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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에도 민주화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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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에도 민주화가 필요하다

입력
2017.03.23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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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민의 탄생

김종영 지음ㆍ휴머니스트 발행

440쪽ㆍ2만원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인용 후 첫 주말인 11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20차 촛불집회에서 시민들이 환호하고 있다. 김종진 인턴기자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인용 후 첫 주말인 11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20차 촛불집회에서 시민들이 환호하고 있다. 김종진 인턴기자
2008년 시민들은 '광우병 소고기'에 반대하며 거리로 나왔다. 미국산 소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집회 참가자들이 촛불집회를 상징하는 마스코트를 들고 침묵시위를 벌이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2008년 시민들은 '광우병 소고기'에 반대하며 거리로 나왔다. 미국산 소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집회 참가자들이 촛불집회를 상징하는 마스코트를 들고 침묵시위를 벌이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시민들의 힘’이라는 말이 이처럼 와 닿은 건 30년 만에 처음이 아니었을까. 지난해 10월 29일부터 이달 4일까지 총 19번 이어 온 촛불집회는 마침내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을 이끌어냈다. 이뿐만 아니다. 지난해에는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에게 조금이나마 위로가 된 해이기도 했다. ‘아이에게도 안전하다’는 광고를 믿었다 가족을 잃은 유족들은 제조업체들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승소했고, 가습기 살균제 제조업체 임직원들은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가 인정돼 1심에서 유죄를 선고 받았다.

국정을 농단한 지배 세력, 뒷돈을 받고 제조업체에 유리하도록 연구결과를 조작한 연구교수 등 부정한 지식 세력에 대항해 온 시민들이 이끌어낸 결과다. 김종영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는 이렇게 고한다. “지식인의 시대가 가고 지민(知民)의 시대가 왔다.”

‘지민의 탄생’은 2000년 이후 한국사회를 관통하는 주요 사건을 국가중심의 ‘지배지식동맹’과 시민사회 중심의 ‘시민지식동맹’의 대결이라는 관점으로 풀어낸 책이다. 삼성 백혈병 사태, 광우병 촛불운동, 황우석 사태, 4대강 사업을 다뤘지만 앞서 제시한 ‘탄핵 촛불’과 가습기 살균제처럼 여전히 진행 중인 한국 사회 적폐를 드러내는 데 모두 적용할 수 있다. 저자는 발로 뛰어 책을 썼다. 현장에서 활동했던 시민사회단체 관계자, 사건의 직접 개입자 등 다양한 사람을 인터뷰한 과정이 고스란히 담겼다. 누가 사건을 움직였고, 누가 대항해 싸웠는지 세세히 적은 10년의 기록이다.

현대사회에서 시민들은 정치인에 자신들의 주권을 위임한다. 그리고 동시에 지식엘리트들에게는 지식과 정보를 위임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이중 위임으로 지식과 정보 격차가 발생하고 시민들은 그들의 잘잘못을 가려낼 수 없게 된다는 점이다. ‘지민’은 이러한 지배지식동맹이 전파하는 지식을 견제하기 위해 ‘공적 이슈와 사회문제에 대해 공부하고 참여하는 똑똑한 시민’이다.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 회원들이 2012년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숨진 근로자들의 산재 인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주영 기자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 회원들이 2012년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숨진 근로자들의 산재 인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주영 기자

올해로 어느덧 10년째, 삼성 반도체공장 등에서 일하다 백혈병, 암 등 질병으로 사망한 노동자들의 산업재해를 인정받기 위해 싸워오고 있는 반올림이 대표적이다. 2007년 근로복지공단에 산재를 신청했던 6명은 업무상 질병판정위원회에서 압도적 비율로 산재를 기각 당했다. 신중함, 정교함을 중시하는 전문가들은 위험 물질에 노출됐을 가능성은 있지만, 그 물질이 질병을 유래한다고 볼 만한 ‘충분한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산재를 인정하지 않았다. 업무 현장의 위험성, 그 위험성과 질병과의 인과관계를 입증해야 하는 책임이 노동자에게 전가된 현실도 가혹한데, 자신들에 불리한 결과가 나올까 우려한 기업들은 조사에 적극 나서지 않는다. 반올림은 ‘대항 전문가’들과 함께 삼성에 반하는 지식을 축적해 왔고, 일부 피해자들은 산재를 인정받을 수 있었다

지식시민권이 확장되고 지식민주주의가 실현돼야 한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영국의 사상가 존 액튼은 말했다. ‘권력은 부패하는 경향이 있으며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지식은 독단적인 경향이 있으며 절대 지식은 절대 독단적이다.’ 촛불집회를 통해 무언가 바꿔낼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된 지민들이 많아졌다는 건 희망적인 소식이다.

양진하 기자 realh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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