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대부터 30여년간 미국 중앙정보국(CIA)에서 일하고 주한 미국대사까지 지낸 도널드 그레그의 회고록 역사의 파편들을 읽다 눈에 들어온 대목이 한 곳 있었다. 미소 냉전기인 68년 일본에서 CIA 요원으로 근무하던 시기 경험이다.
당시 젊은 러시아(구 소련) 외교관이 미국 망명을 원하자 그레그가 나서 그의 배경을 조사했다. 그 결과 이 외교관은 유명한 러시아 가문 출신으로 드러났지만 미국이 원할 만한 가치 있는 내부정보가 없었다. 게다가 그레그는 “러시아는 앞날이 없다” “지도체제에 진저리가 난다”는 말을 듣고 ‘정보원으로 채용하기에는 너무 이상주의자’라는 판단을 내렸다고 한다. 결국 이 외교관에게 “그대로 모스크바에 머물며 내부 변화를 위해 일해달라”고 설득해 망명을 막았다는 게 그레그의 설명이다.
과연 지금 북한의 유력 가문 출신 젊은 외교관이 망명을 희망했다면 한국의 국가정보원은 어떻게 처리했을까. 아마 망명을 적극 유도하고 정권 붕괴 조짐이라고 대대적으로 선전하지는 않았을까.
그레그 회고록에서 이 대목을 읽다 CIA와 한국 정보기관의 차이점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최근 들어 북한 인사 망명설이나 김정은식 공포통치에 대한 온갖 잡스러운 정보를 흘려대지만 별 성과가 없는 한국과, 치밀한 분석 및 정보전 끝에 평화적으로 냉전 승리를 이끈 미국의 차이 말이다.
2015년 현재 국정원은 수조원의 예산을 투입해 정보전 기술장비, 인력 면에서 과거에 비해 일취월장했다. 국정원 일선 요원 한 명 한 명도 훌륭한 자질을 갖췄다는 평이다. 하지만 국정원 행태로 보면 과거와 무엇이 달라졌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이명박정부 이후 지난 7년 국정원은 60, 70년대 중앙정보부(KCIA) 시절로 돌아간 것 같다는 지적이 많다. 다른 나라와의 정보전보다는 북한 꼬리표를 단 모든 것과의 대결에 안달 났다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특히 박근혜정부 들어 그런 경향은 짙어졌다. 지난 5월 현영철 북한 인민무력부장 고사포 처형설 때도 “정보기관이 너무 성급하게 정보를 공개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런데도 북한의 ‘공포통치’와 김정은 비난성 정보 흘리기에 더 열중하는 느낌이다.
정보나 첩보가 진짜 ‘팩트’였다고 치자. 그렇다면 그런 소중한 팩트를 바탕으로 우리의 국익을 어떻게 극대화할 것인지 음지에서 노력하는 게 맞지 않는가. 종북 혐오감 확산을 위한 북한 망신주기, 김정은 체제 흔들기가 박 대통령이 말하는 통일대박론인가. 국정원의 국내정치용 행태 때문에 현 정부의 통일론과 북한 붕괴 시도는 동일시되는 게 현실이다.
최근 들어 국정원은 또 입방아에 올랐다. 국정원을 지칭한다는 ‘5163부대’(이 부대명칭은 5.16 쿠데타 때 새벽 3시에 박정희 소장이 한강 철교를 넘었다는 데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와 이탈리아 해킹 툴 업체 간 수상한 거래 보도 등 제2의 국정원 댓글 사건 망령이 되살아나고 있다. 지난달 30일 취임 후 2년 반 만의 첫 국정원 방문에서 “북한 (공포통치) 정보를 주시하라”고 했다는 박 대통령 지시도 언론을 장식하는 상황이다.
그레그 회고록에는 73년 CIA 서울지국장 부임 초기 경험담도 담겨 있다. 그는 당시 이후락 중정부장을 만난 뒤 중정의 협조를 통해 CIA의 북한 관련 정보의 질을 개선하려 노력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레그는 “그들(중정)에게는 한두 명의 우수한 북한문제 전문 분석가들이 있었지만 그들이 주로 강조하는 건 남한을 정치적으로 조용하게 유지해야 한다는 것뿐이었다”고 혹평했다.
그레그가 CIA 일선에서 활약하던 그 때로부터 40여년이나 흘렀다. 한국의 CIA는 과연 달라진 건가. 14일로 예정된 국회 정보위 국정원 보고에서 어떤 변명을 쏟아낼지 모르겠지만, 우리 정보기관에게서 ‘정보는 국력이 아닌 국(내)정(치)’이란 냄새가 짙어지고 있다.
정치부 정상원기자 orno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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