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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 캠페인’ 통해 드러나는 전세계 여성들의 성폭력 피해

입력
2017.10.23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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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명의 여성으로부터 성추행 혐의로 고소된 할리우드의 영화감독 겸 작가 제임스 토백. AP 연합뉴스.
38명의 여성으로부터 성추행 혐의로 고소된 할리우드의 영화감독 겸 작가 제임스 토백. AP 연합뉴스.

할리우드에서 ‘제2의 와인스틴’ 의혹이 불거졌다. 22일 미국 일간지 로스앤젤레스타임스는 38명의 여성이 중견 영화감독 겸 작가인 제임스 토백(72)을 성추행 혐의로 고소했다고 보도했다. 토백 감독은 워런 베티와 아네트 베닝이 주연한 영화 ‘벅시’로 1991년 오스카 시상식 각본상 후보에 오른 뒤 유명해졌고 올해 초 영화 ‘프라이빗 라이프 오브 어 모던 우먼’을 만들어 베니스 영화제에 출품했다. 그의 성추행 전력은 와인스틴 추문 이후 시작된 ‘나도 당했다(#MeToo)’ 라는 고발 캠페인 때문에 드러났다.

권력 이용한 성폭력에 침묵할 수 밖에 없었던 피해자들

토백 감독의 만행은 ‘제2의 와인스틴’ 추문으로 불린다. 할리우드의 거물 영화제작자인 하비 와인스틴이 지위를 이용해 20대 초ㆍ중반의 여성을 대상으로 범행을 저지른 것처럼 토백 감독 역시 지위와 할리우드 인맥을 동원해 성추행을 일삼았다.

토백 감독을 고소한 여성들의 증언에 따르면 그는 뉴욕의 길거리를 배회하며 여성들에게 접근해 유명 감독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뒤 배우로 데뷔시켜줄 테니 개인 면접을 보자며 호텔 등으로 여성들을 유인했다. 당시 피해 여성들은 대부분 20대 초반이었으며 고등학생도 있다.

피해자중 한명인 라디오 진행자 사리 카민은 2003년 토백이 영화 배역을 주겠다며 접근해 “많은 스텝들과 함께 노출장면을 찍으려면 연습이 필요하다”며 호텔로 데려가 성추행했다고 증언했다. 배우 애드리언 라밸리도 2008년 배역 면접을 보자는 제안 때문에 호텔에서 토백을 만났고 그가 자신 앞에서 자위행위를 하는 모습을 봐야 했다고 회고했다. 라밸리는 “매춘부가 된 것 같았고 내 자신과 부모님, 친구를 실망시키기 싫어 아무에게도 얘기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고 말했다.

피해자들은 수십 년간 계속된 토백의 범행을 쉽게 고소할 수 없었다. 피해자 중 한명인 배우 에코 다논은 “(토백의 성추행이) 참기 힘들었지만 또 다른 배역을 갖게 될 것이라는 희망 때문에 견뎠다”며 “피해자들 모두 일자리가 필요한 처지였다”고 말했다.

‘나도 당했다(#MeToo)’ 캠페인을 통해 드러나는 실태

미국 배우 알리사 밀라노는 지난 15일 트위터를 통해 성폭력 피해경험을 증언하는 '미투 캠페인'을 제안했다. 알리사밀라노 트위터 캡쳐.
미국 배우 알리사 밀라노는 지난 15일 트위터를 통해 성폭력 피해경험을 증언하는 '미투 캠페인'을 제안했다. 알리사밀라노 트위터 캡쳐.

토백의 범행이 드러난 것은 와인스틴 성추문 이후 시작된 성폭력 고발 캠페인의 영향이 크다. 이 캠페인은 지난 15일 미국 영화배우 알리사 밀라노가 트위터에서 “성희롱이나 성폭행을 당한 적이 있다면 ‘나도 그렇다(Me Too)’고 써달라”며 “이 행동으로 많은 사람들이 문제의 심각성을 알게 될지 모른다”라는 글을 써 시작됐다. ‘나도 당했다’는 뜻의 #미투(#MeToo)라는 해시태그를 붙여 글을 올려서 ‘미투 캠페인’이라고 불린다. 트위터에 따르면 지난 20일 기준 약 1,200만 명의 네티즌들이 캠페인에 동참했다.

토백 감독의 이름은 캠페인 초반부터 자주 언급됐다(#JamesToback). 그의 성추행 의혹은 이미 1989년 월간지 ‘스파이매거진’ 등에서 보도했지만 2차 피해 등을 우려해 지금껏 법적 조치 등이 이뤄지지 않았다. 그러나 캠페인을 통해 여러 피해자들이 모이면서 토백의 범행이 공개됐다.

미투 캠페인은 할리우드를 벗어나 다양한 영역과 국가에서 자행되던 성폭력 폭로에 일조하고 있다. 2015년 은퇴한 미국의 올림픽 체조 금메달리스트 맥카일라 마로니(22)가 13세부터 팀 닥터인 래리 나사르에게 성추행을 당했다는 사실도 트위터를 통해 최근 폭로했다. 치료를 명분으로 지속적 추행을 당했다는 마로니는 “권력과 지위가 있는 곳 어디에서든 성추행이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프랑스에서도 ‘당신의 가해자를 폭로하라(#balance ton porc)’는 SNS캠페인을 통해 여성들의 성폭력 증언이 이어지고 있다. 집권당인 ‘레퓌블리크 앙마르슈(전진하는 공화국)’ 의 모젤 크리스토프 아랑 하원의원, 사회당 소속 원로정치인 피에르 족스 등이 여성 보좌관 등을 지속적으로 성추행 해왔다는 폭로가 나왔다. 우리나라에서도 역시 미투 캠페인을 통한 증언이 이어지고 있다.

캠페인을 통해 과학계에 만연한 성폭력을 고발한 네덜란드 트웬테 대학 컴퓨터공학과의 바네사 에버스 교수는 “다른 피해자들과 함께 증언하는 지금이 현실을 알릴 적기” 라고 주장했다. 그는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노골적인 성희롱부터 성적 이메일까지 다양한 성폭력을 당했지만 문제제기를 하면 이상한 사람이 됐다”며 “여전히 두렵지만 이 같은 폭력은 특정인이 아닌 누구에게나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폭로를 결심했다”고 덧붙였다.

신혜정 기자 are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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