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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일
소설가

등록 : 2017.11.01 15:55

[장정일 칼럼] ‘진달래꽃’ 다시 읽기

등록 : 2017.11.01 15:55

촉나라 왕 망제(望帝)는 나라를 잃어버린 뒤 두견새가 되었다. 망제의 원혼이 깃든 두견새(소쩍새)는 촉나라로 돌아가고 싶어 ‘귀촉(歸蜀) 귀촉’하며 울어댔고, 그 새의 목구멍에서 쏟아진 피가 땅에 스며 두견화(杜鵑花)가 피었다.

우리에게는 진달래꽃인 이 붉디붉은 꽃은 겨울이 막 물러난 이른 봄에 잎도 없이 꽃잎부터 먼저 핀다. 지금은 코스모스 한들거리는 가을이므로 진달래꽃은 제 철에 맞는 화제가 아니다. 그러나 다음해 봄까지 기다리기에는 너무 재미있는 책을 읽었다.

진달래꽃이라면 누구나 자동기술적으로 김소월을 떠올리게 된다. 김소월이 1925년 12월 26일 매문사에서 펴낸 시집 ‘진달래꽃’은 한국근대시사에서 가장 중요한 시집 중 하나며, 이 시집에 실린 126편의 시 가운데 104번째 작품인 ‘진달래꽃’은 한국인이 애송하는 시이기도 하다. 이 작품에 대한 표준적인 설명은 하나같이 ‘한(恨)’이라는 정서와 ‘아이러니(irony)’라는 기법을 중시하는데, 여기에 대항하는 해석도 많이 있다.

마력에 가까운 ‘진달래꽃’의 매력은 “나보기가 역겨워” 떠나는 님의 앞길에 꽃까지 뿌리며 “고이 보내 드리”겠다는 화자의 초인적인 반응에 있다. 흉내 내기조차 어려운 ‘안전이별’의 귀감이 되고 있는 이 반어에 ‘진달래꽃’의 저력이 온축되어 있다. “역겨워”의 사전적인 풀이에는 ‘너무 싫고 화가 나서’라는 뜻에, ‘속이 거북하다, 속이 메슥메슥하다’라는 생리적 반응이 부가되어 있다. 님은 내가 그냥 싫은 정도가 아니라, 비위가 상해서 구토가 날만큼 싫은 것이다. 그런 님에게 꽃을 깔아주겠다고 했으니 매조키스트라는 말을 들어도 할 말이 없다. 실제로 마광수의 해석이 그랬다.

문학평론가 심선옥은 2005년에 발표한 어느 논문에서 ‘진달래꽃’에 나오는 “역겨워”를 달리 해석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했다. 한국어는 ‘정(情)+겹다’ ‘흥(興)+겹다’ ‘허(虛)+하다’ ‘험(險)+하다’ 와 같이 한자어와 한글 어미의 합성어가 많다. 그런데 ‘역겹다’의 경우 생리적 거부를 뜻하는 ‘역(逆)+겹다’와 힘들다라는 뜻의 ‘역(力)+겹다’가 함께 있을 수 있다. 전자는 떠나는 님의 마음 깊숙이서 생겨난 원한이므로 꽃까지 깔아주며 아쉬워할 이유가 없는 반면, 후자는 외적 압박이 원인이다. 즉, 님은 여전히 나를 사랑하고 있지만 신분 차이나 불임 등을 이유로 부모나 주위로부터 헤어지라는 압력을 받고 힘들어하는 중이다. 님이 나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만은 확신할 수 있기에 시적 화자는 눈물을 참고 힘겨워 하는 그를 보내 준다.

김소월은 남한과 북한의 문학사가 공유하고 있는 협소한 공통 유산이다. 북한문학사는 한용운을 단 한 줄도 언급하고 있지 않지만, 이육사와 김소월만은 일제강점기 최고의 민족시인으로 숭앙한다. 북한의 문학평론가 엄호석은 ‘김소월론’(평양:조선작가동맹출판사,1958)에서 ‘진달래꽃’을 “봉건적 유습으로 말미암아 강요된 조혼의 결과 당연하게 일으켜진 사랑의 파탄”으로 설명하면서, 나를 역겨워하며 갈라지려는 남편을 오히려 고이 보내주는 조선 여성의 “아름다운 인간성”과 진달래꽃처럼 강인한 “용감성과 생활 긍정적 의욕”을 예찬한다. 하지만 아무리 눈을 씻고 읽어도 두 사람이 조혼을 했다는 흔적이 작중에 보이지 않는 게 문제다.

김만수의 ‘진달래꽃 다시 읽기’(강, 2017)는 ‘진달래꽃’ 시집 전체를 ‘귀신을 부르고(迎神)→귀신과 만나고(接神)→귀신을 보내는(送神)’ 무당굿의 구조로 파악하려는 야심 찬 작업을 선보인다. 예컨대 심선옥(신비평)ㆍ마광수(심리주의)ㆍ엄호석(유물론)은 각기 다른 방법론을 택했지만 모두 다 ‘진달래꽃’에 나오는 님과 시적 화자를 살아있는 사람들로 읽었다. 이에 반해 지은이는 두 사람을 산 자와 죽은 자의 관계로 보았다. 같은 시에는 산 자(시적 화자)가 이승의 세계에서 계속 살아가기 위해 죽은 님을 뿌리쳐야 하는 애증의 감정이 교차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소월이 무속에 조예가 깊었다는 실증적 연구가 실재하지 못한 상황에서도, 지은이의 해석은 시집 전체를 일관해서 조감할 수 있는 설득력 있는 관점을 보여준다.

장정일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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