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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 치맥과 사드의 공생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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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 치맥과 사드의 공생시대

입력
2016.08.04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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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한국인을 상대로 상용 복수비자 관련 업무를 하던 대행업체의 자격을 취소하면서 4일 오후 서울 중구 주한중국대사관 영사부 앞에 중국 비자를 받으려는 시민들이 장사진을 이루고 있다. 연합뉴스
중국이 한국인을 상대로 상용 복수비자 관련 업무를 하던 대행업체의 자격을 취소하면서 4일 오후 서울 중구 주한중국대사관 영사부 앞에 중국 비자를 받으려는 시민들이 장사진을 이루고 있다. 연합뉴스

#장면 1. 지난달 25일 라오스에서 열린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외교장관회의 현장.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북한의 리용호 외무상을 반갑게 맞았다. 왕 부장은 일찌감치 회담장에 나와 리 외무상을 기다리고 있는 듯했다. 오랜만에 만난 형제처럼 두 외교 수장은 손을 맞잡으며 웃었다. 한국 언론들은 이날 유독 왕 부장이 윤병세 외교장관에게 싸늘한 인상을 보이며 심지어 턱을 고인 채 ‘외교 결례’를 저질렀다고 지적했다. 중국에 북한은 형제국으로 돌아온 반면, 한국은 마음이 떠난 연인이라도 된 것일까.

#장면 2. 폭염이 한창이던 지난달 27일 대구 달서구 두류공원. 치킨과 맥주라는 한국의 음식문화를 홍보하기 위해 열린 ‘2016 대구치맥페스티벌’ 현장이 술렁였다. 치맥에 흠뻑 빠진 중국인 관광객(유커)들을 겨냥해 준비했던 ‘치맥관광열차’의 운행이 취소됐기 때문이다. 지난 5월부터 유커 모집을 시작해 7월 초까지 이미 500명 넘게 예약했는데, 중국 여행사들의 갑작스러운 취소로 그만 물거품이 됐다. 중국인들은 이제 전지현의 치맥을 잊은 것일까.

두 장면 모두 한국과 미국 정부가 추진한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ㆍ사드)의 성주 배치 확정 발표와 관계가 깊다는 사실은 누가 보더라도 명백하다. 그동안 대북제재를 지탱하며 북한과 거리를 뒀던 중국 정부, 그리고 한류 열풍에 매년 600만명이 방문할 정도로 한국에 애정을 보였던 중국인들이 사드 배치 확정 후 동시에 한국을 향해 등을 돌린 모습이다.

한반도 사드 배치에 대해 이처럼 중국 민ㆍ관이 한몸이 되어 민감하게 대응하는 움직임은 최근 곳곳에서 목격된다. 2000년 마늘파동 당시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중국의 보복이 이뤄질 것이란 경고도 잇따른다. 실제 모 엔터테인먼트 회사의 주가가 지난달 말 급속히 빠지자 중국이 한국과 콘텐츠 교류사업 중지를 위한 정지작업에 들어갔다는 소문이 증권가에 돌았다. 비슷한 시기 중국 문화콘텐츠 주관부처가 각 성(省)급 관련부서에 외국 연예인의 TV 출연 금지령을 내렸다는 소식도 들렸다. 중국 고유 문화를 강조했던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행보를 감안하면 놀랄 일이 아니지만 공교롭게도 이 모든 소식은 한반도 사드 배치 확정을 전후해 들려왔다. 중국 네티즌들은 미국산 패스트푸드 불매운동을 벌이며 아이폰을 부쉈다. 갑작스러운 애국주의 열풍도 불었다.

미국과 동북아시아 패권 경쟁을 벌이는 중국 입장에선 미군의 척후병이 될 수 있는 사드를 설치하도록 허락한 한국 정부에 묻고 싶은 게 많을 것이다. 동북아균형자 역할을 할 것이라던 한국이 오직 미국의 이익에 합치하는 외교를 펼친 데 대한 서운함을 표시하고 싶었을 것이다. 최근 중국이 드러내는 불편한 심기는 이러한 배경으로 이해될 수 있다.

하지만 조금만 깊숙이 들어가 보면 왕이 부장의 ‘결례’부터 유커들의 치맥축제 외면에 이르기까지 그동안 중국과의 외교무대에서 우리가 수없이 목격했던 중국의 전술적 특성이 드러난다. 다름 아닌 상대의 심리적 부담감을 최대화해 실리를 끌어내는 작전이다. 2008년 이명박 대통령의 방중 당시 중국 외교부는 “한미 동맹은 냉전의 유산이다”라는 발언을 해 ‘외교적 결례’ 파문이 일었다. 이 사례는 이후 한미간 거리를 벌려 실리를 취하려던 중국의 고도의 심리전이었다는 평가가 나왔다. 윤영관 서울대 명예교수는 저서 ‘외교의 시대’에서 “마오쩌둥은 레닌주의보다 손자병법에 더 많은 영향을 받았다”라는 헨리 키신저의 말을 인용해 싸우지 않고 이기는 데 치중하는 중국외교의 병법을 설명한다.

한국은 여러모로 중국을 등진 채 국제무대에서 온전히 생존할 수 없다. 비록 ‘누구 편’인지를 다그쳐 묻는 미국의 질문이 거세질 것이지만 사드를 놓고 치밀하게 심리전을 펼치는 중국을 향해 ‘강 대 강’으로 맞받아칠 경우 치러야 할 대가는 너무 클 수 있다. 급한 마음에 중국과 긴장관계를 고조시켜 끝내 치맥과 사드, 둘 중 하나를 포기할 필요는 없다는 얘기다.

양홍주 국제부 차장 yangho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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