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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6621명 동원, 앨범은 50만장 판매...신해철이 남긴 불후의 명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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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6621명 동원, 앨범은 50만장 판매...신해철이 남긴 불후의 명곡

입력
2014.10.31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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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정글스토리' 중 한 장면.
영화 '정글스토리' 중 한 장면.

신해철은 훌륭한 영화음악가였다. 한국 영화계는 그가 남긴 유산을 잊어선 안 된다. 한국 영화음악 역사에 길이 남을 불후의 명작이자 신해철 최고의 솔로 앨범인 ‘정글스토리’(1996) 사운드트랙. 넥스트 2집 ‘더 리턴 오브 넥스트 파트 1 더 비잉’(1994)과 함께 신해철이 남긴 최고의 작품이다.

대중음악평론가 강헌이 시나리오를 쓴 영화 ‘정글스토리’는 당시만 해도 거의 무명에 가까웠던 로커 윤도현의 자전적인 내용을 다룬다. 윤도현도, 밴드 멤버들도 모두 실명으로 출연했다. 로커의 꿈을 안고 상경한 도현이 퇴물 매니저(김창완)를 만나 정글 같은 현실에서 발버둥치는 얘기다. 그러나 사운드트랙 앨범은 윤도현이 아닌 신해철의 음악으로만 채워졌다.

영화 '정글스토리' OST
영화 '정글스토리' OST

영화의 흥행 성적은 참담했다. 서울 관객 6,621명. 사운드트랙 앨범만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비공식 집계로 50만장 이상이었다. OST가 영화의 생명력보다 긴 건 당연한 결과다. VHS 테이프로 봤던 영화는 이제 거의 기억도 나지 않지만 OST 음반은 그 즈음에만 100번 넘게 들어서 전곡이 생생하다. 이 앨범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원고지 100장도 너끈히 쓸 수 있을 것 같다.

‘정글스토리’ 사운드트랙은 영화음악의 성격보다는 신해철 개인 프로젝트에 가깝다. 그래서 영화 분위기와 약간 다르다. 그는 마지막 솔로 앨범을 만들기라도 하는 듯 음악적인 야망을 모두 쏟아 부었다. 발라드와 프로그레시브 메탈, 댄스 록, 인더스트리얼 록 등 이 모든 장르가 한 음악가에게서 나왔다는 게 놀랍다. 신해철은 음악이라는 궁궐 안에서 마성의 군주이기도 했다. 노래뿐 아니라 랩, 기타, 베이스, 신시사이저 등을 도맡았다.

영국의 여성 듀오 샴푸를 떠올리게 하는 히트곡 ‘아주 가끔은’, 창의적 리메이크의 대표적 예인 산울림 원곡의 ‘내 마음은 황무지’, 통쾌한 하드록 넘버 ‘백수가’, 낭만적인 노스탤지어 송 ‘70년대에 바침’. 거기에 영화 대사, 효과음, 동요, 직접 연주한 기타, 컴퓨터 프로그래밍 등을 실험적으로 뒤섞은 연주곡 ‘정글 스트럿’과 김동률의 현악 편곡과 김세황의 예리한 기타가 빚은 주제가까지 어느 하나 빼놓을 곡이 없지만 아홉 곡 중 최고는 역시 ‘절망에 관하여’다.

● 영화 ‘정글스토리’ 중 신해철의 ‘절망에 관하여’

신해철이 남긴 불후의 명곡 딱 두 곡만 꼽으라면 주저하지 않고 넥스트 2집에 실린 ‘디 오션: 불멸에 관하여’와 이 곡을 말하겠다. 플루트와 기타, 건반을 이처럼 극적으로 아름답게 결합한 가요를 한국 대중음악에서 이전에도 이후에도 들어보지 못했다. 프로그레시브 록에 대한 애정을 듬뿍 담은 이 두 곡만으로도 신해철은 명예의 전당에 오를 자격이 충분하다.

파이프 오르간 소리의 신시사이저로 시작하는 ‘절망에 관하여’는 김동률의 피아노, 이정식의 플루트 그리고 김세황의 기타 솔로까지 혼을 쏙 빼놓는 ‘간주 3단 콤보’도 예술이지만 셰익스피어 비극의 주인공 같은 신해철의 보컬이 압권이다. 불과 스물여덟에 왜 그는 이런 가사를 썼을까.

20년 넘게 가수로, 예술가로, 개그 애호가로, 독설가로, ‘덕후’로 그리고 무엇보다 수다쟁이로 우리 옆에 있어줘서 언제까지나 그럴 줄 알았다. 잘났지만 못난 것도 숨기지 않아서 더 멋있었던 마왕. 파워 버튼만 누르면 다시 리부트될 것 같은데, ‘안녕, 프란체스카’에서 연기했던 흡혈귀의 대부 앙드레 대주교처럼 금방이라도 관에서 다시 일어날 것 같은데. 그래서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

그가 떠난 뒤론 ‘절망에 관하여’를 들을 때마다 아픈 눈물이 난다. 한 마디 한 마디가 비수처럼 꽂힌다. “내 초라한 삶의 이유를 / 단 한 번만이라도 볼 수 있다면 / 눈물 흘리며 몸부림치며 / 어쨌든 사는 날까지 살고 싶어 / 그러다 보면 늙고 병들어 / 쓰러질 날이 오겠지 / 하지만 그냥 가보는 거야”

고경석기자 kave@hk.co.kr

가수 고(故) 신해철 영결식이 엄수된 31일 오전 서울 풍납동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서 가수 윤도현(맨앞) 등이 운구행렬 차량으로 향하고 있다. 故 신해철은 지난 17일 장 협착 수술을 받고 22일 오후 1시께 갑작스런 심 정지로 심폐소생술 후 아산병원으로 옮겨 치료를 받았지만 27일 오후 8시 19분 세상을 떠났다. 사진공동취재단.
가수 고(故) 신해철 영결식이 엄수된 31일 오전 서울 풍납동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서 가수 윤도현(맨앞) 등이 운구행렬 차량으로 향하고 있다. 故 신해철은 지난 17일 장 협착 수술을 받고 22일 오후 1시께 갑작스런 심 정지로 심폐소생술 후 아산병원으로 옮겨 치료를 받았지만 27일 오후 8시 19분 세상을 떠났다. 사진공동취재단.

● 영화 ‘정글스토리’ 중 신해철의 ‘아주 가끔은’

● 영화 ‘정글스토리’ 중 신해철의 ‘70년대에 바침’

● 영화 ‘정글스토리’ 중 신해철의 ‘내 마음은 황무지’

● 영화 ‘정글스토리’ 중 신해철의 ‘Main Theme from Jungle Story Part 1’

● 영화 ‘정글스토리’ 중 신해철의 ‘백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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