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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크바 세대는 사라져 가지만 ‘저항의 행진’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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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크바 세대는 사라져 가지만 ‘저항의 행진’은 계속

입력
2017.05.19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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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 걸스카우트 학생들이 15일 나크바의 날을 맞아 요르단강 서안지구 나블루스에서 고향의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뜻의 열쇠 모형을 들고 행진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팔레스타인 걸스카우트 학생들이 15일 나크바의 날을 맞아 요르단강 서안지구 나블루스에서 고향의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뜻의 열쇠 모형을 들고 행진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팔레스타인인들에게 5월 15일은 ‘나크바(대재앙)의 날’이다. 1948년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땅 위에 세워지면서 약 75만명의 팔레스타인인이 시리아, 레바논, 요르단 등 이웃 국가나 다른 지역으로 추방 당한 그날이다. 또한 이후 최소 500만~800만명의 팔레스타인인들을 고향 땅에 돌아가지 못하는 난민 신세로 전락시킨 시작점인 날이기도 하다.

69년째 이어지고 있는 이스라엘의 점령에 저항하는 행진이 이날 팔레스타인 전역에서 이뤄졌다. 매해 나크바의 날 수천명의 팔레스타인 난민이 빼앗긴 집과 땅을 상징하는 낡은 열쇠, 팔레스타인기 또는 검은 깃발을 들고 걷는 이 행사는 ‘귀환의 행진’으로 불린다. 올해는 이스라엘 북부 갈릴리 지역의 알 카브리 마을에서 모여 함께 줄지어 구호를 외치며 걸었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행정수도 라말라에서도 수천명의 시위대가 정오에 맞춰 도심 아라파트 기념 광장에서 69초간의 묵념과 함께 나크바의 역사 및 팔레스타인인들의 귀환권을 낭독한 후 베이트엘 군사 검문소를 향해 행진했다. 다수는 나크바가 시작된 ‘1948’이 새겨진 검은 티셔츠를 입은 채 고향집 열쇠, 피켓, 팔레스타인기와 아랍어로 ‘우리는 돌아올 것이다’라고 쓰인 검은 깃발을 들고 행진했다.

올해 나크바의 날은 특히 팔레스타인 수감자들이 단식투쟁 중인 기간이기도 했다. 수감자들의 처우 개선을 요구하며 약 한달 전 시작된 단식투쟁은 현재 참여자가 1,500명 이상으로 늘어 최대 규모를 기록하고 있다. 15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2시까지 3시간은 수감자들에 연대하는 상인들이 문을 닫고 노동자들도 파업에 돌입한 시간이었다.

나크바의 날을 기억하는 세대는 점차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있음에도 귀환의 행진은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점차 최대 연례행사로 자리잡고 있다. 이번 행진에 참가한 와킴 국내실향민권리협회 회장은 하레츠와의 인터뷰에서 “이스라엘은 (역사를 기억하는) 노인들이 어서 죽고 젊은이들이 역사를 잊기를 바란다. 그러나 오늘날 젊은 세대가 이 행진을 이끌고 있으며 팔레스타인 실향민들과 난민들의 귀환이 우리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임을 명백하게 선언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스라엘군은 팔레스타인인들의 저항의 행진에 무력 진압으로 강경 대응했다. 팔레스타인 전역에서 시위 진압 도중 수십명이 부상해 병원에 실려 갔다. 실탄과 고무 코팅된 총알, 최루탄과 악취를 뿜는 살수차 등은 이스라엘군이 시위 진압에 흔히 사용하는 무기다. 베들레헴 지역에서 시위에 참가했던 한 시민은 이스라엘군이 발사한 최루탄에 호흡 곤란을 호소하며 최근 5년간 “최악의 최루탄 공격”이었다고 증언했다. 집회와 행진을 하던 대부분의 팔레스타인인들에게 허락된 저항 수단은 돌을 던지거나 타이어를 태우는 것뿐이다. 앞서 12일 라말라 인근 나비 살레에서 무슬림들의 금요 기도 후 매주 정기적으로 열리는 시위 도중 이스라엘군의 실탄에 맞아 23세 청년 사바 아부 유베드가 사망한 사건도 이와 다르지 않다. 올해만 해도 벌써 21명이 이스라엘군이나 유대인 정착민들의 공격에 사망했다.

며칠 전 레바논에서 근무하던 필자의 지인은 가족이 있는 고향 라말라로 가던 중 이스라엘 국경에서 여권을 빼앗기고 입국금지를 당했다. 지인에게 고향을 빼앗는 나크바는 단순히 69년 전 그날을 기념하는 하루가 아니라 오늘까지도 진행 중인 엄혹한 현실인 것이다. 끊임없이 존재를 거부당하는 이들에게 재앙은 언제쯤 끝이 날까.

새라 팔레스타인평화연대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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