. 작년 3월 조직의 방심과 안주에 일침을 가했던 말이 "세상이 하도 빨리 바뀌어 10년, 20년 후를 상상조차 못하겠다. 정신 차리고 더 배워야 한다"고 변한 것이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곽승준 청와대 미래기획위원장이 최근 전한 말이다. 그에 따르면 이 회장은 얼마 전 임원회의에서 삼성전자가 메모리 반도체에만 주력해 컴퓨터의 두뇌 역할을 하는 시스템반도체 기술이 부족하고 운영체제(OS)도 거의 미국 회사에 의존하는 실정이라며 "삼성이 제대로 컴퓨터를 만든 적 있느냐"고 질책했다고 한다. 메모리 점유율은 46%이지만 시장 규모가 메모리의 6배인 300조원인 시스템(비메모리) 분야의 점유율은 3%에 불과한 늙은 구조를 지적한 것이다.

혁신 위주 사업구조 재조정 시급

사상 최대 성적을 냈다고는 하나 삼성전자 앞엔 애플이, 뒤엔 시스템반도체가 길을 막고 있다. 임직원들이 실적급(PS)으로 받는 평균 4,000만원의 돈 보따리에 스트레스가 따라올 수밖에 없다. 문제는 삼성이 건강한 벤처생태계 육성 등 올바른 스트레스 처방을 찾아낼 수 있느냐이다. 지난 10년 동안 삼성전자는 열심히 돈을 벌었고 덩달아 오너 일가의 굴레도 다 풀렸다. 그러나 혁신과 도전에 대한 기억은 별로 없다.

이유식 논설위원 y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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