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은 노인의 젖이다’라는 얘기가 있다. “늙은이에게 술은 아기가 먹는 젖과 같은 존재라네. 자네들도 늙어 보면 알 것이네.”(조선 유학자 정여창) 노인과 술은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다. 노인에게 술은 은퇴와 배우자 사별, 경제적 궁핍 등에 따른 스트레스와 삶의 무료함을 달래 주는 친구다. 외롭고 힘들 때마다 소주 한 잔, 막걸리 한 사발 걸치는 낙에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술을 마시는 노인에게서 우울증이 적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음주 과정에서 형성된 사회적 관계가 우울감을 줄여 준다는 것이다.
▦ 며칠 전 서울 구의동에서 70대 노인이 SUV 승용차를 몰고 인도로 돌진해 행인 2명이 숨지고 7명이 다쳤다. 그는 술에 만취한 상태였다. 노인 운전자의 음주사고는 사망 등 치명적인 피해로 이어지기 쉽다. 노인은 주의력, 시력, 다중작업능력 등 운전에 필요한 기능이 떨어진다. 오랜 기간의 음주로 간 기능이 약해진데다 체내 수분도 부족하다. 알코올 대사 작용이 원활할 리 없다. 그러니 똑 같은 양의 술을 마셔도 젊은이보다 훨씬 빨리 취한다. 국내 알코올성 정신장애 환자가 60대 이후 급증하는 이유다.
▦ 최근 5년간 교통사고 사망자는 12% 줄어든 반면, 노인 운전자가 낸 사망사고는 35%나 치솟았다. 새참 때 막걸리를 마시고 경운기 등을 몰다 사고로 숨진 노인도 크게 늘었다. 고령 운전자일수록 위기 대응 능력이 떨어져 사망사고로 연결될 위험이 높아진다. 85세 이상 운전자의 교통사고 사망률은 25~69세에 비해 9배나 높다(미국의학협회). 빠른 고령화로 노인 운전자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 현재 65세 이상 운전자는 250만명. 택시ㆍ버스 운전을 생업으로 삼는 노인도 많다. 70대 이상 택시기사만 1만명에 달한다.
▦ 한국에선 한번 운전면허를 따면 평생 운전이 가능하다. 일본은 사고 경험이 있는 70세 이상 노인의 운전면허를 특별 관리한다. 미국 일리노이주의 경우 81세 이상은 2년에 한 번 시력검사와 도로주행시험을 통과해야 운전면허가 갱신된다. 음주 사망사고에 대해선 살인죄와 동일하게 취급하는 나라가 많다. 우리 형량은 징역 8개월에서 1년6개월이 고작이다. 노인 운전자의 면허 갱신 주기와 음주운전 기준을 강화하는 건 차별이 아니다. 노인 운전자의 안전을 지키는 길이다. 우리도 곧 노인이 된다.
고재학 논설위원 goindo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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