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하순 입지 선정 용역결과 발표
영남권 두쪽으로 갈려 배수진 혈투
정치권도 가세… 메가톤 후유증 예고
새만금 행정권 6년째 갈등 교훈으로
개발이익 5개 지자체 공유제 해볼만
‘부산 가덕도냐, 경남 밀양이냐.‘
지난 2006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지시로 본격 검토가 시작된 이래 10년을 끌어온 영남권 신공항 입지 발표가 초읽기에 들어갔다. 3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정부 의뢰로 작년 6월부터 신공항 입지 선정을 위한 작업을 진행해 온 파리공항공단 엔지니어링(ADPi)은 이르면 이달 하순 직접 용역결과를 발표할 계획이다. 그간 신공항 입지를 둘러싸고 벌어진 부산시(가덕도)와 대구ㆍ울산ㆍ경북ㆍ경남(밀양) 간 ‘진흙탕 싸움’의 승자가 이달 내에 어떤 식으로든 가려질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그게 끝이 아니라는 점이다. 어떤 결과가 나오든 그 여진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을 것이 자명하다. 지역 민심에 정치권까지 결합해 10년여의 세월 간 이어진 뿌리 깊은 갈등인 만큼 떨어진 쪽이 쉽사리 결과에 승복할 리 만무하다. 지난해 1월 과도한 유치 경쟁을 하지 않겠다고 신사협정을 맺었던 영남권 5개 시도 단체장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배수진을 친 혈투를 벌이고 있고, 20대 국회 개원과 함께 정치권도 여야가 아닌 부산 대(對) 타 영남권으로 쪼개져 한 치 양보 없는 신경전을 이어가고 있다. 심지어 일부 시민단체들은 타지역으로 신공항 입지가 선정되면 결과에 불복하겠다는 입장을 공공연히 내놓고 있을 정도다. 이번 결과 발표를 도화선으로 새누리당 내 대구ㆍ경북(TK)과 부산ㆍ경남(PK)의 세력 분열은 물론, 인구 1,300만명의 영남권 민심 전체가 두 동강이 날 위기에 처했다는 경고가 나올 수밖에 없다.
이 같은 파국을 막기 위해서라도 전문가들은 정부가 신공항 발표 이후 패자의 충격을 덜고 지역 내 민심 분열을 막을 상생과 협력의 방안을 미리 준비할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특히 조선ㆍ해운 업종 구조조정으로 동남권 경제가 일촉즉발의 위기를 맞고 있는 상황에서 신공항(發) 민심 분열을 방치한다면 걷잡을 수 없는 후폭풍이 몰아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새만금 개발사업의 전례는 현 영남권 신공항 갈등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새만금 개발사업의 지역 행정권을 둘러싼 전북 군산시와 김제시, 부안군의 갈등은 6년째 이어지고 있다. 2010년 새만금 3,4호 방조제 및 근처 매립지의 행정 관할지가 군산으로 결정되자 김제, 부안이 소송을 벌였고 2013년 대법원은 군산의 손을 들어줬다. 작년 말에는 또 다른 행정구역인 1,2호 방조제 관할권을 각각 부안, 김제에 귀속키로 하자 이번에는 군산이 제소하며 또 다시 법정 공방을 진행 중이다.
영남권 신공항의 승자와 패자 간 상생을 위해 우선 거론되는 방안은 이른바 ‘이익공유제’다. 공항 건설로 들어오는 세금이나 관광 인프라 등을 5개 지자체가 공용으로 누릴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자는 것이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미국에서는 산업시설 유치 등 사업에 따른 이익을 인근 지자체 간에 공유하는 식으로 갈등을 봉합하기도 한다”며 “신공항 건설로 들어오는 면세수입 등 개발 이익을 동남권 5개 지자체가 함께 나누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신공항 부지 선정에 뒤따르는 지역민심의 분열을 현재 동남권 최대 현안 중 하나인 조선업 구조조정과 연계해 풀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최근희 서울시립대 도시행정학과 교수는 “그간 동남권 경제를 지탱해 온 조선업이 쇠락의 길에 접어든 만큼 이를 대신해 지역 경제를 살릴 수 있는 신산업을 육성하는 게 시급하다”며 “신공항 유치에 떨어진 지역을 신산업 발굴ㆍ육성의 거점으로 삼는 것도 좋은 대안”이라고 조언했다. 해운물류학회장을 역임한 하영석 계명대 경제통상학부 교수는 “가령 밀양이 신공항 입지로 선정되면 천혜의 자연환경을 지닌 부산 가덕도의 장점을 살려 관광산업단지로 조성할 수도 있는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정부 주도의 ‘민심 달래기’가 아닌 승자와 패자 간 자율적인 상생 방안도 필요한 것으로 거론된다. 서병수 부산시장이 정부에 제안한 의견이 대표적이다. 신공항 활주로를 당초 2본에서 1본으로 축소하고 절약한 예산 6조원 가량을 활용해 대구 군공항(K2)기지 이전 사업 등 타지역 숙원사업에 지원하자는 것이다. 물론 이 같은 서 시장의 제안은 신공항 입지 선정에서 가점을 얻기 위한 정치적인 제스처로 해석되지만, 최종 입지 선정 이후에는 충분히 고려해 볼만한 상생 대안이라는 분석이다.
향후 대형국책사업이 추진될 때마다 이런 갈등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려는 노력도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전형준 단국대 분쟁해결센터 교수는 “정치권과 정부가 수요자인 이해관계자의 다양한 목소리를 귀담아 들으려 하지 않고 단순한 경제적 이익의 잣대로 정책을 밀어붙여 갈등을 조장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수년간 대화와 협의를 통해 상수도보호구역 해제 문제를 2013년 해결한 강원 원주시와 횡성군처럼 정부도 투명한 정보공개와 다양한 의견을 나눠 지자체와 원만한 협의를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박준석 기자 pj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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