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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물은 ‘상품’이 아니다

입력
2017.03.16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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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전 이맘때, 부산 기장군에서 해수담수화 수돗물공급 주민투표가 진행되었다. 정부와 부산시는 바닷물에서 염분을 제거해 수돗물을 만드는 설비를 완공하고, 기장군 3개 읍면에 공급하는 사업을 추진해왔다. 그러나 주민들은 담수화 취수구가 고리 원전 11km 거리에 있어 안전성을 담보할 수 없다는 점과 대기업 주도의 ‘물 민영화’ 문제를 제기하며 반대운동을 벌였다. 투표결과 1만 6,000여 주민이 참여해 89%가 반대표를 던졌다.

지난해 9월 부산지법도 “기장해수담수 수돗물 공급은 부산시의 사무이고 기장군 주민에게 과도한 부담을 주는 사안임으로 주민투표 대상이다”는 판결을 내렸다. 주민들의 힘으로 아직까지 해수담수 수돗물은 공급되지 않고 있다. 해수담수화 수돗물 주민투표가 남긴 교훈은 “어떤 물을 마실 것인가는 주민들이 결정한다”는 것이다. 정부와 부산시의 일방 행정에 대항해 주민들이 스스로 마실 물에 대한 결정권을 행사한 것이다. 물 정책에서도 민주적인 의사결정이 중요함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물 문제는 어느 사회에서나 민감한 주제이다. 모든 생명은 물이 없으면 생존할 수도 없고, 대체제가 없기 때문이다. 물을 생존에 ‘필요’한 자원으로 볼 것인지 생존을 위해 누려야 할 ‘권리’로 볼 것인지에 대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생수산업, 상하수도사업과 같은 물 산업이 성장하면서 물을 상품화하는 것이 효율적인 관리 방법이라는 주장이 확산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환경부가 ‘물산업진흥법’ 상반기 통과와 대구 물산업클러스터 조성을 주요업무로 발표하고 있다. 환경부는 물을 상품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물 산업이 성장하면 물 문제를 잘 해결할 수 있을까? 세계 곳곳에서 민영화로 인한 물 값 인상으로 비용을 감당하지 못하는 시민들에게 수돗물 공급이 중단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깨끗한 물은 공급 인프라의 효율성만 아니라 수변지역 보전과 생태계 관리와 함께 이뤄져야 한다. 기업이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을까? 4대강 사업이 초래한 재앙에 가까운 강의 오염과 생태계 파괴를 보면 지금 환경부가 물산업 육성에 나설 때인가 싶다. 4대강 사업은 정부 주도의 일방행정이 시민들의 물에 대한 권리를 침해한 대표 사례이다.

물 정책은 산업이 아니라 기본권 감각으로 접근해야 한다. 모든 시민은 빈부의 차이에 상관없이 누구나 깨끗하고, 안전한 물을 이용할 권리가 있다. 우루과이는 헌법에 ‘물 권리 선언’을 담고 있다. 물 민영화로 높아진 물 값 때문에 시민들이 식수를 공급받지 못하는 사태가 발생하자 2004년 국민투표를 통해 헌법에 물을 이윤 추구의 대상이 아닌 인권으로 규정한 것이다. 개정된 내용에는 상하수도에 대한 접근은 기본적인 인권으로 보장받아야 하며, 수자원 관리는 시민의 참여와 지속가능성에 기반을 두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독일, 프랑스, 인도네시아, 미국, 아르헨티나의 지자체들은 기업에 맡겼던 물 관리와 공급을 재공영화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5월에 들어설 새 정부는 4대강 사업에 대한 철저한 평가를 바탕으로 물 정책의 근간을 수립하는 물기본법을 제정했으면 한다. 물기본법에 국토교통부와 환경부로 이원화되어 있는 부서와 예산을 통합해 수량, 수질, 수생태계를 통합 관리하는 것과 물에 대한 기본권을 명시하는 내용을 담는 것이다. 물을 이윤추구의 대상이 아닌 기본권으로 정립해 물 정책에 시민들이 참여하고, 관리와 보전도 함께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를 실현하려면 4대강 사업 해법과 물기본법 제정에 관한 시민들의 관심과 참여가 절실하다. 기장 주민들의 해수담수화 수돗물 주민투표는 주민들이 물 문제에 대한 권리를 적극 행사한 ‘물 민주주의’ 운동이라 할 수 있다. 물은 ‘모두의 것’이다. 물 정책에 시민참여를 제도화하자.

이유진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연구기획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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